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자동차 시장, 이유 있는 '수입차 무덤'…글로벌 인기모델도 쓴맛

2022-06-20 11:07

닛산이 최근 출시한 경형전기차 '사쿠라'. [사진=닛산 홈페이지]

전 세계 3위 규모인 일본 자동차 시장이 ‘수입차 무덤’으로 악명을 떨치는 이유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독특한 시장 환경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20일 한국자동차연구원이 발표한 ‘일본 완성차 내수시장의 특성’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일본 완성차 내수시장은 중국(2627만대)과 미국(1541만대)에 이은 3위(445만대) 규모로 나타났다. 4위는 인도(376만대), 5위는 독일(297만대)이다. 일본과 한국(173만대)의 내수시장 규모는 2.6배 차이를 보인다.

다만 일본 내수시장은 1990년 778만대로 최대치를 기록한 이후 2000년 596만대, 2010년 496만대로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지난해 판매량 445만대는 2011년 421만대 이후 10년 만에 최저치다. 이러한 하락세는 수요 측면에서 인구 감소 및 고령화, 가처분소득 감소, 도시 인구 증가로 인한 대중교통 이용 증가가 꼽힌다. 공급 측면에서는 완성차 업체들의 수출 중심 전략에 따른 차종 감소 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일본 내수시장은 자국 브랜드 판매 비중이 세계 주요국 중 가장 높다. 지난해 신차 판매량 445만대 중 일본계 브랜드 판매량이 416만대로 93.4%를 점유했으며, 기업별로는 도요타(다이하쓰 포함) 점유율이 47.4%로 1위를 차지했다.

수입차 판매는 독일 브랜드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판매된 28만대 수입차 중 다임러, BMW, 폭스바겐, 스텔란티스 산하 브랜드만 유의미한 판매량을 보였다. 그 외 기타 유럽계와 미국계, 한국계 브랜드는 합산 연간 판매량이 4만대 미만으로 존재감이 미미하다.

연구원은 수입차들이 일본에서 고전하는 이유에 대해 다양한 규제와 소비자들의 구매 성향, 비싼 유지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일본 현행법에서 자동차는 경차, 소형차, 보통차 등으로 구분된다. 지난해 신차 판매량의 37.2%가 경차(승용 및 상용 포함), 승용차 판매 60.6%는 경차·소형차로 나타났다. 경차와 소형차는 전폭 기준이 각 1.48m, 1.7m 이하로 설정돼 완성차 업체들은 정해진 규격 내에 실내 공간을 넓히고자 박스카 비중을 높이고 있다. 승용차 인기 모델 대부분이 폭이 좁은 박스카나 해치백 형태를 띠고 있는 이유다.

또한 도로의 약 85%가 도폭 평균 3.9m에 불과한 시정촌도(市町村道)며, 차고지증명제 실시로 인해 외부 주차장 이용 비율이 높다. 통행과 주차에 유리한 경차·소형차가 판매에 유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일부 구형 주차장은 전고 1.79m, 전폭 1.85m 이하 크기로 사실상 경차·소형차만 이용이 가능하다.

이러한 특수성에 글로벌 인기 모델들도 일본 내수시장에서 성공하는 경우가 드물다. 반대로 일본 내수의 인기 모델도 세계 주요 자동차 시장에서 판매되는 경우가 적다. 북미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도요타 ‘캠리’의 경우 지난해 일본 판매량은 1만대에 불과하며, 일본 내수 판매 1~10위 모델 중 북미 시장에서 판매 중인 모델은 도요타 ‘코롤라’에 그치고 있다.
 

[자료=한국자동차연구원]

일본 소비자들의 차량 구매 요인도 적잖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소비자들은 필요에 의해 자동차를 구매한다는 의식이 강하며, 70.5%가 자동차 구매 의사 결정에서 가격을 가장 중요시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자동차 유지비용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비교할 때 자동차세, 보험료, 주차료, 2년마다 부과되는 중량세 및 차검(차량검사) 비용, 고속도로 통행료 등이 높은 수준이다. 차급(경차, 소형차, 보통차)에 따른 유지비용 차이도 크다.

이러한 사정에 대다수 소비자는 자동차 구매 시 고가의 첨단 기능에 대한 지불 의사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딜로이트 조사에 따르면 자동차 주행과 직접 관련이 없는 인포테인먼트·커넥티비티 기능에서 일본 소비자들은 500달러(약 64만원) 이상 지불 의사가 미국(33%), 중국(61%), 한국(25%)보다 낮은 15.5%에 머물렀다.

연구원은 일본 완성차 내수시장이 당장 큰 변화를 보일 가능성은 낮은 편이지만, 향후 전기차가 가격경쟁력을 지닌다면 소비자 구매 행태에 변화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다.

이호중 한국자동차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중년·노년 인구가 주축이 되는 보수적 소비 행태와 자동차 관련 각종 제도 및 교통 환경, 경제 성장률 등을 고려하면 일본 소비자들의 자동차 구매 행태에 큰 변화는 없을 전망”이라며 “다만 전기차의 총소유비용(TCO, 초기 구매비용과 보유·활용을 위한 비용을 모두 합친 금액)이 내연기관·하이브리드차와 비교할 때 저렴해지면 전기차 대중화에 발맞춰 인프라 확충·제도 개선이 진행되면서 시장 변화를 자극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일본 승용차의 연평균 주행거리는 6186km에 불과해 지금 시점에서는 TCO 측면에서 전기차의 높은 차량 가격이 낮은 유지비로 상쇄되기 어렵다”면서 “올해 5월 닛산과 미쓰비시가 각각 경영 전기차인 ‘사쿠라’, ‘eK X EV’를 출시, 가격과 유지비 측면에서 경쟁력을 보이고 있어 전기차 변화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자료=한국자동차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