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윤석열 사단'이 장악한 검찰, 문재인 정권 반대로만 해라
ㆍ이번 같은 썰물밀물 수준 전면적 인사 교체 처음
ㆍ또다시 검찰의 정치화? 우려 씻는 게 남겨진 과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취임하자마자 실시한 검찰 인사는 역시 ‘예상대로’였다. 문재인 정권 편에 서서 ‘정치 검사’ 노릇을 했다고 지적받는 고위 간부들은 모조리 한직으로 밀려났다. 반면에 문재인 정권에 맞서 법과 원칙을 지키려다 좌천당했다고 평가받는 ‘윤석열 사단’ 검사들은 대거 요직을 차지했다. 크게 보면 검찰의 ‘정상화’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인사가 또다시 검찰의 ‘정치화’를 불러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그런 우려를 씻는 게 윤석열 검찰에 남겨진 과제다.
과거에도 정권이 바뀌면 그 정권과 지역적 배경을 같이하는 검사들이 잘나가기는 했다. TK(대구·경북) 정권이 들어서면 TK 출신 검사들이, PK(부산·경남) 정권이 들어서면 PK 출신 검사들이 출세했다. 호남 정권으로 바뀌면 호남 출신 검사들이 요직을 차지했다. 이런 현상은 나름대로 긍정적 역할도 했다. 능력이 없는데도 정권과 지역적 기반이 같다는 이유로 출세한 검사들을 정권이 바뀌면 본래 가야 할 위치로 가게 했다. 반면에 능력이 출중한데도 정권과 지역적 기반이 다르다고 해서 홀대받은 검사들은 능력에 맞는 자리에서 일하게 했다.
그러나 이번처럼 전 정권에서 출세한 검사들은 모조리 한직으로 쫓겨나고 전 정권에서 핍박받던 검사들은 요직을 싹쓸이하는 일은 없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이처럼 한편에선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다른 한편에선 밀물처럼 밀고 들어오는 일은 없었다. 이번 인사는 마치 혁명 세력과 반혁명 세력이 교체되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권력에 충성한 검사들은 한직으로 내보내고 법과 원칙을 지키려 한 검사들은 명예를 회복시켜 줬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공정과 상식의 실현으로 검찰을 정상화한 측면이 강하다.
그러나 썰물이 빠지고 밀물이 들어오는 듯한 전면적인 인사 교체는 그만큼 검찰이 정치화돼 있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역대 정권에서 검찰이 이토록 정치화한 적은 없었다. 검찰의 정치화를 끝내야 할 절박성이 그만큼 크다. 검찰이 또다시 정치화하지 않고 정상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윤석열 검찰의 최대 과제다.
정권 편에 섰던 고위 간부들 행태 되새기고
검찰을 정상화하려면 문재인 정권 때 검찰에서 벌어진 일들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그 일들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이는 윤석열 사단으로 불리는 검사들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에게도 해당되는 일이다.
우선 윤석열 사단 검사로서 요직을 차지한 검사들은 문재인 정권 때 정권에 충성하다 이번에 한직으로 밀려난 간부들의 행태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이들 중 몇몇은 문재인 정권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식물 총장’으로 만들거나 쫓아내려 하는 데 앞장섰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에 연루된 청와대 비서관들의 기소를 막으려 하기도 했다.‘유재수 전 부산 경제부시장 비리 의혹 감찰’을 중단시킨 혐의를 받는 조국 전 민정수석을 무혐의 처리하자고 주장한 인물도 있다. 권덕진 서울동부지법 영장전담판사는 조국 전 수석에게 청구된 구속영장을 다른 이유로 기각하면서도 감찰 중단 혐의에 대해 “우리 사회의 근간인 법치주의를 후퇴시키고 국가 기능의 공정한 행사를 저해했다”며 “죄질이 나쁘다”고 했다. 그럼에도 조국 전 수석을 무혐의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유재수씨는 그 뒤 기소돼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이들의 공통점은 살아 있는 권력 비리에 맞서 법과 원칙을 지키려 한 검찰총장과 그 총장이 지휘하는 수사팀보다 이들을 탄압하는 정권 편에 섰다는 점이다. 당시 젊은 검사들은 검찰 내부 통신망에 글을 올려 법무부 장관을 비판하고 검찰의 앞날을 걱정했다. 이 간부들은 후배 검사들보다도 못했다.
이번에 화려하게 돌안온 윤석열 사단 검사들이 이런 그릇된 행동을 따라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법과 원칙을 지키기보다 정권 편에 서서 정권 입맛에 맞는 처신을 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이들이 자신을 요직에 앉힌 윤석열 정권에 감읍해 법과 원칙을 내던지고 정권에 충성하려 한다면 문재인 정권 때 그 검찰 간부들, 이번에 한직으로 밀려난 검찰 간부들과 다를 게 없다. 검찰은 또다시 내 편, 네 편으로 갈라져 싸우는 정치판이 되고 말 것이다.
둘째는 문재인 정권 때 정권 편에 선 선배 검사들에게 바른 소리를 한 몇몇 검사들의 정신과 용기를 살려 나가는 것이다. 추미애 장관 시절 대검 감찰2과장이던 정희도 부장검사가 대표적 예다. 그는 검찰 내부 게시판에 추미애 장관을 비판하며 김오수 법무부 차관에게 ‘직을 걸고 장관의 불법 지시를 막아 달라’는 글을 썼다. 정 과장은 “법무부가 대검 등에 중요 사건을 처리할 때 내외부 협의체를 적극 활용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런 지시는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등에 개입하기 위한 의도로 보이고 이는 명백한 검찰청법 위반”이라고 했다.
정 과장은 “청와대 모 비서관(최강욱 비서관을 지칭) 기소와 관련한 법무부의 (수사팀) 감찰 검토도 검찰청법 위반”이라고 했다. “검찰총장 지휘에 따라 적법하게 이뤄진 기소에 대해 감찰을 한다면 이는 명백한 직권 남용으로서 위법”이라고 했다. 정 과장은 이렇게 글을 맺었다. "'검사가 됐으면 출세 다 한 거다. 추하게 살지 마라.’ 초임 시절 어느 선배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저는 위법에는 순응하지 않겠습니다. 정치 검찰은 거부하겠습니다.”
대검 선임 연구관이던 양석조 부장검사는 조국 무혐의를 주장한 당시 심재철 반부패부장을 상갓집에서 “그게 왜 무혐의냐. 당신이 검사냐, 조국 변호인이냐”고 공개 비판했다. 사석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게 부적절할 수는 있지만 부정의라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선 선배나 상사에게도 쓴소리를 서슴지 않았던 점은 가볍게 넘길 수 없다. 정희도·양석조 부장검사는 그 뒤 좌천됐다가 이번에 요직으로 돌아왔다.
앞으로 윤석열 정권 관련 비리 수사가 벌어질 수 있다. 이때 윤석열 사단 검찰 간부들이 부당하게 정권 편에 선다면 정희도·양석조 검사처럼 바른소리, 쓴소리를 하는 검사들이 나와야 한다. 두 검사는 인사 불이익을 당할 것을 각오하고 그런 소리를 했다. 눈앞의 이익에 연연하기보다 법과 원칙을 지키려 했다. '위법에는 순응하지 않겠다. 정치 검찰은 거부하겠다'고 단호히 말하는 검사들이 윤석열 검찰에서도 나와야 ‘문재인 검찰’처럼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마직막은 윤석열 대통령이 할 일이다. 우선 살아 있는 권력도 수사할 자세와 용기를 가진 사람을 검찰총장에 임명해야 한다. 윤 대통령과 가깝다거나 잘 안다고 검찰총장을 시켜서는 안 된다. 그리고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자기를 검찰총장에 임명할 때 말했던 것처럼 “살아 있는 권력의 비리도 엄정히 대해 달라”라고 주문해야 한다. 더 중요한 일은 이 말을 국민한테 멋있게 들리라고 빈말로 할 게 아니라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것이다. 검찰이 윤석열 정권 관련 비리를 수사할 경우 법무부장관이나 측근 정치인들을 시켜 검찰총장을 탄압하고 쫓아내려 한다면 문재인 정권과 다를 게 없다.
'대통령이 바로 서야 검찰이 바로 선다'
과거 김대중 대통령은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고 했다. 그 당시 검찰은 ‘정권의 시녀’ ‘정권의 충견’이라는 부끄러운 꼬리표를 달고 다녔다. 검찰이 정권 실세들 비리에는 눈을 감고 정권에 밉보인 사람들은 가혹하게 수사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의 비리를 법대로 수사해야 정의가 바로 서고 나라가 바로 선다는 것을 김대중 대통령은 강조했다. 이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검사들이 권력 눈치보고 권력에 알아서 기기보다 법과 원칙을 엄정히 지키려 하는 자세는 여전히 필요하고 중요하다.
그러나 검찰이 바로 설 것을 검찰에만 요구하고 기대할 수는 없다. 검찰이 정권의 시녀나 충견이 된 데는 검찰 탓도 있지만 정권 탓도 크다. 역대 정권 모두 야당일 때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을 외치다가도 정권을 잡으면 검찰을 권력 도구로 사용했다. 정권을 지키고 반대자를 억누르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검찰총장은 물론이고 검찰 요직을 정권에 충성할 사람, 정권과 가까운 사람 중에서 임명했다. 정권에 밉보인 검사들은 한직으로 쫓아냈다. 인사권을 통해 검찰을 장악하고 길들였다. 이런 과정을 통해 검찰은 정권의 시녀, 정권의 충견으로 전락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살아 있는 권력에도 망설이지 않고 수사의 칼을 대는 ‘법대로’ 정신,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강인한 자세 덕분에 대통령이 됐다. 검찰총장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권력을 잡고 나면 검찰총장 때 가졌던 정신과 자세가 흔들릴 수도 있고 변질될 수도 있다. 권력에 대한 도전은 용납하지 못하는 게 권력의 속성이다. 윤 대통령도 그런 권력의 속성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는 순간 검찰은 다시 정권의 사유물이 된다. 정권의 시녀, 정권의 충견이 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 말대로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면 그 검찰은 누가 바로 세울 것인가? 대통령이다. 대통령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 이런 점에서 ‘대통령이 바로 서야 검찰이 바로 선다’고 할 수 있다. 문재인 정권 때처럼 법무부 장관과 강경파 국회의원이나 측근들을 통해 검찰총장과 검찰을 장악하려고 하면 검찰은 바로 설 수 없다. 검찰을 바로 세우려면 검찰도 대통령도 제 역할을 다해야 한다. 그것이 문재인 정권이 주는 교훈이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상임이사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