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5도위원회 대해부-②] '역할 모호' 시장·읍면장에 연 수백만원 지급…친인척간 임명 의혹도

2022-06-29 07:01

서울 종로구 구기동에 위치한 이북5도위원회. [사진=이북5도위원회]

대한민국 평양시장, 개풍군수. 일반에게 다소 생소하지만 엄연히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직함이다. 이들은 통일을 대비해 헌법에 규정돼 있는 영토인 미수복 이북의 행정구역을 관리하려는 목적으로 임명됐다.
 
명예직으로 이북 각 도에 97명의 시장·군수가 존재한다. 각 시군에는 911명의 읍·면·동장도 임명돼 있다. 이북의 시장·군수는 도지사, 읍·면·동장은 시장·군수의 추천으로 위촉된다. 연간 인당 수백만원의 세금이 수당 명목으로 지급된다.
 
이북5도위원회(이하 이북5도위)에 따르면 명예 시장·군수는 인당 연간 444만원(월 37만원), 읍·면·동장은 168만원(월 14만원)을 받는다. 명예 시장·군수 약 4억4000만원, 명예 읍·면·동장 15억3000만원 등 연 약 20억원에 달하는 세금이 쓰인다. 이북5도위의 올해 연간 예산 99억1100만원의 약 20%에 해당한다.
 
문제는 국민의 세금이 쓰이는 이북5도위의 명예시장·군수와 읍·면·동장의 임명 과정이 투명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기 때문이다. 일부 명예 읍·면·동장의 경우 이름만 올려놓고 사실상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아주경제가 이북5도와 미수복 경기·강원 지역의 97명의 명예 시장·군수와 911명의 읍·면·동장의 명단을 전수 조사한 결과 동일 지역에서 친인척으로 의심되는 인물이 복수로 위촉된 사례를 20건 넘게 발견했다.
 
같은 시·군내 명예 시장·군수와 읍·면·동·장의 성과 항렬이 일치하는 사례 7건, 같은 시·군내 읍·면·동·장간 성과 항렬이 일치하는 사례 15건, 같은 시·군 내 특정 성이 시장·군수와 읍·면·동·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사례 1건 등이다.
 
이북의 읍·면·동장은 시장·군수의 추천으로 위촉되는데 이 과정에서 친인척 등이 읍·면·동장 직을 나눠 먹기하고 있다는 정황으로 보인다. 성과 항렬이 동일하다 해서 반드시 친인척 관계라 볼 수 없다는 지적도 있지만 반대로 친인척이지만 성과 항렬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는 더 많아 실제 부적절한 임명 사례로 의심되는 사례는 더 늘어날 수 있다.
 
구체적으로 평안북도 태천군의 경우 명예 군수와 면장 10인 중 명예 군수를 포함한 6명이 백씨 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인근의 다른 군에서는 명예 군수를 포함한 4명이 양씨 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 중 명예 읍·면장 3인은 성뿐 아니라 항렬 역시 동일했다.
 
이북5도위 관계자는 “태천군의 경우 이 지역이 백씨 집성촌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먼 친척으로 종친회 관계일 수 있겠지만 8촌 이내의 인척 관계는 아니다”며 “직계가족으로 판단되는 사람은 읍·면·동장 심사 시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다시 말하면 적어도 특정 지역에 종친회 관계에 있는 인물이 대거 포진해 있다는 반증으로 볼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1세대 실향민이 70~90대의 고령인 가운데 대부분 이남에서 태어난 실향민 2·3세대인 이북 명예 시장·군수와 읍·면·동장의 역할 역시 모호하다는 점이다.
 
실제 명예 시장·군수와 읍·면·동장은 이북의 각 지역을 관할하는 장이지만 헌법상 규정돼 있는 상징적 의미 외에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이북 지역 시정을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은 거의 없다. 일각에서 사실상 세금으로 활동하는 향우회 조직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이북5도위 관계자는 “명예 시장·군수, 읍·면·동장의 주요 직무는 이북5도와 월남 이북 시·군민 간 사무 협조, 북한이탈주민과의 가족결연 지원, 후세대 육성·지원, 향토문화 계승 발전 활동”이라며 “고향을 떠난 실향민들이 이북5도 활동을 통해 정서적 안정감을 느끼는 등 순기능도 많다”고 설명했다.
 
세금으로 수당을 받는 명예 읍·면·동장의 상당수가 이름만 올려놓고 사실상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사례가 빈번하지만 위원회 활동을 감시할 수 있는 감사 시스템 역시 부재한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북5도위 관계자는 “업무에 대한 직접적 감사 기능은 아니지만 자격에 맞지 않거나 불미스러운 행위를 했을 때 해촉이나 징계 조항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