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대출 리스크] 신용등급 강등 늘자 자금조달 적신호...은행으로 몰리는 기업들

2022-07-08 07:00

[사진=연합뉴스]

시중은행의 기업대출 증가세가 지속되고 있다. 기업의 직접 자금 조달 시장이 경색되자 자금줄이 마른 기업들이 은행 창구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미 상반기에만 5대 은행의 기업대출 연간 목표치에 근접했다. 다만 ‘고물가·고환율·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경기 침체로 올해 들어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된 기업이 대폭 늘어나면서 이 리스크가 기업대출로 전이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7일 은행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올해 상반기 기업대출은 37조9318억원을 기록했다. 5대 은행의 올해 전체 기업대출 목표 증가액을 단순 계산하면 모두 41조2000억원인데, 상반기에만 기업대출 연간 목표치의 90%를 넘긴 것이다. 은행별 목표율은 △KB국민은행 7% △신한은행 8% △하나은행 5% △우리은행 8% △NH농협은행 6.25%다.
 
5대 시중은행의 기업대출 중에서도 지난달 말 기준 대기업 대출 잔액은 91조9245억원이다. 중소기업대출은 전월 대비 3조7998억원 증가한 581조8952억원으로 집계됐다. 중소기업 대출도 늘긴 했지만 대기업 대출 증가 속도는 최근 들어 급격히 가팔라지는 모양새다. 지난해 12월 말 82조4093억원을 기록한 이후 올 상반기 지난 1년간의 증가 폭보다 2배 이상 늘면서 90조원을 돌파했다.
 
대기업 대출이 빠르게 늘어난 배경으로는 ‘시장금리 상승’이 꼽힌다. 통상적으로 주식회사들은 회사채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와 한국은행의 연이은 기준금리 인상으로 시장금리가 빠르게 오르자 회사채를 통한 자금 조달에 부담을 느낀 회사들이 은행 대출로 선회하고 있다. 현재 AA등급 이상의 우량한 신용도를 보유하거나 대기업 계열사만이 회사채 시장을 찾을 정도로 공모 회사채 발행 시장은 얼어붙은 상황이다. 이대로라면 5대 은행의 대기업 대출 잔액이 연내 100조원에 근접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회사채 AA-(무보증 3년) 금리는 올 1월 3일 연 2.460%에서 지난 1일 4.257%까지 올랐다. 미 연준의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0.75%p 인상)’ 이튿날인 6월 17일엔 4.468%로 2011년 8월 4일 4.46%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5월 은행권 대기업 대출 평균 금리는 연 3.35%인데, 단순 비교만으로도 회사채 발행 비용이 크다는 걸 알 수 있다.  
 

재원마련 바쁜 은행들···“비금융산업 리스크 전이 대비해야”

[표=아주경제]

시중은행은 급증하는 기업대출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은행채를 발행하고 높은 예·적금 상품을 출시하며 적극적으로 자금 조달에 나서고 있다. 은행이 통 크게 은행채를 발행하고, 마진 축소를 감수하면서 고금리 상품을 출시해 고객 돈을 유치하려는 것은 기업에 빌려줄 현금이 필요해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5월 은행채 발행량은 8조330억원으로 전월(2조3800억원) 대비 237.5%나 급증했다. 최근 5년간 월간 은행채 발행이 8조원을 넘어선 적은 없었던 만큼 이례적인 일이다. 주요 은행 전반적으로 은행채 발행을 일제히 확대했다. 시중은행(7조1330억원)과 지방은행(9000억원)은 각각 전월 대비 277.4%, 83.7% 증가했다. 은행별로 살펴보면 △신한은행 2조1730억원 △우리은행 1조5100억원 △국민은행 1조3200억원 △하나은행 1조2900억원 △SC제일은행 8400억원의 은행채를 발행했다.
 

문제는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경기 침체 우려와 공급망 불안에 따른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수익성이 악화된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의 수익성이 떨어지면 기업 여신의 건전성도 악화될 수밖에 없다. 최근 기업들의 신용등급 하락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과 코로나 팬데믹 기간인 2020년과 유사한 수준으로 파악된다.
 
국내 3대 신용평가사인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동안 신용등급이 강등된 기업은 4곳으로 나타났다. 한국신용평가도 올해 1분기 2개사에 대해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하고, 별도로 신용등급 하향 조정 검토 대상으로 4개사를 등재했다. 한국기업평가도 최근 1개월 동안 4개 기업에 대해 신용등급을 강등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1분기(5개사)와 코로나19 충격이 처음으로 가시화한 2020년 1분기(6개사)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지난해 1분기에 강등된 기업이 한 곳도 없었던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당국과 전문가들도 연일 경고장을 날리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3일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하반기 수출 상황을 낙관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한은 역시 ‘6월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원자재 가격 상승, 환율 변동성 확대 등으로 인해 기업 경영 여건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대출금리 상승 압력이 높아지면서 한계기업과 취약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잠재부실이 현재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준수 키움증권 연구원은 “국내외 기준금리 인상으로 기업들의 금융비용 부담 증가와 더불어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실적 둔화 등으로 상환 능력이 저하되는 가운데 금융기관 대출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비금융산업의 리스크가 금융기관에 전이될 가능성이 점차 부각될 것으로 보이며 이에 금융기관의 건전성 관리와 연체 발생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