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틴전시 플랜'의 추억...北風은 어떻게 이용됐나
2022-06-21 15:08
'文정부' 도덕성 직격하는 與....野 "새로운 북풍이냐" 발끈
2020년 9월 발생한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을 둘러싼 여야 공방이 치열해지고 있다. 국민의힘 등 여권은 이 사건뿐만 아니라 2019년 발생한 '탈북 선원 강제 북송 사건' 진상 규명도 예고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남북 대화' 기조에 밀려 부적절하게 처리된 의혹이 있는 북한 관련 사건들을 뒤집어 보겠다는 뜻이다.
'탈북 선원 북송 사건'은 2019년 북한 오징어잡이 배에서 선장의 가혹행위에 불만을 품은 선원 3명이 선장 및 동료 16명을 살해하고 탈북해 귀순 의사를 밝혔으나, 당시 문재인 정부가 이를 거부하고 판문점을 통해 북측에 돌려보낸 사건이다.
헌법상 북한주민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탈북민의 강제 북송은 헌법 위반 가능성이 있다. 아무리 흉악범이어도 우리 법정이 판단하고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21일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에서 "우리나라에 들어왔으면 우리 헌법에 따라 대한민국 국민으로 간주되는데 북송시킨 것에 대해 많은 국민이 의아해하고 문제 제기를 했다"며 진상 규명 필요성에 공감했다.
◆북풍은 무엇인가...과거 사례 살펴보니
북풍은 기상학적 용어로는 북쪽에서 부는 바람이다. 정치적으로는 북한의 무력 도발 혹은 대화 제안 등이 우리 정치권에 미치는 영향을 뜻한다.
불과 3개월 뒤 박정희 정부는 10월 유신을 단행하고, 통일주체국민회의를 발족시켰다. 유신헌법은 이 회의를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추진하기 위한 온 국민의 총의에 의한 국민적 조직체로서 조국 통일의 신성한 사명을 가진 국민의 주권적 수임기관'으로 규정했다.
공교롭게도 유신헌법이 발표된 12월 27일, 북한도 사회주의 헌법을 채택했다. 노동당의 우월적 지위를 명시하고 주체사상을 헌법에 규범화하는 등 김일성 주석의 절대권력 기반을 공고히 했다. 이에 당시 남북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권력 강화를 위해 일종의 '평화모드'를 조성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이후에도 북풍은 우리 정치권, 특히 선거에 꾸준한 영향을 미쳤다.
제13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기 불과 보름 전인 1987년 11월 'KAL기 폭파사건'이 발생했다. 북한 정권의 지령을 받고 일본인으로 위장한 특수공작원 김승일, 김현희 2인조가 대한항공 비행기를 폭파한 사건이다. 사건 자체는 북한의 소행으로 결론 났지만 당시 전두환 정권은 적극적으로 안보 이슈를 키웠고, 노태우 민주정의당 후보의 승리 요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1992년 10월 제14대 대선을 두달 앞두고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현 국가정보원)는 '이선실 간첩단 사건'을 발표했다. 재야 운동권 세력이 간첩의 사주를 받아 활동하는 것처럼 발표했고, 이는 김대중 당시 민주당 후보의 '색깔론'을 강화시켰다. 대선 승리의 영광은 김영삼 민주자유당 후보에게 돌아갔다.
1997년 제15대 대선을 앞두고는 '총풍 사건'이 있었다.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 진영에 유리한 분위기를 형성하기 위해 청와대 관계자 등이 북측에 휴전선 무력시위를 요청했다는 의혹이다. 결과적으로 무위로 그쳤지만, 이를 계기로 '북풍'의 실체가 드러났다.
방향성은 다소 다르지만 진보 진영 역시 북풍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2000년 4월 10일 김대중 정부는 '6월 남북 정상회담'을 발표했고, 불과 3일 뒤 열리는 제16대 총선을 의식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다만 총선 판세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진 못했다. 한나라당은 133석으로 제1당을 유지했고, 민주당은 115석에 그쳤다.
2018년 6‧13 지방선거 전후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주도로 1‧2차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6‧13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등이 연속 개최됐다. 강해진 한반도 평화 분위기는 민주당의 지방선거 압승에 기여했다는 평가다.
◆'文정부' 도덕성 직격하는 與...野 "'컨틴전시 플랜' 가동이냐"
최근 여권이 제기하는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은 단순히 안보문제를 넘어 문재인 정부의 핵심 기조였던 '사람이 먼저다'를 뒤흔든다는 점에서 관심이 모인다. 문재인 정부가 판단을 내릴 증거가 부족한 상태에서 피해자를 자진 월북자로 몰아갔는데, 그 배경에는 당시 정부의 '종전 선언' 추진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게 보수 진영의 지적이다.
일각에선 '수지 김 간첩조작 사건'과 무슨 차이가 있냐는 비판도 나온다. 해당 사건은 1987년 윤태식씨가 부인 수지 김(본명 김옥분)을 홍콩에서 우발적으로 살해한 후 북한 망명을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우리 정부에 아내가 북한 간첩이어서 죽였다고 거짓말한 사건이다.
당시 전두환 정부는 윤씨의 거짓말을 충분히 인식했지만, 국민들의 민주화 열기를 돌리기 위해 조직적으로 사건을 은폐하고 조작했다. 그 결과 피해자의 가족들은 '간첩의 가족'이라고 주위의 손가락질을 받았고 완전히 붕괴됐다.
반면 민주당에서는 최근 지지율이 저조한 윤석열 정부가 전임 정부를 공격해 자신들의 지지율을 끌어올리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최근 윤석열 정부의 지지율이 50%를 넘지 못하자 '문재인 정부 때리기'로 반전을 모색하고 있다는 시선이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정부 여당의 경제위기 대응에 국민 절반이 잘 대처하지 못한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며 "국민의 불안감이 점점 커지고 있음에도 정권이 철 지난 색깔론과 기획 검찰수사로 야당을 죽이는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야당 일각에선 이번 사건을 두고 2012년 10월 제18대 대선을 앞두고 발생한 '북방한계선(NLL) 대화록 논란'을 떠올리기도 한다. 당시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현 서울 종로구청장 당선인)은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을 근거로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에게 NLL을 포기하겠다는 발언을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정 전 의원은 이명박(MB) 정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 통일비서관으로 근무한 인사다.
결국 대선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승리로 마무리됐고, 해당 녹취록은 2013년 6월 당시 국정원이 기밀을 해제하고 일반문서로 분류해 국회에 그 내용을 전달하면서 공개됐다. 공개된 자료에는 'NLL을 포기한다'는 발언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