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외환법 제정] 통화스와프 만료되고 환율 뛰는 지금…'신외환법' 들고나온 정부

2022-07-10 13:17
외자유출 속도 빨라져 환율 변동폭 더 커질 수도
무역적자에 원화 약세까지…물가·성장 동시 타격
외환보유액 4개월 연속 하락…통화스와프 가능성↓

[그래픽=아주경제 DB]

정부가 23년 만에 새로운 외환법 제정에 나선다. 자본거래 시 사전 신고 등을 규정한 현행법이 해외송금과 투자 등 거래 수요가 증가하는 실정에 맞지 않아 개편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법 제정 취지에는 대부분 공감하지만 복합위기가 거론되는 현 시점이 시기적으로 적절하냐는 부정적 의견은 적지 않다. 1997년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우리 경제는 '외자 유출 트라우마'가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다. 

10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연말까지 신외환법 제정의 기본방향을 세우고, 내년 중 법안을 만들 계획이다. 기존 외환법은 '외화 유출 억제' 목적 아래 신고제 중심으로 전면 개정된 이후 현재까지 개편 작업이 전무했다.

정부는 현재의 외환법이 기업이나 개인에게 과도한 형벌 책임을 부과하는 측면이 있어 형벌 조항에 대해서도 다른 법령과 비교해 전반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봤다.
 
외화 무차별 유출 시 원·달러 환율 급등 위험
그러나 한·미 통화스와프라는 '달러 안전판'이 사라지고, 환율 방어의 '총탄'으로 불리는 외환보유액까지 말라가는 지금, 외화가 무차별적으로 유출되면 가뜩이나 높아진 원·달러 환율이 급등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미국의 긴축과 세계적 경기 침체에 대한 공포가 퍼지면서 달러는 강세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원화 가치가 맥을 못 추는 가운데 수입 물가에는 비상이 걸리고 자본 유출 위험도 커진 상황이다. 

최근 환율이 급등하면서 당국이 외환보유고에서 조정 물량을 내보내 외환시장의 변동성을 최소화하고 있지만, '외환 비상금'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외환보유액 통계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4382억8000만 달러로 전월 말(4477억1000만 달러)보다 94억3000만 달러 감소했다.

이런 감소 폭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던 시기인 2008년 11월(-117억5000만 달러) 이후 13년 7개월 만에 가장 큰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 규모는 세계 9위로 적은 수준은 아니지만 외환위기를 막는 데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우리나라는 2397억 달러의 적지 않은 보유액을 갖고 있었지만 외환시장 변동성을 막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신외환법이 제정되면 외자 유출 속도가 지금보다 빨라져 원·달러 환율의 변동폭이 더 커질 수 있다. 2008년 신외환법 제정 움직임이 있었으나 좌절된 것도 금융위기와 맞물려 대규모 외화 유출이 있었기 때문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대규모 거래가 단기간에 일어나며 외환시장이 교란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여전히 관리가 필요하다"면서 "신외환법으로 개편된다고 하더라도 외환시장 관리는 존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1997년보다 큰 무역적자…원화 가치 추락 우려

1일 오전 부산항 신선대부두에서 컨테이너 하역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올해 상반기 무역적자가 100억 달러를 웃돌며 상반기 기준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연합뉴스]

무역수지가 적자를 기록하는 상황에서 외환시장이 개방되면 가뜩이나 불안한 시장 변동성이 더 커질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달러 유출은 환율과 수입 물가를 밀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데 무역수지가 불안한 상황에서는 이 같은 요인이 더 강해진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무역적자는 103억 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달러가 103억 달러 유출됐음을 의미한다.

이번 무역적자 규모는 외환위기로 한국 경제가 휘청거렸던 1997년 상반기(91억6000만 달러)보다 큰 수준이다. 월별 기준으로 3개월 연속 적자인 것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던 2008년(6~9월) 이후 처음이다.

무역과 경상수지가 적자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원화값 추락도 물가와 성장에 동시 타격을 주고 있다. 자칫 우리 경제가 '무역·경상수지 적자→원화 가치 추가 하락→수입물가 상승'의 악순환에 갇힐 수 있다.

김현태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대외건전성이 과거에 비해 크게 개선됐다는 점은 외화유동성 위기 재발 가능성을 낮추는 중요한 요인"이라면서도 "최근 원자재 가격 상승과 고환율로 인한 교역조건 악화로 무역수지 적자기조가 고착화될 경우 중장기적으로 대외건전성을 악화시키고 자본유출을 유발할 수 있어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외환보유액, IMF·BIS 기준 '미달'

5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 앞에 각 나라의 지폐들이 전시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신외환법 제정 움직임과 맞물려 외환보유액이 감소세를 보이는 것도 위험요소다. 최근 4개월 연속 외환보유액이 줄어들면서 국제 기준에는 못 미치는 상황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연간 수출액의 5%, 시중 통화량(M2)의 5%, 단기 외채의 30%, 외국인 증권 및 기타투자금 잔액의 15% 등을 합한 규모의 100~150% 수준을 적정 외환보유액으로 보고 있다.

IMF의 기준을 적용하면 한국의 외환보유액 비중은 98.94%로 '미달'이다.

국제결제은행(BIS)에서는 3개월치 수입액, 단기외채규모(만기 1년 미만), 외국인 국내증권투자액의 3분의1을 합한 값을 적정 수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해당 기준에 따르면 한국의 적정 외환보유액은 6256억 달러이지만 현재 외환위기 발생 시 동원 가능한 외환규모는 4928억 달러다. 역시 기준에 못 미친다.

기회비용 차원에서 보자면 외환보유액이 많다고 꼭 좋은 것은 아니다. '외환시장 충격 안전판'인 통화스와프만 체결되면 오히려 통화스와프가 더 효과적이다.

하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긴축 기조를 더 강화하겠다고 나서 통화스와프가 실제 체결까지 이어지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연준은 이달 통화정책회의에서도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올리는 '자이언트스텝'을 밟을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한은이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려도 한·미 금리는 역전돼 달러 강세에 불을 붙일 수 있다.

전규연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한은도 '빅스텝' 인상안을 열어두고는 있으나 0.50%포인트 인상을 단행하더라도 원화 강세를 이끌지는 못할 것"이라며 "외국인의 국내 주식 순매도 흐름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어 자금 유출 압력이 더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