'야간출입 통제'가 대학가 성범죄 방지책?..."공부는 어디서 하나요"
2022-07-24 13:01
교육부, 캠퍼스 야간 출입 통제 강화 등 골자로 한 재발방지대책 발표
전문가 "남성이 여성에게 술 먹여 강간한 것이 본질, 방향성 잘 잡아야"
전문가 "남성이 여성에게 술 먹여 강간한 것이 본질, 방향성 잘 잡아야"
24일 경찰에 따르면 인하대 1학년 남학생 A씨(20)는 지난 15일 오전 1시 20분경 함께 술자리를 한 피해자 B씨를 부축해 강의실과 연구실이 있는 건물로 들어갔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에서 내렸다. 이후 B씨는 오전 3시 49분경 건물 입구 앞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진 채 행인에게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이후 교육부는 안전한 대학 캠퍼스를 만들기 위한 재발 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재발 방지책은 △교내 학생 대상 성폭력 예방 교육 점검 △성폭력 예방 특별 교육 실시 △폐쇄회로(CC)TV 증설 △캠퍼스 야간 출입 통제 강화 등이 골자다.
사건이 발생한 인하대 측 대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인하대는 지난 18일 교학부총장을 위원장으로 한 성폭력 사망 사건 대책위를 꾸리고 이번 사건과 관련해 2차 가해 방지와 시설 보안 강화 등 전반적인 대책을 논의했다.
대책위는 입장문을 통해 "학생들의 성인지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 교과 과정 중 성교육을 강화하고 학생심리 상담소를 활성화할 것"이라며 "정기적인 순찰 확대로 야간 치안을 강화하고 학생 심리 상담·치료도 지원하겠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더불어 대학 측은 보안 강화를 위해 자정부터 오전 5시까지 모든 건물에 대해 출입을 금지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또 교내에 설치된 CCTV·비상벨 증설이나 보안·순찰인력 확충 등 여러 가지 대책들도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학생들은 이 같은 재발 방지책에 대해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을 표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에 재학 중인 여학생 C씨(24)는 “CCTV가 늘고 야간에 캠퍼스 출입이 금지된다고 안타까운 사건의 재발을 막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며 “막말로 범죄를 저지를 사람이 캠퍼스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범죄를 저지르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여학생들 불안감은 여전할 것이다. 근본적인 대책을 세웠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경희대 4학년생인 남학생 D씨(25)는 “범죄가 야간에 캠퍼스에서 일어났다고 야간 캠퍼스 출입을 막겠다는 발상이 어떻게 나왔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실효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학생들 불편만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대학생들은 과제가 있거나 시험기간이면 밤 늦게까지 학교에 있을 때가 많은데 최소한의 공부 여건 보장조차도 되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문가들도 캠퍼스 야간 출입 통제나 CCTV 추가 설치 등은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사건의 본질에서 벗어난 대안이라고 지적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사건의 본질을 봐야 한다. 캠퍼스와 대학생을 빼고 보면 강간 사건"이라며 "캠퍼스에 대한 출입 통제 등은 공부하는 장소라는 특성을 무시할 뿐 아니라 강간 사건을 예방하는 데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강간 사건은 집 안에서도, 숲 속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 그럴 때마다 모든 장소에 출입을 통제해야 하냐”고 반문했다.
오 교수는 “젊은 남성이 젊은 여성에게 술을 먹여서 강간한 것이 본질이다. 강간과 잘못된 음주 문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한국은 술을 사고 먹는 것에 대한 접근성이 높다. 술에 대한 접근성을 낮추고 음주문화 개선을 위한 노력 등을 골자로 ‘캠퍼스 내 강간’이 아닌 ‘강간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학가에선 안전 강화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국민대는 안전 사각지대에 CCTV 설치를 강화할 예정이며, 건국대는 캠퍼스 안전 강화 대책을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