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 딜레마] 커지는 인상 불가피론...'원가주의' 신호탄 될까

2022-06-26 17:08
3분기 연료비 조정단가 kWh당 3원 인상에 무게
정부, 물가 자극 우려에 고심...한전 적자난은 가속화
'유명무실' 연료비 연동제...'원가주의' 개편 목소리↑

지난 6월 19일 서울 시내 한 건물의 전기계량기.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3분기 전기요금 연료비 조정단가 조정 내용을 27일 오후 3시경 발표하기로 한 가운데 조정단가가 kWh(킬로와트시)당 3원 인상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전기요금 패러다임을 원가주의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물가 부담 등을 감안하더라도 국제 유가 흐름에 따라 변동성이 큰 연료비에 대응하기 위해 전기요금도 현실감 있게 유동적으로 조정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기요금 인상에 무게 실리지만...정부, 막판 고심
26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3분기 전기요금 인상안을 두고 고심 중이다. 산업부는 당초 21일 3분기 연료비 조정단가 인상안을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하루 전날 돌연 연기해 27일 발표한다.

한국전력은 지난 16일 정부에 연료비 조정단가를 kWh당 최대 폭인 3원을 인상해달라고 요구했다.

연료비 조정단가는 기본요금·전력량요금(기준연료비)·기후환경요금과 함께 전기요금을 결정하는 요소 중 하나로 분기마다 조정된다. 연료비 조정단가 인상 폭은 직전 분기 대비 kWh당 최대 ±3원씩이며, 한전이 산정내역을 제출하면 산업부, 기획재정부 등 관계 부처가 협의해 결정한다.

이번 연료비 조정단가 산정을 두고 한전 경영난을 이유로 정부 안팎에서는 인상 불가피론이 나오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2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2030 엑스포 개최 경쟁발표(프레젠테이션·PT)를 마친 뒤 동행 기자 오찬 간담회에서 현재 전기요금을 ‘비정상’이라고 표현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26일 'KBS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전기요금 인상에 동의를 표하며 “차일피일 미룰 수 없기 때문에 조만간 적정 수준의 전기요금 인상안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력시장 주무 부처인 산업부 내에서도 물가 상승을 감수해서라도 한전 적자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박일준 산업부 2차관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에너지 정책의 정치화를 지적하며 “전기요금을 어느 정도 인상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도 억누른 부분이 있다”고 언급했다.

현재 한전 적자 개선은 주요 매출원인 전기요금 인상 없이는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해 5조8601억원에 달하는 역대급 적자를 기록한 한전의 매출 중 전기판매 비중은 95.7%를 차지했다.

올해 1분기에는 이미 7조7869억원 영업손실을 내며 전년 전체 규모를 넘어섰다. 최고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한전의) 하반기 원가 부담은 더욱 확대된다”며 “추가적인 조치가 없다면 연간 영업손실은 20조원이 넘을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흑자 전환을 위해서는 전기요금을 30% 이상 올려야 하지만 물가 안정화가 더 시급하다는 점에서 현실적으로 완전한 가격 전가는 어려울 것”이라며 “근본적인 한전 재무구조와 전기요금 제도에 대한 개편이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원가주의'로 전기요금 체계 개편해야"

지난 5월 13일 서울 중구 한국전력공사 서울본부 모습. [사진=연합뉴스]

전기요금 제도에 ‘원가주의’가 반영돼야 한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정부가 ‘연료비 연동제’ 도입 후 6차례 연료비 조정단가 조정 과정 중 4번을 동결하기로 결정하는 등 연료비 변동분을 적기에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취지가 무색해졌기 때문이다.

오는 4분기 연료비 조정단가 인상을 두고도 물가 당국과 전력 업계 간 첨예한 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지난 2분기에 이어 3분기 연료비 조정단가 발표도 연기했고 올해 하반기에도 전방위적인 물가 상승 압력이 계속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대한전기협회, 한국전기기술인협회 등 10여개 전기산업 관련 단체로 구성된 전기관련단체협의회는 “정부가 유독 전기요금만 물가 상승을 이유로 연료비 상승률을 반영하지 않고 있다”며 원가주의에 기반한 전기요금 체계 개편을 요구했다.

정연제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해외 주요국은 원가를 반영해 올해 전기요금을 인상하면서 세금 감면, 바우처 지급, 전력회사 재정지원 등 (물가 인상) 부담 완화 정책을 시행했다”며 “지난해 (한국이) 도입한 연료비 연동제는 물가상승 우려로 정상적 운영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 등 여파로 액화천연가스(LNG)·석탄·석유 등 국제 에너지 가격은 고공행진을 했으며 프랑스(24.3%), 독일(54.3%), 영국(54%), 스페인(68.5%), 이탈리아(55.0%) 등 각국은 전기요금 인상을 추진했다.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은 “단기적으로 원가 요인의 일정 수준은 자동으로 전기요금에 반영되도록 개편돼야 한다”며 “연료비 연동제 조정요금 상·하한 변동폭 폐지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앞서 한전은 정부에 3분기 연료비 조정단가 인상안과 함께 △기준연료비 조정 △분기와 연간 연료비 조정단가 상·하한 확대 △연료비 미수금 정산 △전기요금에 총괄원가 방식을 활용한 원가 상승요인 반영 등을 제안했다.

한전 관계자는 “올해 상반기에 연료비가 지속적으로 급등한 부분을 반영해 최대한 빨리 기준연료비를 재산정해야 한다”며 “현재 연료비 조정단가 상한으로는 국제 연료가격을 반영할 수 없고 적절한 원가와 투자 보수를 반영한 총괄원가 방식을 통해 전기요금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정부도 전기요금에 ‘원가주의’ 도입 필요성을 인지하고 전기요금 제도 개편을 염두에 두는 모양새다.

이창양 산업부 장관은 취임 전 인사청문회에서 “중장기적으로 기본적인 원칙은 원가와 시장 원리를 반영하는 가격 결정 방향이 맞다”며 “지금까지의 관행은 전기요금이 물가라는 이유로 원가가 올라도 반영을 못 하고 억눌린 채 운영됐는데 이런 상황으로 간다면 한전의 적자, 공기업의 적자가 국민 부담으로 가게 된다”고 밝힌 바 있다.

올해 산업부는 전기위원회 조직 개편을 추진할 예정이다. 그동안 전기위는 전기요금 조정이나 체제 개편 등 업무를 맡았지만 전기요금 결정권은 정부에 있어 역할에 한계를 보였다. 전기요금 결정 과정에서 전기위는 심의만 할 뿐 최종 결정은 산업부가 기재부와 협의 과정을 거쳐서 발표한다.

산업부는 전기위의 독립성과 전문성 강화를 위해 올해 연말까지 연구용역을 진행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내년에 필요한 법 개정 작업을 추진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