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의 경제 읽어주는 남자] 식료품 원자재 '슈퍼 스파이크'를 대비하라
2022-05-09 06:00
쌀가격이 오르면, 김밥 가격을 안 올릴 수 있을까? 쌀뿐만 아니다. 달걀도 햄도 김밥 재료 값이 모두 오르는데, 김밥 가격을 안 올릴 방법이 있나. 가격을 올리면 손님이 줄 것 같아 걱정이지만, 안 올리면 남는 게 없으니 올릴 수밖에. 모든 식료품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서, 라면, 빵, 과자 등 가공식품 가격도 오르고 있다. 전반적인 소비품목의 가격이 오르는 이른바 인플레이션의 시대다.
인도네시아발 식용유 보호무역주의
인도네시아가 팜유 수출을 금지하는 일이 벌어졌다. 2022년 4월 인도네시아 정부가 자국의 식용유 품귀현상을 막기 위해 내린 조치다. 인도네시아는 세계 최대 팜유 생산국으로, 팜유산업이 구조적으로 수출에 집중돼 있었다. 2021년 세계 식용유 국제가격이 급등하는 추세 속에, 2022년 들어 발생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더 치솟으면서 인도네시아 팜유업체들이 수출에만 주력하게 된 것이다.
자원 수출국이면 원자재 가격 급등이 불안 요소가 아니다. 기회의 요소다. 자원 빈국이기 때문에, 농산물 가격 강세가 불안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더구나 인도네시아가 보여준 자원민족주의는 긴장감을 주기도 한다. 식용유뿐만 아니라 농산물 전반에 걸친 가격 상승압력이 한국경제의 하방압력으로 작용한다.
식료품 슈퍼 스파이크 가능성 진단
2020년 2분기 이후 식료품 원자재 가격이 급등한 다섯 가지 배경들을 중심으로 향후 슈퍼 스파이크가 현실화될지 진단해 보자. 첫째, 국제유가 상승이 식료품 원자재 가격상승에 영향을 미쳤다. 국제유가 상승은 전통적으로 석유화학을 기초로 하는 화학비료 등의 가격을 상승시켜 식료품 원자재 가격을 상승시킨다. 우리 몸의 70%가 물이듯, 소지품의 70%는 석유다. 원유가격이 오르면 석유화학제품 가격이 오르고, 이를 가공해 만드는 비료와 농약 등의 가격도 오르기 마련이다. 특히, 농산물 생산단가에서 비료와 농기계용 연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에너지 가격의 상승은 농업에 상당한 부담을 준다. 미국 에너지 정보청(EIA, Energy Information Administration)의 전망에 따르면, 2022년 2분기에 국제유가가 고점을 기록하고 이후 하향 안정화 추세를 보일 것이지만 당분간 고유가 시대는 계속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식료품 원자재 슈퍼 스파이크 가능성에 무게를 둘 수 있게 하는 근거가 된다.
둘째, 지구온난화와 이상기후가 식료품 원자재 가격의 상승요인으로 작용한다. 지구온난화는 이러한 재해를 빈번하게 하여 농산물 공급을 불안정하게 한다. 글로벌 이상기후는 주요 식료품 원자재 생산국들에 최악의 홍수나 가뭄을 가져왔고, 대두, 옥수수, 밀, 보리 등의 원자재 가격을 폭등시켜 왔다. 근래 들어 동아프리카와 서아시아 지역에는 메뚜기 떼가 기승을 부리고, 라니냐(La Niña)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곡물 수출국들의 생산과 수출을 가로막았다. 세계적으로 탄소저감을 위한 노력을 가속화 하고 있지만, FAO(유엔 식량농업기구) 등과 같은 주요 기관들은 단기간 안에 지구온난화를 막을 수 없다고 관측하고 있고, 이러한 점에서 당분간 곡물 가격 상승압력이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넷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원자재 가격에 ‘기름 붓기’에 비유될 만하다. 전쟁은 일시적으로 원자재 전반의 가격을 급등시켰지만, 전쟁이 종식될지라도 식료품 원자재 가격에는 중기적인 가격 상승효과를 가져올 전망이다. 러시아는 원유나 천연가스와 같은 에너지 자원 강국일 뿐 아니라, 세계 최대 밀 수출국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도 못지않다. 우크라이나의 식료품 원자재 수출량은 세계 옥수수의 14%, 밀의 9%, 해바라기유의 43%를 차지한다. 전쟁으로 상당수의 우크라이나 농경지가 훼손되었고, FAO는 기존의 28%에서만 재배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러한 문제는 단기간 안에 해결될 과제가 아니다.
다섯째, 글로벌 식량안보 경쟁이 식료품 원자재 가격을 더욱 요동치게 할 것이다. 식료품 보호무역주의는 러시아전쟁 이전부터 일었다. 코로나19의 충격으로 식량안보 경쟁이 시작되어 세계 각국은 식량 재고를 축적하기 위한 움직임을 단행해 왔다. 2021년 아르헨티나는 옥수수를 비롯한 주요 농산물 수출 금지 조치를 단행하고, 러시아는 소맥 수출 쿼터제와 수출세를 도입했다. 세계 경제는 초인플레이션 시대에 놓였고, 각국 정부는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한 노력을 집중할 것이다. 식료품 물가 안정을 위해 자국의 농산물 수출을 막고, 해외 수입을 추진하는 이른바 ‘식량 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작지 않아 보인다.
글로벌 식량 전쟁의 시대, 새로운 준비
첫째, 단기적으로 식량 위기관리 대응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세계 7위의 곡물 수입국인 한국은 식료품 원자재 슈퍼 스파이크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적정 비축량 관리가 필요하다. 쌀을 제외한 밀(12.8%), 콩(8.6%), 옥수수(7.4%) 등의 식량자원은 FAO의 권장 재고율(18.0%)에 못 미친다. 정부는 민간부문과 협력하여 적정 비축량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사료용 곡물의 공공비축 도입이 필요하다. 육우 축산물생산비 중 사료비 비중이 55.2%에 달한다. 사료 가격 폭등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비축 기준 마련 등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
둘째,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식량자원 개발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이코노미스트(Eoconomist)가 평가하는 세계식량안보지수(Global Food Security Index)로 보아도 OECD 회원국 중에서 하위수준이다. 농지면적과 식량자급률이 매년 줄고 있어, 적정 농지면적과 적정 자급률 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관리해야 한다. 농업국으로 가자는 뜻은 아니다. 경지 면적이 비슷한 네덜란드처럼 농업 정보망과 기술력을 갖추어 생산성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편, 해외 식량자원 개발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개발도상국 지원사업과 연계해 해외농업을 늘리는 노력도 필요하다. 태국, 인도는 이미 주요 곡물 수출국 대열에 합류했고, 미얀마, 베트남 등과 같은 잠재력이 큰 나라들을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확보해야 한다.
셋째, 식료품 원자재 가격의 충격을 관리해야 한다. ‘손님이 줄까’하는 걱정으로 메뉴 가격을 올릴 수 없는 자영업자들은 코로나19 충격을 간신히 이겨냈는데, 재료비 상승이라는 ‘끝판왕’을 이겨내지 못할 수 있다. 비용 상승분을 메뉴 가격에 반영하는 가격전가능력이 떨어지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등의 이중고를 치유해 주는 정책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 한편, 실물경제가 충분히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서민의 식료품 물가상승으로 이어질 것이 우려된다. 똑같은 식료품 물가상승도 저소득층에게만 유독 위협적일 수 있기 때문에, 식료품 바우처 제도를 확충하거나 취약계층을 위한 필수 식료품 직접 지원 등의 정책 마련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김광석 필자 주요 이력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전 삼정KPM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전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