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사로 본 국정 청사진] 분배 언급 없이 '자유' 35번 외친 尹대통령…비핵화 전제 北재건 구상 밝혔다

2022-05-10 18:32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사진=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의 10일 공식 취임사는 총 3440자, 연설 시간은 16분으로 역대 대통령과 비교해 상당히 짧았다. 그 안에 향후 5년간의 국정운영 철학을 골고루 담았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국제사회 연대 등이 핵심이다.

5년 전 문재인 전 대통령이 국론 분열과 사회적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 통합·소통에 초점을 맞춘 것과 달리 윤 대통령은 '통합'이라는 단어를 직접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공동체 결속력'이 흔들리고 와해되는 것을 우려했다.

마찬가지로 '경제'라는 단어도 5번만 언급했지만, 자유민주주의 체제 아래 민간 주도 성장을 정부가 견인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한반도 및 국제 정세와 관련해선 "자유와 평화에 대한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진단하는 등 북한의 무력 도발을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미국·일본 등 국제사회와의 공조 강화를 예고했다.

◆35회 외친 자유의 가치="번영과 풍요, 경제적 성장은 바로 자유의 확대입니다."

윤 대통령은 자유의 가치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재발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유를 기반으로 한 민주주의 및 시장경제 원칙은 기업 규제 완화와 부동산 정책에서 오롯이 드러날 전망이다. 부동산 정책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의 장관 후보자에 오른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는 "불합리한 규제는 과감히 풀어 (부동산)시장 기능을 회복하겠다"고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밝혔다. 직접 시장 통제에 나섰다가 실패한 문재인 정부를 반면교사 삼은 것이다. 동시에 재계는 일자리 창출 등에 있어 민간 주도 경제로의 '체질 개선'을 위한 규제 완화, 투자 지원 등을 기대하고 있다.

"사회 모든 구성원이 자유 시민이 돼야 한다"고도 말했다. 어떤 사람의 자유가 침해·유린된다면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자유마저 위협받게 된다는 게 윤 대통령 판단이다. 이를 위해선 일정한 수준의 경제적 기초, 공정한 교육과 문화의 접근 기회가 보장돼야 한다고 봤다. 사회부문 국정목표를 '따뜻한 동행, 모두가 행복한 나라'로 정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윤 정부는 국민 맞춤형 기초보장 강화, 사회서비스 혁신을 통한 돌봄서비스 고도화, 장애인 맞춤형 통합지원을 통한 차별 없는 사회 실현 등을 제시했다. 한편 '자유는 결코 승자독식이 아니다'라는 윤 대통령의 인식은 미국의 신자유주의 경제학자인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전해졌다.

도약·성장으로 양극화 해소=이른바 'Y노믹스'로 불리는 새 정부 경제 정책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민관 협력, 규제 개혁을 핵심 키워드로 산업 생태계에 대대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민·관·연 합동 '규제혁신추진단'(가칭) 구성이 그 시작이다. 기업이나 국민이 현장에서 규제 개선을 건의하고 함께 검토하는 '수요자 중심 범정부 원스톱 온라인 규제애로 해소 시스템'도 구축한다. 기업 주도의 인재 양성 체계 강화 차원에서 산업브레인센터 구축, 산업인력혁신 특별법 제정, 현장인력에 대한 인공지능(AI) 교육 확대 등도 전개될 예정이다. 

무엇보다 도약과 빠른 성장으로 양극화를 해소한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그 발판으로는 과학·기술·혁신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지나친 양극화와 사회 갈등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할 뿐 아니라 사회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도약과 빠른 성장을 이룩하지 않고는 해결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는 윤 정부의 미래부문 설계와 연결된다. 앞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자율과 창의로 만드는 담대한 미래'를 국정목표의 하나로 제시하고 4차 산업혁명과 미래인재 양성, 탄소중립, 청년 지원 등의 19개 관련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구체적으로 민·관 협력을 통한 디지털 경제 패권국가 실현과 100만 디지털 인재 양성, 과학적인 탄소중립 이행방안을 통한 녹색경제 전환 등이다. 앞서간 많은 나라들과 협력·연대해야 한다고도 했다.

◆반지성주의 타개=윤 대통령은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그에 대한 믿음을 해치고 있다"고 경계했다.

반지성주의는 윤 대통령이 강조한 자유의 가치와 상반되며 '국민통합' 기치에도 맞지 않는다. 그는 "국가 간 또는 내부의 지나친 집단적 갈등에 의해 진실이 왜곡되고, 각자가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 의견을 억압하는 것"을 반지성주의로 정의했다. 이는 사실상 문재인 정부를 겨낭한 발언이란 분석이 나온다. 직접 거론하진 않았지만, 자신을 정치권으로 불러낸 문 정부의 행태를 반지성주의로 규정했다는 것이다. 또 '다수의 힘'이라는 표현은 윤 정부 출범으로 '거야'가 된 더불어민주당을 지칭한 것이란 해석도 있다.

공동체 결속의 시작은 '민생 회복'과 '국익 우선 정치'가 될 전망이다. 윤 대통령은 여당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의회와 소통, 야당과 협치하겠다"고 밝혀 왔다. 그러나 진보와 보수, 영·호남이 따로 없을 것이란 작심은 여소야대 상황에서 실현시키기 만만치가 않다. 개인을 넘어 지역·사회 공동체를 위한 균형발전 정책도 아직 특별한 게 없다. 윤 정부는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라는 국정과제 아래 수도권과 지방의 기회·생활격차 해소, 수도권 쏠림·지방 소멸 극복을 목표로 세웠다. 다만 구체적인 내용은 향후 권역별 지역균형발전 대국민보고 및 의견 수렴 등을 거쳐 발표하기로 했다.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위대한 국민 여러분과 함께 국제사회에서 책임을 다하고 존경받는 나라를 만들어 나가겠다."

윤 대통령의 취임식 연설문 마지막 구절이다. 윤 대통령은 국내외 문제를 분리할 수 없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국제사회가 우리에게 기대하는 역할을 주도적으로 수행하겠다는 각오를 내비쳤다. 북한 핵·미사일 등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도 이런 철학을 관철할 것임을 분명히 밝혔다. 이는 북한에 대응해 미국·일본과의 동맹을 강화하는 움직임에 힘을 싣는다. 미국 국무부는 윤 정부 출범에 지속적인 협력 의지를 밝히며 "한·미동맹은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 안보, 번영의 핵심축"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역대 정부 중 취임 후 최단기간에 첫 한·미 정상회담을 치른다.

이어 윤 대통령은 "북한이 비핵화의 길로 나설 경우 국제사회와 협력해 북한 경제와 주민 삶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담대한 계획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북한 비핵화 진전에 발맞춰 경제 협력과 남북 공동경제발전계획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담대한 계획의 조건으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아닌 비핵화 전환을 제시했다는 점도 이목을 끈다. 이 또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등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바탕으로 한다. 윤 대통령은 "평화는 자유와 인권의 가치를 존중하는 국제사회와의 연대에 의해 보장된다"고 말했다. 연설에서 '세계'와 '국제사회'는 각각 13회, 6회 거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