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 불문 韓 기업 핵심 기술, 내부 출신發 유출 '줄줄이'

2022-06-08 06:02
현대·삼성·하이닉스 등 기술 유출 혐의자 모두 임직원·협력사⋯경제계, 대응 방안 마련 시동

[사진 = 아주경제]


 
최근 중견기업부터 대기업까지 국내 기업들의 영업비밀과 기술이 협력사 등 내부에 의해 유출된 사례가 끊임없이 등장하며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산업기술 유출은 곧 국부유출’이라는 위기감이 또다시 수면 위로 드러나자 경제계에선 기술 유출 방지 대책 마련에 나서는 등 대안 모색에 나서고 있다. 
 
7일 본지가 단독으로 보도([단독] 경찰, 현대모비스 직원 '산업기술 유출' 의혹 수사 착수)한 바와 같이, 서울지방경찰청은 최근 현대모비스의 기술 유출 의혹에 대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유출된 현대모비스 기술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자율주행 기술과 관련이 있으며 피해액은 최대 천억원 이상 규모인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기술은 외부가 아닌 현대모비스 직원에 의해 유출됐다. 
 
이에 앞서 지난달 25일, 삼성전자 자회사인 세메스가 개발한 반도체 세정장비 핵심 기술을 빼내 중국 업체에 넘긴 혐의를 받는 세메스 전 연구원 A씨 등 7명과 협력사 대표, 직원 등 총 9명이 모두 재판에 넘겨졌다.
 
A씨 등은 지난 2018년 3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부정한 방식으로 빼돌린 세메스의 기술 정보로 반도체 세정 장비 14대를 제작한 뒤 관련 기술과 함께 중국 업체나 연구소 등에 팔아넘긴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이들이 세메스에 근무한 이력 등을 내세우며 1~2년 안에 같은 사양의 장비를 제작해줄 수 있다며 투자자들을 모집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이 세정장비 및 기술 유출 대가로 받은 돈은 약 71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유출된 세메스 반도체 세정장비는 세메스가 자체 연구 개발한 기술로 만들어진 주력 제품이다. 해당 장비는 반도체 기판에 패턴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세메스는 해당 기술 개발 연구비 등으로 2000여 억원을 투자했으며, 기술 유출에 따른 경쟁력 저하로 거래처 수주가 10%만 감소해도 연간 400억원 이상의 손해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SK하이닉스와 십수년간 거래를 지속해온 반도체 장비업체 무진전자 임직원 등도 핵심 기술을 중국 경쟁업체에 유출했다는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바 있다.
 
지난해 1월 검찰은 SK하이닉스 D램 반도체 제조 및 세정 관련 기술을 중국 경쟁업체에 유출한 혐의로 무진전자 연구소장 김모씨와 영업그룹장 윤모씨 등 2명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영업비밀국외누설 등)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 했다. 
 
이들은 2018년 8월부터 2020년 6월까지 SK하이닉스의 하이케이메탈게이트(HKMG) 반도체 제조 및 세정 기술 등 첨단기술과 영업비밀을 중국 반도체 업체에 넘겼다는 혐의를 받았다.
 
무진전자는 해당 유출 사건으로 삼성전자와의 반도체 유통사업권 계약도 끊긴 것으로 파악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6월 말 무진전자와 맺은 반도체 유통 사업권 계약을 종료했다. 무진전자는 설립 첫해인 1996년부터 삼성전자와 반도체 대리점 계약을 맺는 등 오랜 협력 관계를 유지해온 기업이다.
 
안마기기 및 기타 의료용 기기 제조 중견기업인 ㈜바디프랜드도 내부 직원으로 인한 기술 유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최근 바디프랜드 전 임원 김모씨는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상 영업비밀 사용 혐의로 기소 의견과 함께 검찰에 송치됐다.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바디프랜드가 수년간 수백억원을 들여 자체 개발한 기술을 김모씨가 중국에 팔아넘겼다는 첩보를 지난해 10월 입수한 후 올해 초부터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김모씨는 2013년 바디프랜드에 입사해 2018년까지 재직한 후 이듬해 A사를 설립해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A사는 바디프랜드와 마찬가지로 가구형 안마기기 및 소파를 판매하는 기업으로 지난해 매출 400억원대를 올리고 해외시장까지 공략하며 성장하고 있다.
 
김모씨가 중국으로 유출했다는 의심을 받는 기술과 디자인은 바디프랜드가 약 5년간 800억원을 들여 자체 연구·개발한 제품 중 하나인 가구형 안마의자로, 해당 기술이 유출된 후 바디프랜드는 해외시장 진출도 무산된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청의 산업기술·영업비밀 유출 수사 현황을 보면,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의 기술 유출 건수는 593건에 이르며 1638명이 관련 혐의로 검거됐다. 또 국정원에 따르면 2017년 1월부터 지난 2월까지 적발한 산업기술 유출 시도는 99건이다. 만약 이 기술들이 해외로 넘어갔다면 약 22조원에 달하는 연구개발비와 매출액을 손해 봤을 것으로 국정원은 추산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최근 경제 안보 분야에 대한 재계 차원의 대책 마련을 위해 ‘경제안보 태스크포스(TF)팀’을 신설했다. 글로벌 공급망 확보 및 자원·부품의 안정적 공급을 위한 방안과 함께 산업기술 유출 방지 대책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업계 일각에서는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한 내부 통제 시스템 강화 등 기업 차원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제도적인 대안이 따라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작정하고 유출하는 개인의 일탈을 회사 차원에서 방지하는 것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며 “기술 유출 방지를 위해서는 기업은 임직원에 대한 보상에 관심을 기울이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고, 유출자들에 대한 처벌 수위를 강화하는 등 국가 차원의 대안도 뒷받침해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