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값 급락] 美긴축·무역적자에 달러 이탈 악순환... "하반기도 안심 못해"

2022-06-09 11:00
작년부터 원화 하락세... 올해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더 하락
무역수지 적자 악화되는 악순환... 하반기에도 위험요인 지속

원화값이 연일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인한 경기 둔화 우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국 도시 봉쇄로 인한 원자재 가격 상승, 글로벌 공급망 차질 등으로 안전자산인 달러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올라간 영향이다. 계속된 강달러로 원·달러 환율이 치솟자 정부는 원화값을 사수하기 위해 달러를 투입하면서 외환보유액은 3개월 연속으로 줄었다. 올해 하반기에도 원화값을 떨어뜨릴 부정적인 요인들이 해소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13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원·달러 환율이 표시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올해 들어 치솟은 환율... 하루 사이 10원 이상 요동치기도
최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요동치고 있다. 지난 7일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종가보다 15원 오른 1257.5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 같은 상승 폭은 지난해 2월 26일 15.7원 상승한 이후 1년 3개월 만에 가장 큰 수준이다. 지난 2일에는 전일 대비 14.9원이나 오르는 등 원·달러 환율은 하루 사이에 10원 이상 급등하는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달 13일 1290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지난 한해 1100원대였던 점을 고려하면 현재 원화 가치는 여전히 낮다는 평가다. 8일 기준 원·달러 환율은 1253.8원에 장을 마감했다.
 
원·달러 환율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가시화되기 시작한 지난 3월 4일에 1200원을 돌파했고, 2주 만에 1230원선을 뚫었다.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우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전망까지 더해지면서 환율은 고공행진했다. 글로벌 금융시장이 불안정해지자 상대적으로 안전한 자산인 달러에 자금이 몰린 영향이다.
 
원·달러 환율이 치솟자 정부는 외환보유액으로 원화값 하락 방어에 나섰다. 그 결과 5월 말 기준 국내 외화보유액은 지난 3개월간 140억6000만 달러(약 17조6300억원) 감소한 4477억1000만 달러(약 561조6521억원)를 기록했다. 지난 7개월간 200억 달러(약 25조900억원) 이상 줄었다. 한국은행은 외환시장 변동성 완화 조치 등의 영향으로 전체 외환보유액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그래픽=김효곤 기자]

지난해 美 긴축 전망, 中 경기 둔화 우려에 원화 약세 본격화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달러가 강세로, 원화가 약세로 돌아서기 시작한 시기는 2021년이다. 미국이 양적완화 정책의 규모를 점진적으로 축소해나가는 ‘테이퍼링’을 예고하면서 달러는 반등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중국 부동산개발업체 2위인 헝다그룹이 채무 불이행과 글로벌 원자재 가격 상승, 공급 병목 현상(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확대 우려로 달러는 강세를 유지했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2021년 원·달러 환율 상승률은 8.2%였으나, 달러인덱스와 신흥국 대미 환율은 전년 대비 각각 6.3%, 2.7% 증가했다. 원화 가치가 달러뿐만 아니라 신흥국 통화보다도 약세를 보였다는 의미다.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한 2020년, 글로벌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자 원화는 약세를 보였다. 원자재 가격 상승은 자원 수입국인 미국의 교역조건을 악화해 달러 가치가 하락하는 게 일반적인데, 이번에는 글로벌 공급 병목 현상과 맞물려 달러가 강세가 되는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졌다. 인플레이션 우려가 나오자 미 연준의 정책 기조가 긴축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의 경우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아 원자재 가격 상승이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면서 원화 가치가 하락했다.
 
중국의 경기 둔화 우려도 원화 가치가 하락한 요인으로 지목된다. 2020년 기준, 한국의 대중 교역 의존도는 24.6%로, 다른 아시아 국가 대비 높은 편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지난해 크게 오른 국내 주식을 대거 매도한 것도 원화 약세를 불러왔다는 분석이 나온다.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기 시작한 2020년 4월부터 12월까지 국내 주가 상승률은 54.2%(코스피 기준)로, 중국(19.2%)과 신흥국(41.3%) 주가 상승률보다 높았다. 2021년에 돌입하면서 국내 주가 상승세가 둔화되자 외국인 투자자의 순매도가 늘었고, 이는 원화 가치 하락으로 이어졌다.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화를 정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원화값 하락↔무역수지 적자 악순환
원화값이 떨어지면 수입 물가가 올라 국내 물가가 전반적으로 오르게 된다. 한국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원화값이 1%포인트 낮아지면 소비자물가는 0.1%포인트 오르고, 생산자물가는 0.2%포인트 오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로 올해 1분기 기준, 원·달러 환율이 전년 동기 대비 8.2% 감소하면서 물가 상승률이 0.7%포인트 올랐다.
 
한국은 글로벌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지난해 12월부터 무역수지가 적자로 돌아섰다. 올해에만 무역수지 누적 적자 규모는 78억4000만 달러(약 9조8392억원)다. 지난해 1월부터 5월까지의 무역수지는 129억5000만 달러(약 16조2500억원) 흑자였다. 무역수지 적자는 원화값 하락을 불러오고, 원화값 하락은 다시 물가 상승과 무역수지 적자로 연결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올해 하반기에도 원화값을 떨어뜨릴 요인이 많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전 세계적인 원자재 가격 상승, 공급망 차질 문제가 해소되지 않아 물가는 더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물가를 잡기 위한 주요국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경제 성장률이 꺾이면 소비심리 위축, 구매력 저하가 발생해 물가는 오르는데 경기는 후퇴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주요국의 기준금리 인상, 고유가로 인한 무역수지 악화가 올해 하반기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은 지난달 4일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에 나섰고, 6월과 7월 연방시장공개위원회(FOMC)에서도 추가로 빅스텝을 밟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9월에도 금리를 올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EU 또한 이에 대응하기 위해 7월 중에 기준금리를 인상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캐나다, 뉴질랜드, 멕시코 등의 중앙은행 또한 지난 한 달 사이에 빅스텝을 밟았다.

유가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높은 가격으로 유지되고 있다. 유가는 이미 크게 올라 향후 진정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나, 국내 무역수지 악화에는 계속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소재용 신한은행 S&T 리서치팀장은 “한국의 경제 구조상 원화가치는 글로벌 경제 성장에 우호적인 반면 원자재발 물가 상승에는 부정적으로 작용한다”며 “6월 미국 FOMC 전후로 원화 환율의 점진적 안정을 기대할 수 있지만, 중장기 달러 강세 기조 자체는 훼손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