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미 콜롬비아마저 '좌파' 택했다…"잔인한 빈곤 못 견뎌"

2022-06-20 15:09
사상 첫 좌파 대통령…미국과의 관계 큰 변화 생길 듯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 당선인 [사진=EPA·연합뉴스 ]

콜롬비아에 사상 처음으로 좌파 정권이 들어선다. 

19일(현지시간) 콜롬비아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좌파연합 '역사적 조약'의 후보 구스타보 페트로(62)가 50.4%를 얻으며 승리했다고 로이터는 보도했다. 기존 정권들과 전혀 다른 성향을 가진 페트로의 당선은 콜롬비아의 미래를 크게 바꿔놓을 것으로 보인다고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은 이날 전했다. 
 
빈곤율 40%, 변화가 절실했던 콜롬비아
콜롬비아의 선택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콜롬비아의 좌파 무장 혁명조직인 FARC는 수십 년간 정부와 대립해왔다. 이 같은 갈등 탓에 오랫동안 좌파는 합법적 정치 세력으로 성장하지 못했다. 그러나 2016년 FARC는 정부와의 평화협정에 서명하면서 본격적으로 기성 정치판에 참여하게 된다. 

페트로 당선인은 FARC가 아닌 M-19로 불리는 무장 조직에 소속돼 있었으며, 이 조직은 1990년에 해체됐다. 이후 M-19가 1990년에 콜롬비아 정부와 평화조약을 맺고 민주동맹 정당으로 거듭났다. 페트로 당선인은 이처럼 장기간 이어진 정치활동 속에서 강력한 야당 정치인으로 성장했으며, 보고타의 시장과 상원의원을 지냈다. 

남미의 대표적 친미 국가인 콜롬비아가 좌파 지도자를 선출한 것은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10%에 달하는 인플레이션, 20%에 달하는 청년실업률과 무려 40%인 빈곤율에 허덕이던 콜롬비아 국민들에게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페트로 당선자는 대선 유세 당시 젊은 층의 지지를 많이 받았다. NYT는 "젊은이들 대부분은 기존 정권들이 약속한 공약을 거의 이행하지 않으면서 국민들을 배신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어 "수십 년간 이어진 보수 집권세력에 좌절한 국민들은 사회보장프로그램의 확장, 부자 증세, 석탄·석유 등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 줄이기 등을 내건 페트로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라고 설명했다. 

페트로 당선인은 오는 8월 7일에 취임한다. 부통령은 환경운동가인 프란시아 마르케스(40)가 맡게 됐다. 마르케스 부통령 당선인은 첫 흑인 여성 부통령이라는 타이틀로 더욱 주목받았다. 

페트로 당선인은 이날 승리 연설에서 "오늘 우리가 써 내려간 이야기는 콜롬비아는 물론 라틴아메리카, 전 세계를 위한 새로운 이야기가 될 것이다"라면서 "우리는 절대 유권자들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좌파 물결 거세지는 남미···"페트로의 정책은 경제적 자살" 
콜롬비아의 이례적 선택은 남미의 정치적 지형에도 큰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브라질, 멕시코,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를 포함한 다른 주요 중남미 국가들은 모두 좌파 정권을 경험한 적이 있다. 특히 최근 몇 년간 남미에서는 좌파의 물결이 다시 거세졌다. 2018년 말 이후 멕시코,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 온두라스 등에서 좌파 정권은 연이어 세력을 잡았다. 오는 10월 치러질 브라질 대선에서도 좌파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렇게 될 경우 미국의 영향력이 컸던 남미의 대외관계 지형도 바뀔 수 있다. 

블룸버그는 "페트로의 당선은 (콜롬비아의) 경제 변화의 가능성을 높이는 것뿐만 아니라, 수십 년 동안 이어졌던 미국과의 강력한 동맹관계를 뒤흔들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콜롬비아는 미국의 남미 외교정책에서 주춧돌 역할을 하는 국가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페트로 당선인은 기존의 미국과의 관계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미국의 코카인 근절 방안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보인 것은 물론 기존 무역협정의 재협상,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과의 관계 회복 등을 과제로 내걸었기 때문이다. NYT는 "이 모든 정책들은 미국과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것들이다"라고 지적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약 200만명의 베네수엘라 이민자들은 경제적, 정치적, 인도적 위기 속에서 콜롬비아로 피난을 가기도 했었다.

다만 페트로 당선인은 올해 초 인터뷰에서 바이든 대통령 정부와 잘 협력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며 미국과의 관계는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협력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아마존의 급속한 파괴를 막을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지지자들은 페트로의 당선에 환호하고 있지만, 시장은 이번 대선 결과를 불안한 시선으로 보고 있다. 특히 석탄·석유 산업의 축소는 콜롬비아의 수출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또한 국내 농민과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시행하는 수입 관세 인상 등과 같은 보호주의적 무역정책은 다른 국가들과의 무역갈등을 불러올 수도 있다. 

그러나 페트로 당선인은 현재 콜롬비아 경제는 이미 파탄이 났다고 판단하고 있다. 특히 과도한 석유 수출 의존과 지나치게 번창한 불법적 코카인 사업 등이 근본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런 경제 시스템은 결국 '빈익빈 부익부'를 부추긴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페트로 당선인은 새로운 석유 탐사를 금지하고, 다른 산업 분야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일자리, 공공보건 시스템, 고등교육 보장 등을 공약으로 내걸면서 반대로 부자 증세를 약속했다.

페트로 당선인은 올해 초 인터뷰에서 “오늘날 우리의 상황은 이른바 모델의 부재로 생긴 일이다"라면서 "결과적으로 이런 모델의 부재는 비참한 빈곤을 몰고 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야심 찬 경제 정책에 우려를 표하는 이들도 있다. 전 재무장관 중 한 명은 페트로 당선인의 에너지 정책은 "경제적 자살"이라고 강력히 비판하기도 했다고 NYT는 전했다.

INON캐피털의 아나 베라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현지 시장에서 변동성이 커지고 페소화 약세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내다봤다. 투자자들은 페트로 당선인이 집권 이후 경제 주요 부처 수장에 누구를 임명할지에 주목하고 있다고 외신은 전했다. 

한편 좌파연합이 의회에서 아직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한 탓에 페트로 당선인이 실제로 공약을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블룸버그는 지적했다.



 

구스타보 페트로 대통령 지지자가 대선 결과를 축하하면서 6월 19일(현지시간) 콜롬비아 칼리에서 기쁨에 차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