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리포트] 코로나 봉쇄에… '류겅훙 체조'에 빠진 대륙

2022-04-27 06:39
리자치는 지갑을, 류겅훙은 체력을 바닥냈다
'류겅훙 체조' 열풍의 숨은 승자···더우인
한달새 몸값 2배↑···광고계 가장 잘나가는 스타

류겅훙의 더우인 채널. 팔로워 수가 26일 현재 이미 4766만명을 넘어섰다. [사진=류겅훙 더우인 채널]

대만 유명가수 저우제룬(周杰倫 주걸륜)의 ‘본초강목(本草綱目)’이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온다. 집 거실에서 부부 한쌍이 빠른 템포의 랩에 맞춰 제기차기 체조를 선보인다. “하나, 둘, 셋… 허리 군살아 뚝뚝 떨어져라, 11자 복근아 생겨나라!!" 남편은 중간중간 구호를 넣어가며 활기를 북돋운다. 1시간 넘게 이어지는 운동에 남편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아내의 표정엔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최근 중국서 인기몰이 중인 대만 출신 연예인 류겅훙(劉畊宏)의 '지방 태우기' 체조 운동 영상 속 모습이다. 류겅훙은 배우·가수로 활동했지만, 사람들에겐 '중국판 아빠 어디가'에서 딸 샤오파오푸(小泡芙)와 함께 출연한 아빠, 저우제룬의 절친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최근 타이틀이 하나 더 붙었다. 중국 제1호 '현상급' 헬스 왕훙(網紅·온라인 스타)이다. '현상급', 중국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대박을 터뜨렸단 의미다. 류겅훙 체조는 최근 코로나19의 급속한 확산세로 집에 갇힌 중국인들 사이에서 다시 한번 홈트레이닝(집운동)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리자치는 지갑을, 류겅훙은 체력을 바닥냈다
상하이 코로나19 봉쇄령으로 집안에 갇히게 된 류겅훙이 아내 왕완페이(王婉霏)와 함께 더우인(틱톡의 중국버전)에서 선보인 체조 운동 라이브방송(라방)이 시작이었다. 

그는 3월 말부터 주 5일 더우인에서 1시간 넘게 체조운동 라방을 진행했는데, 중국 매체 36kr에 따르면 30일간 라방 시청횟수가 1억건을 돌파했다. 1회당 시청자 수는 최고 4476만명으로, 2022년 더우인 라방 신기록을 세웠다. 

펀쓰(팔로워)도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20일 2000만명, 21일 3000만명도 돌파하더니 26일 현재 4600만명도 넘어서 중국 '립스틱 오빠'로 불리는 최고의 인기 왕훙 리자치(李佳琦) 팔로워 수 5000만명도 위협하고 있다. 4월 1일까지만 해도 331만명이었는데, 한 달도 안된 사이에 팔로워 수가 약 4000만명 넘게 증가한 것. 두 왕훙을 비교하며 "리자치는 내 지갑을, 류겅훙은 내 체력을 바닥냈다(謀財害命)"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류겅훙 체조 라방을 추종하는 '류겅훙 소녀'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절친 덕분에 저우제룬의 15년 전 노래 '본초강목'은 최근 역주행 중이다. 현재 QQ음악 등 중국 가요 인기차트 순위 1위를 점령했다. 류겅훙 소녀에게 '본초강목'은 다이어트 전쟁에 나서는 비장한 '전투곡'이 됐다. 전국 곳곳의 아줌마들의 '광장무' 주제곡도 '본초강목'으로 바뀌었을 정도다. 

일반인만 열광하는 게 아니다. ‘류겅훙 체조’는 소방대원들의 아침 체조로도 활용될 정도다. 소방대원들이 본초강목 리듬에 맞춰 체조하는 모습이 중국 인민망·신화망에 올라오기도 했다. 류겅훙 라방으로 그동안 필라테스, 요가, 헬스에 밀려 구식으로 여겨졌던 건강체조가 중국서 다시 뜨고 있다.
 

소방대원들이 본초강목에 맞춰 류겅훙 체조를 따라하고 있다. [사진=구이양망]

'류겅훙 체조' 열풍의 숨은 승자···더우인
중국 매체들은 류겅훙 체조의 인기 비결을 분석하고 있다. 

우선 전문성이다. 사실 그는 헬스 경력만 30년이 넘는 헬스 트레이너다. 근육질의 탄탄한 몸매는 나이 50살이 넘은 아저씨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음악에 맞춰 신나게 체조를 하면서 전문 트레이너처럼 어떤 동작의 요점은 무엇인지, 어디를 공략해야 하는지를 설명해준다. 

트레이너 하면 떠오르는 딱딱한 이미지하고도 거리가 멀다. 영상 중간중간 유머를 섞어가며 쉴새없이 이야기하는 '수다스러움'도 장착했다.  오랜 기간 격리에 지친 상하이의 한 누리꾼은 "류겅훙은 최근 격리 생활의 몇 안되는 '긍정에너지'"라고 표현했다. 

운동 기본기가 없는 사람들도 쉽게 따라할 수 있도록 설계한 간편한 체조도 인기 요인이다. 특히 그의 라방에는 항상 아내가 함께 출연해 체조를 하는데, 류겅훙과 달리 운동 중간중간 지쳐서 헉헉거리거나 주저앉는다. 그런 모습에 오히려 누리꾼들은 공감하며 친근감을 느낀다는 후문이다. 
 

운동 도중 헉헉거리는 아내의 모습은 누리꾼의 공감을 얻고 있다. [사진=류겅훙 라방 캡처]

코로나 봉쇄령으로 헬스장이 문을 닫으면서 운동을 하기 힘들게 된 데다가,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 중국인들의 운동 수요와도 맞아떨어졌다. 실제 중국 기업조사업체 치차차에 따르면 2019년까지만 해도 중국 내 신규 등록 피트니스클럽만 5만4600개에 달했지만, 2020년 코로나19 발발 후 절반 수준인 2만8400개로 줄었다.

인기를 끌 만한 화제성도 갖췄다. 사실 처음엔 라방에 아직 익숙지 않은 류겅훙이 수 차례 '방송 사고'도 내며 방영이 잠정 중단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예를 들면 겨드랑이 털을 노출하거나, 몸에 딱 달라붙는 나시는 부적절하다는 경고를 당국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류겅훙은 이에 아예 오리털패딩을 입고 온몸을 가린 채 체조를 하는 등 악재를 유머로 승화시켜 호재로 만드는 센스를 발휘했다.  

류겅훙의 인기엔 더우인의 파워도 한몫했다. 알고리즘으로 류겅훙 라방이 적극 노출되게 치밀한 계획을 세운 것이다.

중국 온라인매체 제몐망은 "사실 류겅훙 체조의 최대 승자는 더우인"이라고 보도했다. 류겅훙 체조 라방의 온라인팁(打賞, 일종의 별풍선)의 절반을 가져가고, 덕분에 어마어마한 트래픽까지 끌어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우인은 류겅훙을 등에 업고 중국 ‘홈트레이닝 업계의 넷플릭스’로 불리는 피트니스 교육 앱 킵(Keep)의 아성도 노리고 있다. 
 

당국의 경고로 오리털패딩을 입고 운동하는 류겅훙. [사진=류겅훙 라방 캡처]

한달새 몸값 2배↑···광고계 가장 잘나가는 스타
류겅훙의 몸값도 치솟는 중이다. 돈 냄새를 맡은 기업들이 앞다퉈 광고를 노출시키기 위해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것. 류겅훙은 최근 광고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중국의 한 대형광고사 관계자는 제몐망을 통해 "류겅훙이 뜬 이후 광고 가격이 하루가 다르게 뛰고 있다"며 "현재 류겅훙의 1분짜리 영상에 광고를 노출시키는 데만 50만 위안(약 1억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전달까지만 해도 류겅훙의 1분짜리 영상 광고단가는 절반도 못 미치는 20만 위안이었다.  

한 중국 기업인은 "류겅훙의 팔로워 수가 너무 빨리 불어나서 광고가를 매기기가 어려울 정도"라며 "이에 현재 잠시 광고 협상도 중단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물론 '류겅훙 체조' 인기가 얼마나 갈지, 중국 온라인 피트니스 시장이 얼마나 커질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특히 왕훙경제 열풍 속 중국엔 반짝 떴다가 지는 왕훙들도 허다하다.

하지만 류겅훙은 다르다는 의견이 많다. 류겅훙 스스로 자신만의 특색 있는 콘텐츠로 차별화한 데다가, 피트니스를 향한 그의 열정과 전문성만 인정받는다면 오래 사랑받을 것이란 관측이다.

특히 최근 중국의 인터넷 산업 규제가 거세지면서 왕훙의 라방에 대한 기준도 높아졌다. 전문성과 공익성을 두루 갖춘 류겅훙 체조는 이런 트렌드에 맞는 적임자라는 평가가 나온다. 제몐망은 "리자치처럼 생방송으로 물건을 팔지 않고도 운동 라방만으로도 충분히 정상급 왕훙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고 전했다. 
 

류겅훙과 그의 아내 왕완페이. [사진=중국 시대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