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 '검수완박' 심리 헌재, 다수당 '법을 통한 독재' 쐐기 박아야
더불어민주당이 강행 처리한 ‘검수완박’ 사건이 헌법재판소로 넘어갔다. 헌재는 검수완박 입법 절차에 대한 정당성 여부를 심판하고 있다. 그 결과에 따라 민주당식 입법 독재가 계속 판칠 수도 있고 제동이 걸릴 수도 있다. 헌법재판소는 과연 더불어민주당의 입법 독재를 견제할 수 있을 것인가?
국민의힘은 지난달 29일 검수완박 법안 처리 절차가 위헌이라며 권한쟁의 심판을 헌재에 청구했다. 권한쟁의 심판이란 헌법상 국가기관 간에 권한을 놓고 분쟁이 생겼을 때 어느 한쪽의 권한이 침해됐는지를 심판하는 제도다. 국민의힘은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이 국회법 절차를 무시하고 검수완박 입법을 강행해 국가기관인 국민의힘 국회의원의 법안 심의권과 표결권을 침해했다고 청구 이유를 밝혔다.
민주당은 검수완박 처리 과정에서 편법과 꼼수를 조금의 머뭇거림이나 망설임 없이 행동에 옮겼다. 우선 안건조정위원회 구성과 활동에서 그랬다. 안건조정위원회는 법안에 이견이 있을 때 이견을 충분히 논의해 조정하도록 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다. 다수당이 힘으로 밀어붙이지 말고 소수당 의견을 존중하라는 취지를 담고 있다. 그래서 안건조정위 구성을 여야 3명씩 동수로 하도록 했다. 활동 기간도 최장 90일을 보장했다.
'이견 조정·여론 수렴·심사 숙고' 국회법 취지 짓밟아
안건조정위는 위원 6명 중 4명 이상이 찬성하면 안건을 통과시킬 수 있다. 민주당은 이 4명을 확보하기 위해 꼼수를 부렸다. 민형배 의원을 위장 탈당시켜 무소속으로 만들었다. 그 뒤 민주당 소속 법사위원장이 민 의원을 야당 몫 안건조정위원으로 선임했다. 이에 따라 안건조정위원회는 민주당 소속 3명과 친민주당 무소속 1명 등 4명에 국민의힘 소속 2명으로 구성됐다.
민주당이 민형배 의원을 탈당시켜 무소속으로 만든 뒤 야당 몫 안건조정위원으로 선임한 것이 민주당 주장대로 형식적으론 합법일 수 있다. 민주당은 민 의원이 ‘자진 탈당’했다고 주장한다. 자진 탈당해서 무소속이 됐으니 야당 몫 안건조정위원으로 선임한 게 문제 될 일이 없다고 주장한다.
민주당이 안건조정위원회를 연 뒤 17분 만에 법안을 통과시킨 것도 형식적으론 합법일 수 있다. 안건조정위원회 활동 기간이 최장 90일이라는 국회법 규정은 90일 범위 내에서 활동할 수 있다는 뜻이지 꼭 며칠 이상을 활동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치주의는 형식적 법치만 지켜서 될 일이 아니다. 실질적 법치도 지켜야 한다. 형식적 법치란 단순히 법의 형식적 요건만을 기계적으로 충족하는 것이다. 실질적 법치란 법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실현하는 것이다. 법의 취지를 존중해서 법이 추구하는 목표를 실제로 구현하는 게 실질적 법치다. 형식적 법치를 넘어 실질적 법치를 이뤄야 진정한 법치다.
안건조정위원회를 규정한 국회법 취지는 여야가 똑같은 숫자로 참여해서(대등성), 최장 90일간 충분히 논의하라(충분성)는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민형배 의원을 위장 탈당시켜 여야 대등성 원칙을 훼손했다. 형식적으로는 여야 3명씩 동수로 했지만 실제로는 당시 여당인 민주당 4명, 야당인 국민의힘 2명으로 여당에 기울어지게 했다.
민주당은 또한 안건조정위원회를 연 지 불과 17분 만에 법안을 통과시켜 최장 90일 동안 충분히 논의하라는 충분성을 위배했다. 안건조정위원회 구성부터 운영까지 편법과 꼼수로 일관한 것이다. 그 결과 다수당이 독주하지 말고 소수당 의견을 충분히 듣고 이견을 조정하라는 안건정위원회 제도를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 법의 기본 취지와 정신을 존중하고 지키는 실질적 법치를 파괴했다.
민주당이 어긴 법치는 이뿐이 아니다. 국회법은 위원회 위원장이 법안의 입법 취지와 주요 내용 등을 10일 이상 입법 예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안에 대한 각계의 다양한 의견을 듣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민주당 소속인 법사위원장은 입법 예고를 하지 않았다. 국회법에는 긴급히 입법을 해야 할 때에는 입법 예고를 생략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민주당은 이 규정을 들어 입법 예고를 하지 않았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형식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검수완박 법안이 긴급을 요구하는 법안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당장 법안을 처리하지 않는다고 해서 국가적으로 중대한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니다. 입법 예고 예외 사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따라서 입법 예고를 하지 않은 것은 입법 예고를 규정한 국회법 취지를 외면한 것이다. 실질적 법치에 어긋나는 처사다.
이 밖에도 민주당은 법사위에서 검수완박 법안을 축조 심사(한 조항씩 차례로 심사하는 것)와 찬반 토론 없이 불과 8분 만에 통과시켰다. 국회법에는 위원회에서 법안을 심사할 때 축조 심사와 찬반 토론을 거치게 돼 있다. 한 조항씩 차례로 살펴가며 심사를 해야 무슨 조항을 어떻게 고치는지를 국회의원들이 충분히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다. 또 찬반 토론을 해야 법안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보완할 수 있다. 축소 심사도, 찬반 토론도 건너뛰었으니 민주당 의원들 중 과연 몇 명이나 검수완박 법안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고 찬성 표를 던졌는지 의문이다.
이처럼 민주당의 검수완박 법안 강행 처리는 형식적 법치에서는 겉모습을 갖췄는지 모르지만 실질적 법치에서는 큰 문제를 드러냈다. 그 결과 검수완박 법안은 곳곳에 허점을 남기게 됐다. 한 예가 경찰 수사에 대한 고발인의 이의신청권을 삭제한 것이다. 지금은 경찰이 범죄 용의자를 조사한 뒤 무혐의 결정을 하면 고소인, 피해자, 고발인이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 이의신청을 하면 사건이 검찰로 넘어가고 검찰은 직접 수사를 하거나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하게 된다. 경찰의 부당하거나 미흡한 수사를 바로잡기 위한 조치다.
그런데 이번에 고발인은 경찰이 무혐의 결정해도 이의신청을 할 수 없게 한 것이다. 이는 시민단체나 정당 등 제3자가 공익을 위해 권력형 비리를 고발했을 때 경찰이 무혐의 결정을 하면 더 이상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짐을 의미한다. 공직자나 대기업 직원이 내부 비리를 고발하거나, 일반 시민이 옆집에서 아동 학대가 벌어져 고발했을 때 등에도 마찬가지다. 검찰 수사권 박탈에만 몰두하다 엉뚱하게 공익 목적의 고발 제도를 유명무실하게 만든 것이다.
검사의 수사권을 박탈한 것은 그 자체가 위헌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헌법에는 검사의 영장 청구권이 규정돼 있다. 영장 청구는 수사의 한 절차이고 방법이다. 검사의 영장 청구권은 검사의 수사권을 전제로 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이 때문에 검사의 수사권을 박탈하는 검수완박은 헌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검수가 자기가 수사한 사건을 기소하지 못하게 한 것도 논란거리다. 검사가 자기는 수사를 하지 못한 채 다른 검사가 작성한 수사 기록만 보고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잘못하면 엉뚱한 사람을 기소하거나, 반대로 기소해야 할 사람을 풀어주는 잘못이 벌어질 수 있다.
실질적 법치 실현하는 게 헌재 임무
만약 민주당이 입법 예고를 해서 다양한 의견을 들었다면, 안건조정위원회를 실제로 여야 동수로 만들고 90일 범위 내에서 충분히 논의했더라면, 축조 심사를 하면서 찬반 토론을 벌였다면 검수완박 법안의 허점들을 최대한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법의 정당성에 대한 논란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허점투성이 검수완박 법은 민주당이 형식적 법치에 급급해 실질적 법치를 무시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형식적 법치는 권력이 법의 이름을 빌려 독재할 때 사용하는 수법이다. ‘법대로’ 했으니 문제 될 게 없다고 강변할 때 쓰는 ‘법대로’가 바로 형식적 법치다. 지금 민주당은 검수완박을 ‘국회법대로’ 처리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실질적 법치를 외면한 형식적 법치를 그냥 두면 다수당의 ‘법을 통한 독재’는 막을 수 없다. 어느 정당이든 과반수를 차지하면 다수의 힘으로 입법 독재를 할 수 있다.
형식적 법치의 이름을 빌린 입법 독재를 막으려면 형식적 법치를 넘어 실질적 법치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그걸 할 수 있는 기관이 헌법재판소다. 독일에서 헌법재판소를 만든 가장 큰 이유가 실질적 법치의 실현이었다. 독일은 나치가 국민 기본권을 침해하는 법을 만들고 이 법의 이름으로 강권 통치를 했다. 당시 법을 집행한 사람들은 ‘법대로’ 했을 뿐이라며 무죄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만든 게 헌법재판소다. 독일 헌재는 아무리 국회가 다수결로 제정한 법이라도 국민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면 위헌으로 결정하고 무효화했다. 법이 형식적 요건으론 문제가 없더라도 내용에 문제가 있으면 실질적으로는 법이라고 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독일 헌법재판소는 법의 ‘내용’을 중심으로 실질적 법치 여부를 따지기 위해 생겨났다. 그러나 실질적 법치 여부를 따지는 대상이 법을 집행하는 ‘절차’로 확대됐다. 이번에 국민의힘이 헌재에 청구한 권한쟁의 심판도 ‘절차’ 심판이다. 헌재는 민주당의 강행 처리로 국민의힘 국회의원에게 헌법상 보장된 심의권과 표결권이 침해됐는지를 심사하게 된다. 심의 절차와 표결 절차에 문제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심사하는 것이다.
민주당이 형식적 법치를 지켰다고 해서 헌재가 이번 일을 아무 문제 없다고 결정한다면 헌재는 국회법 절차를 무용지물로 만들고 다수당의 입법 독재를 정당화하게 된다. 의회 민주주의 수호에 큰 허점을 남기게 된다.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죽어가던 의회 민주주의가 되살아날 수도 있고, 끝내 죽고 말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