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창희 칼럼] 미디어 생태계에 대한 '맥락적 접근 그리고 규제 혁신

2022-04-27 17:23

[노창희 카이스트 겸직교수]


지난 4월 21일 과방위 법안심사소위에서 OTT 사업자에게 별도의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과 유료방송 기술중립성 도입을 위한 방송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미디어와 관련된 규제개선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논의되어온 상황에서 큰 의의가 있는 성과라고 할 수 있다.
 
OTT가 전체 미디어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OTT 사업자들은 여전히 이용률과 가입자 확보 측면에서 유튜브와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사업자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넷플릭스는 2022년 1/4분기 실적 발표에서 가입자수가 2021년 4/4분기 보다 20만명 감소한 2억 2,164만명으로 집계되었다고 발표했다. 또한, 넷플릭스는 2/4분기에는 가입자 감소 폭이 더욱 크게 나타나 200만명의 가입자 감소가 예상된다고 자체적으로 전망했다. SVOD 시장을 대표하는 사업자인 넷플릭스의 가입자 감소는 코로나로 인해 급증했던 OTT 이용량 및 가입자 성장 둔화와 OTT 영역에서 심화된 경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넷플릭스마저도 경쟁압력을 견디기 버거운 상황에서 국내 OTT 사업자들이 어려운 환경에서 경쟁을 펼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큰 틀에서의 미디어 체계 개편이 필요한 시점이지만 미디어 시스템 전반을 정비하는 것은 사회적 공론화를 포함하여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다. 오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OTT 사업자에게 별도의 법적 지위를 부여해서 세제 지원 등 지원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방송, 통신, OTT 등 전체 미디어 체계 개편이 언제 이뤄지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OTT 산업을 진흥할 수 있는 정책적 기반을 다졌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와 같은 정부와 국회의 정책적 시도는 사업자가 투자하는 유인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조명할 필요가 있다.
 
국내 방송법 체계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방송사업자에 대한 정의가 기술 전송방식에 입각해서 이뤄져 있다는 것이다. 아날로그 시절에 만들어진 방송의 정의가 크게 변하지 않고 법적으로 적용되고 있고, 새로운 매체 도입시 정의를 추가하는 열거식 방송 정의에 대한 개선 필요성은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지만 방송의 정의를 바꾸는 일은 규제개선 난이도가 높기 때문에 과거부터 이어져 온 정의 및 분류방식이 지금까지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번에 이뤄진 유료방송 기술중립성 도입과 관련된 방송법 개정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시청자 입장에서 케이블TV, IPTV, 위성방송 등 유료방송 플랫폼은 기술적으로 동일하거나 유사한 서비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전송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여러 가지 상이한 규제가 적용되어 왔다. 기술중립성 도입은 기술전송 방식에 구애 받지 않고 사업자들이 다양한 투자를 할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짐과 동시에 시청자들이 보다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정책적 환경이 조성되었다는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OTT 활성화와 레거시 미디어의 위축이 아닌 전체 미디어 생태계의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현재의 변화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조너선 그레이와 어맨다 로츠는 ‘텔레비전’이라는 용어로 기존의 텔레비전 생태계가 확장되고 있는 양상을 다룬다. 이들은‘텔레비전 연구(윤태진, 유경한 옮김)’에서 텔레비전의 영역이 축소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OTT가 텔레비전 생태계에 포함되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이들이 강조하는 것은 ‘맥락’이다. 현재 생태계에서 벌어지는 변화에 대해 맥락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위에서 텔레비전 연구를 인용한 것은 OTT를 방송에 포섭해야 한다는 취지가 아니라 각 영역을 구분해서 접근하는 것보다는 전체 생태계의 공동발전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얘기를 꺼내기 위해서다. 생태계가 복잡한 양상으로 진화하면서 매체 간의 연결성은 보다 촘촘해 지고 있다. 최근 이뤄진 두 가지 법개정도 동떨어져 있지 않다. OTT가 국내에서 글로벌 사업자와 경쟁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고 나아가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는 것은 유료방송 뿐 아니라 국내 미디어 생태계 전체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유료방송의 기술중립성 도입은 유료방송 사업자뿐 아니라 유료방송과 관련된 사업자들도 보다 유연한 시도를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는 측면에서 전체 미디어 생태계에 시너지를 제공할 수 있다.
 
경쟁이 치열해지고 다양한 사업자들이 미디어 시장에 진출할수록 생태계를 이해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앞서 언급한 ‘맥락’적 접근이 중요한 이유다. 현재는 큰 틀에서 미디어 생태계의 변화를 고민하면서도 각론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시급한 현안들에 대한 해결도 이뤄져야 한다. 미디어 관련 부처들에서는 최근 몇 년간 다양한 계획을 발표해 왔다. 과기부에서는 2016년 <유료방송 발전방안>을 비롯하여 2021년 <유료방송제도 개선방안>까지 유료방송을 비롯한 미디어 규제개선을 위한 정책 과제를 지속적으로 발표하고 제도 개선을 추진해 왔다. 방통위에서도 각 기수별 정책과제를 발표해 왔고, 2020년에는 <중장기방송제도개선 정책제안서>를 발표했다. 또한, 2020에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디지털미디어 생태계 발전방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최근 몇 년간 미디어 관련 부처에서 추진해 온 정책과제에 포함된 내용 중 아직 이행이 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조속한 이행이 필요하다.
 
미디어 분야에 대한 규제개선이 더딘 이유는 미디어가 사회문화적으로 큰 영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규제개선에 있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를 고려할 때 미디어 분야 규제 혁신을 위한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된다. 미디어는 측정하기 힘든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만큼 타분야에 미치는 경제적 효과 역시 추정하기 어렵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미디어 분야가 갖는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미디어 규제 혁신을 위한 실천과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이유다.      

노창희 필자 주요 이력 
 
▷중앙대 신문방송학 박사 ▷경희대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