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균 칼럼] 반도체 인재 양성이 다가 아니다

2022-07-08 07:00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명예교수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이 공표되면서 복합적 의미의 전환기에 처한 한국경제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감세, 규제 완화, 민영화 등 신자유주의 노선은 강화하면서 탄소중립, 탈세계화, 경제안보 등 새로운 도전과제에 대해서는 준비 안 된 정부의 허둥대는 모습이 역력하다. 정권교체로 탄생했으니 전임 정부의 행적을 지우면서 이명박 정부 시절로 돌아가기만 하면 족할 것처럼 펼치는 행정은 아이디어 빈곤을 절감케 한다. 스태그플레이션이 다가오고 있다는 우울한 전망에는 금리인상과 임금인상 억제라는 통화주의의 타성에 머물러 있다. 미·중 반도체 전쟁에서 미국에 3000개의 “중산층 일자리”(바이든 대통령)를 안겨줄 때 한국의 국익도 충실하게 챙겼는지 궁금하다.

노동정책에서는 모순적이고 퇴행적인 정책들이 예고되면서 어렵사리 정착되고 있는 선진국의 위상이 흔들릴까 우려된다. 경제는 일본을 넘어서고 있다는 진단이 설득력을 얻지만 노동정책은 1960·1970년대의 의식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오히려 경제발전의 발목을 잡을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경제부총리는 민간주도경제를 선언한 지 이틀 만에 임금인상 자제를 촉구하면서 자기모순에 빠졌다. 문재인 정부가 법정 40시간을 12시간까지 연장 근무할 수 있도록 주 52시간으로 제한하는 규정을 전면 도입한 지 1년 만에 뒤집으면서 윤석열 정부는 ‘주 92시간’이 가능해지도록 노동시간의 연장을 예고했다. ‘일할 자유’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일하지 않을 자유’를 포함할 수 없으므로 사실상 노동강제이다. 노동시간 연장은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 국내에서도 논의가 활발했던 ‘워라밸’의 실종을 뜻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주 92시간’은 포스트 코로나 국면에서 영국, 스페인 등에서 주4일제가 시범적으로 도입됐고, 재택근무는 국내에서도 노동생산성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시행될 수 있음이 입증된 새로운 현실과도 배치되는 방향이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로 자리 잡을 임금인상 억제, 장시간 노동의 확대, 워라밸의 후퇴는 한국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한진중공업의 필리핀 조선소 파산을 가져온 부실 건조 사례는 ‘저임금 숙련노동’은 없다는 자명한 교훈을 보여주었다. 코로나 팬데믹에 대한 총력대응에서 간호사들이 보여준 헌신에 국민은 감사의 수화까지 개발했지만 열악한 처우에 간호사의 이직은 줄지 않고 있다. ‘에너지전환’의 국면에서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LNG운반선의 신규 발주를 국내 3대 조선사가 거의 ‘싹쓸이’하고 있지만 정작 선박 건조에 필요한 노동자 9500명의 충원이 연말까지 이루어질 전망은 없다.

2016년 대대적인 구조조정으로 떠난 숙련노동자들은 높지 않은 임금, 높은 노동강도, 구조조정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고 신규노동자 훈련에 참여하겠다는 신청자는 턱없이 부족하다. 오죽하면 거제시장이 나서 임금인상이 답이라고 답답해 하겠는가. 조선소들은 저임금 외국인노동자들의 입국만 기다리고 있다. 자동차, 조선 등 원하청구조로 조직되어 있는 산업들에서 저임금 노동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하청기업들의 인력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면 산업생태계가 위협받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생산성 향상을 대안으로 제시하지만 고임금 보상이 없는 고생산성은 없다. 유리한 가격협상력을 조선노동자의 처우개선으로 연결하는 발상의 전환이 아쉽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상무장관을 대동하고 한국을 이례적으로 서둘러 방문하도록 만든 전략상품 반도체의 개발·설계는 물론 제조인력을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충분한 처우가 뒤따라야 한다. 윤 대통령이 교육부차관을 꾸짖으면서까지 반도체 ‘인재’양성을 독려하면서 향후 5년간 반도체 인재 3140명을 양성한다는 목표가 세워졌다. 하지만 수도권 대학 중심으로 반도체 계약학과를 설치해서 인재를 양성한다고 할지라도 이들이 미국 등 처우가 나은 나라로 이직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반도체 강국 대만과 일본은 물론 미국, 한국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가 반도체 인재양성이다. 대만 반도체기업 TSMC 창업자 장중머우가 경험한 바와 같이 미국에서는 금융 및 컨설팅 업계로 인재가 몰리므로 반도체 산업에서는 인재난이 예상된다. 인텔은 물론 삼성과 하이닉스도 미국 내 반도체공장을 운영하려면 상대적 고임금으로 한국과 대만 인재를 미국으로 유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시장정책이 임금인상 억제와 노동시간 연장의 기조를 고수한다면 한국의 산업구조는 저임금, 저숙련의 덫에 빠질 수 있다. ‘저임금 인재’는 형용모순이다.

인간 본성에 역행하는 노동시간 연장은 그 자체만으로도 한국경제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다. 첫째, 노동조건의 악화는 결국 기업의 혁신을 통한 경쟁력 향상을 지연시켜 좀비기업을 온존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둘째, 노동조건의 악화는 내수를 위축시켜 경기침체를 앞당기거나 심화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하여 일본이 경험하고 있는 ‘잃어버린 30년’을 뒤따라갈 수 있다. ‘제2의 일본’이라는 수식어가 1980년대까지는 대한민국에 칭찬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저주다. 셋째, 노동조건의 악화는 4차산업혁명에 절실한 ‘인재’의 성장을 저해하고 소모품 노동력을 온존시켜 노동시장의 분단을 심화시킬 것이다. 경제적 불평등의 완화는커녕 심화를 초래할 것이 명확한 정책수단의 선택이 성장을 촉진할 수는 없을 것이다. 넷째, 노동조건의 악화로 인한 워라밸의 후퇴는 저출산과 인구감소를 초래하여 ‘대한민국의 소멸’을 재촉할 것이다. 노동시간 연장은 반인간적일 뿐만 아니라 반경제적이다.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노동은 마땅히 지양돼야 한다.

선진국의 발전경로에는 예외 없이 실질임금의 꾸준한 상승과 노동시간의 단축이 있다. 경제원론에서 노동의 공급곡선이 후방굴절형의 모습을 가지는 이유이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의 위상을 굳힐 수 있는 노동시장개혁은 법정노동시간인 주 40시간을 원칙으로 하고 주 12시간의 연장근무는 물론 포괄임금제도도 예외적으로만 허용하여 무보수노동이 사라지는 노동시장의 정상화이어야 한다. 한 손으로는 인재양성을 외치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임금인상 억제와 노동시간 연장을 강제하는 것은 페달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는 것과 같다.

한국경제가 ‘제2의 일본’을 피하는 길은 인재 기반의 산업 구조를 갖추는 길뿐이다. 그리고 이 인재는 역량과 성과에 걸맞은 ‘공정한’ 대우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 정치와 외교뿐만 아니라 경제에서도 ‘신냉전’의 최전방에 놓인 선진 대한민국에 걸맞은 역량이 아쉽기 그지없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독일 브레멘대 경제학 박사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