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속 없는 3%룰] 대주주 견제 못하고 2년 연속 영향력 미미···'찻잔 속 태풍'에 그치나

2022-05-04 06:00

지난해와 올해까지 기업들이 정기 주주총회에서 최대 관심사는 이른바 '3%룰'로 불리는 상법 개정안의 여파였다. 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해 선임된 감사위원이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 기업마다 숨을 죽이며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러나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3%룰은 큰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도입 첫해였던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2차례나 주요 기업들이 주주총회를 진행했으나 99% 이상 기업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3%룰의 영향을 기대하던 시민단체 등에서는 사실상 '찻잔 속 태풍'에 그쳤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지난 2020년 말 통과된 상법 개정안은 감사위원 1명 이상을 이사와 분리해 선출하는 것이 핵심이다. 지금까지는 기업이 이사를 먼저 선임한 뒤 이사진 중 감사위원을 선출하는 절차를 거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에 자연히 감사위원도 이사 중 한 명으로 자연히 대주주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되는 모습을 보였다.

개정안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대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했다. 사외이사를 겸임하는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최대주주 등의 의결권을 각각 3%씩으로 제한하고, 사외이사를 겸하지 않는 감사위원 선출 시에는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을 합쳐 3%로 제한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기업 지분 40%를 가진 최대주주여도 감사위원을 뽑을 때는 의결권이 3%로 줄어, 나머지 37%를 활용할 수 없게 되는 방식이다.

당초 2020년 3%룰 도입이 논의될 때 거의 모든 기업은 이에 반대했다. 3%룰은 기업 총수의 잘못된 결정을 견제하고 전횡을 방지한다는 긍정적 취지가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1주 1의결권이라는 상법상 주주 평등권을 흔드는 행위라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또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자산을 투입하는 만큼 헌법이 규정한 재산권 침해라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아울러 기업들은 3%룰로 인해 투기자본이 국내 기업에 침투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투기자본은 이사회에 핵심 인물을 심어놓고 자신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의사결정을 하게 만들 수 있고, 이에 따라 중요 기술이 유출될 수 있다는 시각이었다.

현재 공정거래법은 지주사의 자회사 주식 의무 보유 비율을 상장사는 20%, 비상장사는 40%로 규정하고 있다. 지주사가 계열사의 주식을 의무적으로 보유하고 있지만 3%룰에 의해 그 활용을 제한 받을 수밖에 없어 투기세력에 비해 불리한 구조로 인식됐다.

당시 국내에서는 삼성, 현대차 등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그룹들이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상태다. 지주사를 중심으로 확립된 마무리한 지배구조를 쉽사리 변경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국내 기업 관계자들은 대응책을 마련할 수 없노라고 토로했다.

실제 당시 대한상공회의소는 3%룰 도입이 불가피하다면 투기세력이 이사회 진출을 시도하는 경우만이라도 3% 제한 규정을 풀어달라고 제안했다. 기업들은 3%룰이 투기세력의 '트라이 목마'로 활용될 것이라고 우려한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와 올해 2차례에 걸쳐 정기 주주총회를 마무리했으나 이 같은 투기자본의 공습을 받은 주요 기업은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국내 기업들이 반대 명분으로 내세웠던 투기세력은 그 실체가 불분명했던 것이다.

오히려 국내 주요 주주들끼리 다툼에 3%룰이 활용된 것으로 파악된다. 실제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주주총회에서 회사(대주주)측 이외에 주주제안이 제기된 상장사는 지난해 30여개사에 달한다. 이 중 상당수가 감사위원 선임을 놓고 표 대결을 벌였다. 이중 유일하게 한국앤컴퍼니가 3%룰의 영향으로 주주총회 결과가 바뀐 것으로 확인됐다.

형인 조현식 부회장과 동생인 조현범 당시 사장 간 경영권 분쟁이 발생한 한국앤컴퍼니는 지난해 주주총회에서 두 사람이 각자 추천한 감사위원 후보자 선출을 위해 표 대결을 벌였다. 그런데 19.3% 지분을 가진 조 부회장이 42.9% 지분을 가진 조 사장에게 승리했다.

조 사장의 의결권이 3%로 제한되면서 소액주주의 지지를 받은 조 부회장이 표 대결에서 승리한 결과다. 대기업 가운데 3%룰로 주총 결과가 뒤집힌 첫 사례로 꼽힌다.

다만 국내 주요 주주들끼리 다툼에서도 3%룰이 큰 변수를 만들었던 사례는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과 한국상장회사협의회는 한국앤컴퍼니에 대해 지난해 정기 주주총회에서 3%룰의 영향을 받을 수 있었던 206개 기업 가운데 유일하게 대주주가 표 대결에 패한 사례라고 꼽았다.

한국앤컴퍼니의 경우도 조 사장이 추천한 후보가 감사위원이 되지 못했으나 큰 변수가 없었다. 감사위원 선임 표결에서 패한 측인 조 사장은 지난해 말 회장으로 승진해 한국앤컴퍼니그룹의 경영권을 최종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감사위원 선임 표결에서 승리한 조 부회장은 같은 인사에서 고문으로 물러나야 했다. 결국 대주주를 견제한다는 기존 도입 취지를 3%룰이 이행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당초 우려와 달리 3%룰이 별달리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로 '합산 3%룰'이 '개별 3%룰'로 완화된 영향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당초 정부는 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의결권을 합산해 3%로 제한하기로 했으나, 재계 등의 반발로 각각 3%(개별 3%룰)로 법안을 수정했다. 이 때문에 한국앤컴퍼니처럼 주요 주주 간 경영권 분쟁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3%룰이 대주주와의 대결 결과를 뒤집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합산 3%룰 탓에 사실상 대주주가 3%룰을 회피할 방법이 많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 사조그룹은 지난해 8월 임시 주주총회를 한 달 앞두고 3%룰을 완전히 무력화시켰다. 당시 일반주주들은 대주주인 주진우 사조그룹 회장이 전횡을 저질러왔다고 주장하며 감사위원 선임 표대결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 회장은 지인 2명에게 각각 지분 3%씩 주식대차거래를 단행했다. 이는 주식대차거래를 하면 대여 받은 사람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 회장은 이 같은 방식으로 감사위원 선임 안건에서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 지분을 6% 늘리는데 성공했다. 그 결과 일반주주들은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재계 관계자는 "3%룰의 영향력이 도입 당시 논의되던 것보다는 크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다만 한국앤컴퍼니 등 소수지만 경영상 변화도 나타나고 있기에 아직 평가를 내리기는 이른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