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갑영 칼럼] 反지성이 압도하는 대한민국 경제정책의 민낯
2022-06-06 22:02
문명사회의 근간은 과학과 지성의 합리성을 존중하는 것이다. 문명에 기반을 둔 지성사회는 지적 사고와 논리를 기반으로 모든 현안을 풀어가는 선진화된 사회를 말한다. 온 국민이 교육을 받으며 지적인 능력을 함양하는 것도 결국 지성의 합리성이 주도하는 사회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과정이다. 이러한 원칙은 당연히 코로나와 같은 역병의 대처에도 적용되어야 하고, 불황과 실업을 타개하는 정책에도 실천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여러 학문 분야에서 수백 년 동안 확립된 정론을 도외시하고, 이념이나 인기에 편향된 반지성적인 접근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대부분 유권자의 인기를 노리거나, 정치 이념에 매몰되어 근시안적인 시각으로 국민을 호도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덫에 가려져 문명과 지성은 빛을 잃고, 결국 국민들이 반지성적 정책의 피해를 오롯이 감당하게 된다.
1930년대 초 세계적인 대공황을 극복하는 단초를 제공한 대경제학자 케인스는 “의사의 실수는 한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지만 잘못된 경제정책은 수백만 명을 굶주리게 만든다”고 했다. 반지성적 경제정책의 폐해를 단적으로 표현한 명언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한국에서는 이런 반지성적 정책이 바람직한 정책으로 포장되어 그대로 집행되는 사례가 상당히 많이 누적되어 왔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를 들어보자.
필자는 2009년에 '비정규직보호법 차라리 없애라'(매일경제 2009.2.19.)라는 칼럼을 게재한 적이 있다. 당시 비정규직법의 유예기간이 곧 다가오는 시점이라서 사용자가 2년의 고용기간을 넘기면 반드시 정규직으로 정년까지 보장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위법이 되는 상황이었다. 비정규직보호법은 정규직 전환이나 정리해고라는 이분법적인 선택을 강요하고 있어 노사 합의로 고용 기간을 연장하는 것조차 가로막고 있다. 모두가 정규직 전환을 희망했지만 과연 그 꿈이 얼마나 실현될 수 있었겠는가. 사용자는 오히려 합법적인 정리해고를 더 선호하고, 비정규직만 더 증가하게 됐다.
이 법은 실제 태생부터가 완전히 잘못된 규제 법령이다. 왜냐하면 법의 핵심 내용인 비정규직의 차별 금지와 2년 후 신분 전환은 오히려 '보호'를 위장한 화려한 미사여구에 불과할 뿐이고, 입법 취지와 달리 “오히려 비정규직 양산과 정리해고, 외부 용역 조달을 제도화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런 이유로 학계에서도 반대가 많았지만 경제 현상에 무지한 정치권이 비정규직 보호를 미끼로 표심을 잡자고 반지성적 선택을 한 것이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당시 예측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결국 더 많은 근로자가 비정규직이라는 멍에를 안고 2년마다 이곳저곳 전전긍긍하게 만들었고, 고용의 안정성을 저해하며, 비정규직에 대한 부정적 인식만 고착화시켰다. 보호받는 소수보다 버림받는 다수가 훨씬 더 많아진 것이다. 이것은 경제원론 몇 쪽만 이해해도 충분이 예측 가능한 결과다. 오히려 원론에 충실한 지성적 접근이라면 다양한 형태의 고용계약을 자유롭게 용인하고, 부당한 차별대우를 막아주어야 하며, 정규직에 대한 고용 유연성을 높이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이런 지성적 접근은 요원해 보인다.
3년 전 최저임금이 대폭 인상되던 시점에 필자는 “최저임금 차등화해야 분배도 개선된다"(한국경제, 정갑영 칼럼, 2019.1.27.)는 주장을 폈다. 최저임금은 저임금을 받는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지만, 너무 높게 설정되면 오히려 소외계층의 일자리를 앗아갈 위험이 크다. 고임금 산업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지만, 오히려 수익성이 변변치 못한 영세업종과 자영업자의 고용 능력을 약화시켜 폐업이나 고용 감축을 단행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보호받아야 할 계층의 피해가 오히려 더 커지고, 저임금 노동자의 실업이 증가하면 소득 배분도 악화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지금의 현실을 보라. 역시 경제학 원론은 틀리지 않았다.
이런 역설적인 현상을 해결하려면 업종과 지역, 연령, 숙련도 등에 따라 최저임금을 다양하게 차별화해야 한다. 숙박업과 음식업의 중위임금은 제조업의 절반에 불과하고 최저임금을 못 받는 근로자가 34%에 달한다. 전 산업에 동일한 기준을 적용한다면 영세업종에서는 대량 해고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한국처럼 모든 산업과 지역에 동일한 법정 최저임금을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법정 최저임금 가이드라인을 설정하고 업종별로 당사자 간 합의로 운용하면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경제학적 지성은 아직도 정책에 반영되지 않고 있다.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다수의 힘으로 상대를 억압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렸다”고 지적했다. 경제학자들이 고대하던 발언이다. 그러나 취임 초에 벌써 한쪽에서는 금리를 올려 인플레이션의 불길을 잡자고 물을 뿌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공약을 실천하다고 엄청난 추경을 풀어 기름을 붓고 있으니 정책효과가 어떻게 나타나겠는가. 앞으로 반지성적 정책을 얼마나 자제할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 제발 이번 정부에서만이라도 민주주의가 학계의 정론을 압도하고, 포퓰리즘을 앞세우는 반지성의 경제정책이 재연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나아가 누적된 반지성의 정책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개혁도 이루어진다면 지성사회로의 선진화도 크게 앞당겨질 수 있을 것이다.
필자 주요 이력
▷한국생산성본부 상임고문 ▷유니세프한국위원회 회장 ▷연세대 17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