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高에 숨 고르는 재계] 당장 투자보단 비전 점검...총수들도 사실상 '휴가 반납'

2022-07-18 18:00

고물가·고금리·고환율로 이어지는 3고(高) 위기에 따른 대내외 경제 여건이 악화하면서 앞서 예고한 대규모 투자 계획에 대해 숨고르기 하는 모습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는 등 글로벌 경제 상황도 불확실성이 가중되면서 특히 해외 투자를 계획했던 기업들은 투자를 미루거나 보류하는 등 전략 재점검에 들어가고 있다.

◆주요 대기업 "한 치 앞도 몰라"...투자계획 내년으로 넘길 듯

18일 재계에 따르면  대외 여건이 악화하면서 국내 기업들은 올 하반기에는 투자를 확대하기 보다는 줄이는 것으로 기우는 모양새다.  재계 한 관계자는 “국내 주요 대기업 경영 전략 회의에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면서 “경제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곳간의 돈을 함부로 풀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달 말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매출액 500대 기업(100개사 응답)을 대상으로 실시한 하반기 국내 투자 계획 조사에서 응답 기업의 28%는 “상반기 대비 투자 규모를 축소하겠다”고 답했다. 하반기 투자 규모를 늘릴 것이라 답한 기업은 16%에 불과했다. 상반기와 비슷한 규모로 하반기에 투자할 것이라는 기업은 56%였다.

투자활동이 활성화되는 시점에 대해서는 대기업 58%는 ‘내년’을 꼽았다. 올해 하반기로 답변한 기업 비중은 13.0%에 불과했고, ‘2024년 이후’ 및 ‘기약 없음’을 선택한 기업은 각각 7%, 10%로 나타났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겸하고 있는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최근 투자 계획을 재점검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그는 최근 열린 대한상의 제주포럼에서 “지난해 세웠던 투자 계획들이 어느 정도 바뀔 가능성이 있다”며 “원자재 가격이 너무 많이 올라 원래 투자를 계획했던 것과 잘 맞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오는 2026년까지 247조원의 투자를 예고한 SK그룹 경영에 대해서 “안 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이자가 계속 올라가는 만큼 전략·전술적 형태로 투자를 지연하는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숨고르기를 내비쳤다.

LG에너지솔루션도 지난달 말 1조7000억원의 투자를 예고한 미국 애리조나 배터리 공장 건설 재검토에 들어갔다. 고환율과 인플레이션으로 투자비가 급증했고, 경기침체 우려로 배터리 수요가 줄어들 수 있다는 것도 재검토 이유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그래픽=아주경제 그래픽팀]


◆'이런 위기에 무슨 여름휴가?'... 대기업 총수들 '하반기 경영전략' 부심

세계적으로 경기 침체가 확산하는 가운데 원자잿값 상승, 재고 증가 등에 따른 부담이 커지면서 국내 주요 대기업 총수들도 한가로운 여름을 나지 못할 상황이다. 

재계에 따르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4대 그룹 총수들은 하반기 위기 극복을 위한 경영 전략을 짜느라 국내외에서 시간을 보낼 전망이다. 

이 부회장은 최근 유럽 출장에 이어 다시 한번 해외 출장길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오는 22일 열리는 '계열사 부당합병' 공판에 출석한 뒤 오는 8월 11일까지는 법정 일정이 없어, 약 19일가량 여유가 생겼다.

재계에서는 약 22조원 규모로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구축할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제2공장 착공식에 참석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최근 아베 총리 사망을 기점으로 정부가 관계 회복에 나선 일본 사업장을 살펴볼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최태원 회장은 오는 27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리는 6·25전쟁 참전용사를 기리는 '추모의 벽' 준공식에 참석한다. 이를 계기로 '인사이드 아메리카' 전략을 구사하며 북미 시장 개척에 적극적인 SK하이닉스 미주사업조직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인텔 낸드사업부 인수를 기점으로 현지의 ICT 기업들과의 파트너십 강화에 힘쓰고 있다. 그는 미국 출장 이후 8월 예정된 SK그룹의 '2022 이천포럼에서 하반기 경영 비전을 제시할 전망이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이달 중 글로벌 권역본부장 회의를 주재, 하반기 경영 전략을 점검한다. 이후 개인적으로 여름휴가를 활용해 하반기 경영구상을 모색할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올 연말부터 미 앨라배마 공장에서 GV70 전동화 모델 생산이 시작되고, 새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 6도 유럽을 시작으로 해외 판매가 본격화되는 만큼 정 회장도 해외 출장길에 오를 것이란 전망이다.

구광모 LG 대표도 예년과 비슷하게 이달 말쯤 여름휴가를 짧게 다녀온 뒤 본격적인 경영 비전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 말부터 한 달여 동안 각 계열사별 전략보고회를 마친 그는 취임 5년 차를 맞는 내년을 대비해 중장기 비전을 제시할 가능성이 크다.

한 재계 관계자는 "주요 대기업 총수들은 최근 일련의 대내외 경제 여건에 대해 위기감을 느끼고 경영 시계를 새로 맞추고 있다"며 "여름휴가 기간 출장 등을 통해 현장을 점검한 뒤, 중장기 전략과 비전을 각 계열사 CEO들에게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