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균 칼럼] '국민통합' 지름길, 보편적 가치 수호에 있다

2022-06-09 16:38

[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명예교수 ]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한 달째 벌어지고 있는 ‘언어폭력 시위’를 둘러싸고 정치권은 물론 시민사회로까지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시위대를 모욕죄로 고소하기에 이르렀고 윤석열 대통령이 집회시위의 자유를 거론하면서 “법대로”를 천명하자 민주당은 정치인과 자연인을 구분하지 못하는 “옹졸함의 극치”로 원색적 비난을 쏟아냈다. 정치를 떠나고자 했던 문재인 전 대통령의 바람과는 반대로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나의 자유는 타인의 자유가 시작되는 곳에서 멈춘다”는 존 스튜어트의 밀의 언명이 다시 소환되어야 할 것 같다. 이 간명한 자유주의 원칙은 코로나가 창궐할 때 마스크 착용과 백신접종 의무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지를 두고 서구사회에서 논란이 일었을 때 새삼 주목되기도 했었다. 그 와중에 한국 사회의 성공적인 코로나 방역이 ‘유교적 순종주의’의 결과로 폄하되기도 했다. 이 시샘은 ‘촛불혁명’의 역사적 사실 앞에서 금세 수그러들었고 오히려 한국 사례는 중국의 ‘전면봉쇄’에 대비되는 투명하면서 민주적인 방역으로 칭송되기에 이르렀다.

두 전현직 대통령이 가담하면서 확산되고 있는 작금의 자유 논쟁은 한국 정치문화의 발전방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예우에서 상반되는 모습이 두드러진다. 국정농단으로 사법 처리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는 과거 수사검사로서 유감을 표명한 반면에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냉정한 반응을 보인 것은 국민통합의 관점에서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조건 없이 사면하면서 정치활동을 허용한 것이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고초의 씨앗을 뿌린 것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전두환 사면 사례에 비추어본다면 조건부 사면은 어려웠을 것이다.

전두환을 사면한 명분도 국민통합이었지만 결과는 발포명령 진상규명의 실패로 ‘북한군개입설’의 허구성을 깔끔하게 정리하지 못하기에 이르렀다. 잡범에게도 요구하는 사과와 반성 없이 이루어진 사면이 초래한 예견된 결과였고 이는 이번 대선에서 후보들이 전두환의 ‘공적’을 인정하는 퇴행적인 선심성 언행으로 이어져 오히려 국민분열을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도 비슷하게 적용된다. 이로써 이들이 헌법수호를 스스로 거부했기 때문에 심판을 받았다는 엄정한 사실이 희석될 여지를 남긴 것이다. 그리고 이 교훈은 후손에게 그대로 전달될 것이다. 대통령의 사면권이 국민통합에 실제로 기여하려면 범죄자의 사과와 반성을 통해 재발방지 의지가 국민에게 충분히 전달되어야 할 것이다. 아직 기회는 한번 남아 있다. 과거사 반성을 거부하고 역사 왜곡을 일삼는 일본을 대한민국이 비난하는 것도 한반도 ‘진출’의 야욕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지금까지 국민통합을 외치지 않은 정부도 없었지만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받은 정부도 없었다.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에서 국민통합의 구호는 반대세력을 한편으로는 회유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용공’, ‘친북’의 낙인을 찍으면서 탄압하기 위한 명분에 지나지 않았다. 민주화 국면에서 국민통합은 여당과 최고통치자의 자기만족을 위한 정치행보의 명분에 지나지 않았다. 이번 대선의 승패를 갈랐던 0.73%, 24만7천표라는 역대 가장 작은 격차가 한국 사회의 갈등이 심화된 정도를 보여주는 지표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핵심은 득표율 격차가 아니라 두 세력 사이의 관계이다. 양당제를 기본으로 하는 한국 정치지형에서 승자와 패자의 갈림이 불가피한 현실에서 두 세력 사이 골의 깊이는 그들이 지향하는 목표가 양립 가능한지 배타적인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

다원주의 사회에서 다양한 집단들이 배타적이지 않은 목표를 추구하려면 국민통합의 내용을 보편적 가치로 채울 필요가 있다. 보편적 가치로서는 국민의 자유뿐만 아니라 마찬가지로 헌법적 가치에 해당하는 평등, 정의, 안전, 평화를 설정하는 것이 국민통합에 접근하는 지름길이다. 가장 강조되는 자유에서는 과거지향적인 형식적 자유뿐만 아니라 당연히 실질적 자유가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여행에 관한 자기결정권뿐만 아니라 그 결정을 실행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도 더불어 갖출 수 있도록 능동적인 국가의 책무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다시 법 앞의 평등을 넘어서 차별금지법을 조속히 통과시키고 “모든 국민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헌법 제34조①항)를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도록 복지를 확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트레이드마크처럼 각인된 공정의 가치는 능력주의나 학벌주의의 병폐를 세대에 걸쳐 온존시켜 결국 통합보다 분열을 심화시킬 위험을 안고 있다. 조세정의, 기회정의, 세대정의, 기후정의 등으로 분화되고 있는 정의 가치를 구현하는 것이 국민통합을 향한 길일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 미·중갈등, 디지털 전환의 다층적 위기국면에서 안전 가치의 중요성도 더욱 커지고 있다. 군사외교안보뿐만 아니라 경제안보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었고 산업안전은 물론 안정적인 소득과 일자리의 절실함도 더욱 피부에 다가오고 있다.

김대중 정부가 IMF 외환위기의 황폐한 뒤끝을 수습하기 위해 임기 중에 ‘생산적 복지’를 추가하면서 사회안전망을 확충했던 경험을 살려 윤석열 정부는 복지국가 이념으로 국정가치를 확장하는 것이 선진 대한민국에서 국민통합의 길이다. 모든 국민의 자유, 평등, 정의, 안전이 확대·심화되는 대한민국만이 미래가 있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독일 브레멘대 경제학 박사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