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환율개입은 또다른 '퍼펙트 스톰'? …"엔저 잡으려 美 국채 팔 수도"

2022-06-15 15:00

엔저에 대한 일본 당국의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15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달러·엔 환율은 135엔대를 기록하고 있다. 미·일 금융정책 방향성 차이가 나날이 선명해지는 가운데 원유 가격 상승으로 일본 무역적자가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에 엔화 매도가 가속화하고 있다.

엔저가 좀처럼 진정되지 않으면서 일본 정부 당국자들도 우려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BOJ) 총재에 이어 14일 스즈키 슌이치 일본 재무상도 과도한 엔저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를 냈다. 슌이치 재무상은 엔저와 관련해 G7(주요 7개국) 통화당국과 긴밀하게 소통하며 필요에 따라 적절한 조처를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국의 구두개입성 발언에도 불구하고 엔화 하락세는 진정되지 않고 있다. 

엔화 약세가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커지면서 일본 정부와 중앙은행이 엔화의 추가 추락을 막기 위해 적극적 개입에 들어갈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참의원 선거도 다가오는 시점에서 더 이상 기업과 시민들이 겪는 경제적 고통을 외면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지적이다. 
 
엔저의 추락 막아라···BOJ 움직임 등 주시 
일단 가장 가능성이 높은 조치는 일본은행(BOJ)이 장기금리 제한 상한선을 높이는 것이다. 캐피털이코노믹스의 톰 러모스 일본 이코노미스트는 "BOJ가 머지않아 장기금리 상한을 0.25%에서 0.50%로 올릴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일본은행은 금융완화 정책 중 하나로 현재 ‘지정 오퍼레이션(지정된 가격으로 국채를 무제한 사들이는 공개시장조작)’을 시행하고 있다. 10년물 국채 금리가 0.25% 이상으로 치솟으면 무제한으로 국채를 매입해 금리를 누르는 것이다. 

이 같은 공개시장조작 조치는 미국과 일본 국채 금리의 차이를 키우면서 달러·엔 환율 상승을 부채질해왔다. 최근 소비자물가의 빠른 상승으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이 속도를 내자 달러·엔 환율 상승이 더 빨라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만약 일본은행이 상한선을 높인다면 일본의 국채 금리도 시장 흐름에 맞춰 0.25%를 넘어 상승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미·일 국채 금리 차가 줄면서 엔저 흐름에 다소 제동을 걸 수는 있다. 

그러나 연준이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가운데 국채 금리 상한선을 올리는 조치보다 강력한 대책이 나와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니혼게이자이(닛케이)는 14일 "급격한 엔저에 일본 당국의 직접적 환율 개입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전했다. 

닛케이는 "지난 10일 일본 재무성, 금융청, 일본은행 등 3자 회동을 계기로 일본 당국의 환율 개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당시 간다 마사토 재무성 재무관과 우치다 신이치 일본은행 이사, 나카지마 준이치 금융청 장관은 국제 금융자본 시장에 관한 정보 교환은 물론 엔화 변동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다.

성명은 "환율은 경제 상황에 맞춰 안정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고 급격한 변동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어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은 긴밀하게 연계해 환율시장 동향과 경제, 물가 등에 대한 영향을 한층 더 주의 깊게 살피겠다"고 밝혔다. 

닛케이는 이번 성명은 당국이 환율시장에 개입하겠다는 '신호'라고 평가했다. 일본 재무성에 따르면 3자 회합에서 문서를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닛케이는 "수입물가가 급등하는 원인 중 하나인 엔화 약세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지적했다. 실제 5월 수입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43.3%나 올랐다. 에너지·원자재 등 가격 상승을 반영하는 계약통화 기준 상승률은 26.3%였다. 결국 엔화 약세로 수입물가가 17%포인트나 더 오른 셈이다. 게다가 이 비율은 서서히 상승하고 있어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정권도 엔화 약세를 더 이상 방치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닛케이는 지적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미국, 달러 매도 반기지 않을 것
일본은 재무상 권한으로 환율 개입을 수행하도록 하고 있다. 환율의 급격한 변동을 억제하고, 그 안정화를 도모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단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1991년 이후 일본의 환율 개입 규모는 누계로 85조8000억엔에 달한다. 다만 엔화 매도 개입이 80조9000억엔으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엔화 매입 개입은 누계로 4조9000억엔에 불과하다. 일본은 그동안 주로 수출에 악영향을 미치는 엔고를 경계해왔다. 

게다가 일본 정부의 환율 개입은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전반과 2010~2011년에 걸쳐서 활발하게 행해졌지만 2011년 11월 이후에는 한 번도 없었다. 엔화 매입 개입은 1998년 6월을 마지막으로 20년 이상 없었다.

다만 환율개입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미국 측 반응이 문제다. 일반적으로 환율 개입은 기축통화인 달러를 대상으로 이뤄진다. 엔을 매수하고 달러를 매도하게 된다. 달러 가격 하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는 곧 미국의 수입물가 상승으로 연결되면서 인플레이션으로 고통받는 미국 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다. 

앞서 미국 재무부는 환율 정책 보고서를 통해 환율 개입은 지극히 예외적인 상황에 한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적절한 협의 역시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이번 개입은 엔화 매도를 통한 엔저를 노리는 것이 아니라 엔화 매수를 통한 엔고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인플레이션이 심화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닛케이는 지적했다. 

게다가 엔화 매입 개입을 할 때에는 보유 외환을 사용하게 된다. 1조3800억 달러에 달하는 일본 외환보유액 대부분은 미국 국채가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일본이 엔화 매입으로 환율 개입에 나선다면 미국 국채의 대규모 매각이 발생하게 된다. 그러잖아도 혼란스러운 미국 채권시장에 교란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미국 측 양해를 얻지 않고도 환율 개입은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미·일 간 외교 갈등이 생길 수 있으며 미국 측 협력을 얻을 수 없게 되어 미·일이나 G7에서 협조를 통한 환율 개입을 실현하기도 힘들다. 

엔화 매입 개입을 실시해도 엔저 진행을 막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일본 민간 경제연구기관인 닛세이기초연구소는 "과거 사례를 돌아보면 (일본 정부의 환율) 개입 효과는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개입 효과를 어떻게 확인할지도 문제지만, 일본 정부가 여러 나라 협력 없이 실시하는 단독 개입은 효과가 미미하다는 것이 과거 자료를 보면 드러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1991년 이후 정부가 대 달러 단독 개입을 한 달은 65개월에 달하지만 이 중 개입 당월 환율이 목표대로  움직인 기간은 18개월(28%)에 그친다. 

닛세이기초연구소는 "앞으로도 엔저가 계속되면 '나쁜 엔화'에 대한 비판을 우려한 정부가 엔화 매입 개입에 나설 가능성이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실행에 옮기기까지는 많은 난관에 부딪칠 수 있다"면서 "실시했다고 해도 효과는 그다지 기대할 수 없다는 부정적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