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 족쇄 또 필요?"..이상민, 차기 청장 면담에 일선 '부글'
2022-06-15 14:30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경찰청장 후보군을 면담하고, 행안부 내 '경찰국' 설치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경찰 내부가 들끓고 있다. 사실상 정부의 입맛에 맞게 움직였던 '치안본부'로 돌아가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일선 현장에서는 경찰에 '족쇄'를 채우려는 것 아니냐는 불만의 목소리부터 지휘부가 책임지고 용퇴하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15일 경찰에 따르면 이 장관은 윤석열 정부 첫 경찰청장 후보가 될 치안정감 승진자 6명과 지난달 말 '개인 면담'을 한 데 이어 9일엔 김창룡 경찰청장과 직접 만났다.
윤 정부에서 진행되고 있는 '행안부를 통한 경찰 통제' 논란이 잇따르는 가운데 이 장관이 경찰 수뇌부를 연일 직접 면담하면서 '충성 검증'을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행안부 장관이 경찰청장을 포함해 총경급 이상 경찰관에 대한 인사 제청권을 갖고 있지만 대통령 임명 전에 일대일로 면담하는 건 전례가 없었다.
이 장관이 현직인 김 청장을 만난 것도 다소 의아하다는 반응이다. 새로 취임한 행안부 장관이 경찰청장과 면담하는 건 이전부터 있던 관례라는 경찰 설명에도, 경찰을 통제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장관과 청장이 만나 어떤 '덕담'이 오갈 수 있겠냐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경찰 통제 관련 명확한 입장을 내지 않았던 지휘부에 대한 일선 현장의 불신은 커지고 있다.
경찰 내부에서는 80~90년대 치안본부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과거 내무부 산하 치안국일 때는 경찰이 정치권의 사병처럼 움직였고, 모든 의사결정을 내무부 장관 이름으로 진행했던 것이 우려의 배경으로 꼽힌다.
최근 행안부 '경찰 제도 개선 자문위원회(자문위)'는 경찰 통제 방안 관련 논의를 마무리하면서 대통령 직속 경찰개혁위원회 설치를 권고안에 담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직속 경찰개혁위원회가 만들어지면 행안부 사무에 치안을 포함하는 안 등 경찰 통제를 위한 방안이 광범위하게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남구준 국가수사본부장은 지난 13일 기자회견에서 경찰국 신설 관련 질문에 "논의가 진행 중이고 어떻게 결론이 날 것인지 모르는 상황이다. 수사와 관련된 사항도 아니고 경찰청 전체 차원의 문제라 국가수사본부장으로서 답변하는 게 적절치 않다"고 답헸다.
김 청장을 제외하고 물갈이된 지휘부는 아직 별다른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다.
김 청장은 지난달 30일 기자간담회에서 해당 사안과 관련해 "경찰권 통제 뿐만 아니라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책임성을 보장하기 위해 제정된 경찰법 정신도 충분히 고려될 것"이라고 말한 이후에는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
다만 다음 주 행안부 자문위가 논의 결과를 발표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이르면 정례 기자간담회가 예정된 27일께 김 청장이 추가 입장을 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경찰 지휘부는 최근 치안정감과 치안감 인사로도 어수선한 상황이다. 특히 차기 청장 후보군인 치안정감은 개방직인 국가수사본부장을 제외하고 모두 물갈이된 가운데 행안부 경찰 통제에 대해서도 입장이 엇갈리는 분위기다.
"청장 용퇴 결정해야" 비판 잇따라
행안부가 경찰 제도개선 자문위원회를 내세워 경찰 직접 통제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지휘부가 공식적인 입장 표명을 꺼려하자 일선 경찰관들 사이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부산 지역의 한 경찰관은 경찰 내부망 '소통활력소'에 "청장님 잔여임기가 38일 남았는데 이 기간 행안부 경찰국 신설이 완성되면 치욕을 남긴 청장으로 기억될 것"이라며 "남은 기간 용단해 경찰국 신설에 반대한다고 말하고 용퇴하라"고 촉구했다.
전날 경남 경찰 직장협의회(직협)에서 처음 행안부 경찰국 신설 반대 성명을 낸 데 이어 나주경찰서 직협은 청사 밖에 경찰국 반대 플래카드를 걸고 사진을 찍어 내부망에 공유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각 지역 지구대·파출소에서 '행안부 노비계약'이라며 비판 글을 연이어 올리고 있고, 개인적으로 행안부 경찰 통제 방안 추진에 반대하는 서명부를 만들어 돌리는 경찰관들도 생겨났다.
'경찰 쇠사슬이 또 필요하나'라는 글을 올린 경찰관은 "공무원 조직은 정치적인 영향력에서 자유로워야 대국민 서비스에만 전념할 수 있고, 그래야만 치안 서비스의 질이 높아지는 것 또한 자명한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치안총감 승진자를 내정하기 위해 일일이 불러 대면면접을 실시했다는 기사를 봤다"면서 "경찰 총수 길들이기, 통제에 나선 것이고 현 정권에 충성 다짐받는 자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이미 일선 현장에서는 수사 경찰관을 괴롭히는 문제로 외압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지적된다. 검사는 법으로 신분이 보장되는 측면이 있는 반면 경찰은 그렇지 않다는 것. 지난해 발생한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폭행 혐의 관련 수사 경찰이 해임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행안부 경찰국이 신설되면 승진에 목을 맨 윗선 등 문제가 현 상황보다 더 악화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 내부에서는 이런 반발 글과 분위기를 수집해 모두 지휘부에 보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