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의 사람들]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예정된 수순…이론·경험·인연 삼박자

2022-05-11 08:00

윤석열 정부의 막이 올랐다. 통상 분야에서 경제안보 중심 정책이 예상되는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첫날부터 각국 외빈들을 접견하며 강행군을 이어갔다.

이 자리에는 김성한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도 함께했다. 윤 대통령과 50년지기 죽마고우로 알려진 김 실장은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외교안보분과 간사를 맡아 관련 정책 설계를 주도했다. 미국과의 '포괄적 전략동맹 강화' 등이 대표적이다.

초대 외교부 장관 또는 국가안보실장에 하마평이 오르는 것은 당연했다. 이론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 연륜 위에 인연이 더해졌다. 그리고 이달 1일 새 정부 국가안보실장에 발탁됐다.

◆학자이자 정책 수립 전문가···'실용주의 외교' 강조
 

김성한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 [사진=인수위사진기자단]

김 실장은 30여년간 국제정치학계에서 활동하며 미국 외교정책과 국제안보 등을 연구했다. 고려대 국제대학원장과 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 등도 지냈다. 국제정치 분야에서 그의 전문성은 1994년부터 10년 넘게 외교안보연구원(현 국립외교원)에 몸 담으면서 널리 알려졌다.

김 실장은 학자 출신이지만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 수립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 앞서 이명박(MB) 정부에서도 캠프 참여를 거쳐 대통령 외교안보자문위원으로 활동한 뒤 2012~2013년 다자외교를 총괄하는 외교통상부 2차관을 역임했다.

윤 대통령과는 대광국민학교(초등학교) 동창이다. 두 사람이 얼마나 막역한 사이인지는 지난 3월 10일 윤 대통령이 당선을 확정짓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처음으로 통화할 때 김 실장의 휴대전화를 사용한 일화에서 엿볼 수 있다.

여기에는 김 실장의 탄탄한 미국 측 네트워크도 영향을 미쳤다. 그는 외교 정책 방향에 있어서도 한·미 동맹을 중시하며, 북한에 대해서는 경계 태세를 높여야 한다고 밝혀 왔다.

이 같은 기조는 인수위 간사단 첫 회의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김 실장은 '북한의 서해상 방사포 발사가 9·19 합의 위반이 아니냐'고 묻는 윤석열 당시 대통령 당선인에게 "위반입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윤 당선인은 "명확한 위반이죠? 이런 안보 상황에 대해 빈틈없이 잘 챙겨 달라"고 지시했다.

이는 MB 정부가 그랬듯 '실용주의'에 입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MB 인수위는 △북핵 폐기 우선적 해결 △한·미 관계 창조적 발전 △자원·에너지 외교 강화 등을 추진 과제로 삼았다. 윤 정부 인수위가 경제안보에 방점을 찍은 것도 유사한 흐름으로 보인다. 그 여파로 통상 기능을 외교부로 다시 넘길지 산업통상자원부가 계속 갖고 갈지, 부처 간 마찰이 빚어지기도 했다.

오는 21일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도 김 실장이 일찍부터 조율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역대 정부를 통틀어 취임 후 최단기간에 한·미 정상회담을 치른다. 특히 김 실장은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바탕으로 한국이 국제무대에서 더욱 활발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해 왔다. 이는 윤 대통령이 취임 연설을 통해 최우선으로 강조한 내용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동맹을 중시하며 공급망 구축 등 경제·기술 분야 협력을 요구하면 손을 잡을 가능성이 크게 점쳐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해 한·미·일 공조 강화에 더욱 공을 들이고 있다.

◆"日 역사 반성 전제 관계 개선···궁극적 포괄안보"
 

윤석열 대통령(왼쪽)이 지난 10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 접견실에서 일본의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으로부터 기시다 총리의 취임 축하 친서를 전달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런 맥락에서 경색된 한·일 관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지 관심이 모아진다. 윤 대통령은 줄곧 한·일관계 개선 의지를 표명해 왔다. 그러나 일본의 잇따른 과거사 왜곡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김 실장도 한·미·일 3국 협력을 앞세워 관계 개선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다. 다만, 일본 정부의 올바른 역사 인식과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은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지난 2월 일본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강제징용 현장이었던 사도(佐渡) 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목표로 하는 움직임도 우려된다"며 "서로 국민감정을 자극하는 행위는 삼가야 한다"고 말했다.

MB 정부 때 중앙일보 기고에서도 "한·일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이명박 정부의 외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들린다. 최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논란에서 보듯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역사 문제에 대한 일본의 진심 어린 사과가 전제되지 않는 한 한·일 양국이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나아가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당장 일본 언론들은 김 실장에게 호의적이다. 내정 발표 이튿날 요미우리 신문은 "문재인 정부의 친중 노선에서 전환해 한·미 동맹 강화를 최우선하는 차기 정부의 외교·안보 분야 인사안이 확정됐다"고 전했다.

NHK도 당시 김 실장을 '미국통'으로 소개하며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을 가속화하는 가운데 한·미 동맹 강화를 최우선하고, 한·미·일 3국 협력을 중시하는 외교 자세가 선명해졌다"고 평가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닛케이)은 김 실장을 외교·안보 브레인이라고 칭했다. 이어 "한·일 관계 개선에도 적극적인 발언을 했다"며 양국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한편, 김 실장은 궁극적으로 '포괄안보'를 지향하고 있다. 그는 내정 직후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주로 위협이라고 인식하고 있지만 사이버 안보, 기후변화, 에너지, 첨단기술 보존 문제, 글로벌 공급망 등 새로운 이슈들이 우리의 삶을 직접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안보 문제로 급하게 부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경제안보비서관 신설과 관련해 “(경제-안보 간) 구분선이 모호해진 경제안보시대에 우리가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처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