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 인사이드] 中고섬 사태 '9년 공방' 마침표...가중된 상장주관사의 책임

2022-07-20 14:28

[사진=연합뉴스]

분식회계로 상장폐지되면서 국내 투자자들이 2000억원대 손실을 본 중국 섬유회사 '고섬 사태'와 관련해 법원이 국내 상장 주관사인 한화투자증권에 대해 책임을 재차 인정했다. 또 다른 상장주관사 대우증권(현 미래에셋증권)은 이미 최종 패소가 확정됐다. 2013년부터 이어진 증권사와 금융위원회 간 법정 갈등이 9년 만에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1-2부(김종호·이승한·심준보 부장판사)는 한화투자증권이 금융위원회를 상대로 "과징금 부과를 취소해 달라"며 낸 소송에 대한 파기환송심을 최근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판결이 확정되면 한화투자증권은 과징금 20억원을 납부해야 한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한화투자증권에 대해 "단순한 부주의를 넘어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보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이어 "한화투자증권이 고섬 측 증권신고서에 기재된 중요 정보의 진실성에 관해 대표 주관회사의 조사 결과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스스로는 아무런 조사를 하지 않았다"며 "이로 인해 재무제표상 현금 및 현금성 자산에 관한 거짓 기재를 방지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 1000억원대 분식회계로 허공에 사라진 2000억원
이 사건은 중국 섬유회사 고섬이 2011년 1월 국내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됐는데 두 달 만에 분식회계로 거래가 정지된 데서 비롯됐다. 고섬은 심각한 현금 부족 상태였는데도 증권신고서에는 기초자산 중 31.6%가 현금과 현금성 자산이라고 기재했다.

고섬이 약 1000억원대 분식회계를 저지른 것이 밝혀지면서 상장 2개월 만에 거래가 정지됐다. 상장 첫날인 1월 25일 6300원으로 출발했던 주식은 3월 22일 4154원에 거래가 멈췄다. 2013년 10월 4일 상장폐지가 최종 결정되면서 공모가격 2100억원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특히 매매정지 하루 전인 3월 21일 고섬의 이상기류를 감지한 기관투자자들이 먼저 주식을 팔아치운 것이 드러나면서 투자자 원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금융위는 곧바로 조사에 착수했고, 개인투자자들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등 파장은 커졌다.

금융당국은 2013년 10월 상장 주관사였던 대우증권과 한화투자증권에 부실 심사 책임을 물어 20억원씩 과징금을 부과했다. 금융당국이 불공정거래 혐의로 내릴 수 있는 최대 규모 과징금이었다. 금융위는 "고섬 재무 상태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상장을 진행했다"고 과징금 부과 이유를 설명했다.

같은 해 12월 두 증권사는 "상장 당시 회계법인 감사 의견을 따랐을 뿐이다. 그런데 주관사들만 최고 수준의 제재를 받는 것은 지나치다"며 소송을 냈다. 
 
◆ 증권사 vs 금융위 9년간 법정공방

[사진=인터넷 캡처]

두 증권사는 1·2심에서 모두 웃었다. 상장 주관사 측에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하급심 판단이었다. 재판부는 "주간사 회사·인수 계약상 증권사의 지위와 역할, 증권 공모 참여 시점 등에 비춰볼 때 상장 주간사 회사에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증권 발행인이 증권신고서의 중요 사항에 관해 거짓을 기재했을 때 발행인이 과징금 부과 대상이 될 뿐이며 증권사에 과징금을 물리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였다.

분위기는 대법원에 가서 급변했다. 대법원은 2020년 2월 "주관사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증권신고서 등 중요 사항을 거짓으로 기재한 것 등을 방지하지 못한 때에는 과징금 부과 대상이 된다"며 한화투자증권 패소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투자자들이 인수 업무를 맡는 상장 주관사의 평판과 정보를 믿고 시장에 진입하는 만큼 상장 주관사가 투자자들에 대한 보호 의무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봤다. 대우증권은 대법원과 파기환송심을 거친 끝에 지난 4월 패소가 확정됐다.
 
투자자들 어쩌나···별도 손해배상 소송서 일부 승소
한편 고섬 투자자 550명이 대우증권과 한화투자증권을 포함해 한국거래소와 한영회계법인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지난 2016년 12월 20일 마침표를 찍었다. 투자자들은 대우증권을 상대로만 일부 승소했고 나머지 피고들에 대한 청구는 기각됐다.

1심 재판부는 "대표 주관사였던 대우증권이 중국 고섬의 회계 상황을 적정하게 검증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며 "대우증권에 대해서만 원고 125명에게 청구액 절반인 31억여 원을 지급하라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