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쉽고 바르게-2]① "방탄소년단 덕분에 한글 배워요" 한류, '한글'을 싣고

2022-04-25 00:00
BTS 번역계 활약…팬 소통방에서 한국어 공부, 가사·일정 각국 언어로
소속사도 한국어 교재·교육용 가요 발매…앱·도서 기획물로 한국어 전파
폐지 위기 프랑스 대학 한국어학과 경쟁률 17:1…베트남선 제1외국어 승격

그룹 방탄소년단 영향력으로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외국 팬들이 늘었다. [사진=하이브]

정보통신기술 발달로 빠르게 변화하는 것 중 하나가 '언어'다. 언어는 세대 간을 비롯해 매체와 독자, TV와 시청자 간 각계각층 사이에 소통의 다리 역할을 한다. 하지만 문제는 '언어 파괴'다. 신조어가 넘쳐나고, 외국어 남용 또한 눈에 띈다. 심지어는 정부나 기관, 언론도 언어문화 파괴의 온상이 됐다. 

신조어와 줄임말, 외국어 등을 사용하면 언어가 새롭고 간결해질 수 있을지는 몰라도 국민의 이해를 돕진 못한다. 자칫 소통을 방해할 수도 있다. '쉬운 우리말 쓰기'가 필요한 이유다. 쉬운 우리말을 쓰면 단어와 문장은 길어질 수 있지만 아이부터 노인까지 더 쉽게 이해하고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사)국어문화원연합회는 국민 언어생활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공공기관 보도자료와 신문·방송·인터넷에 게재되는 기사 등을 대상으로 어려운 외국어를 쉬운 우리말로 대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에 힘입어 본지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우리 주변에 만연한 외국어와 비속어, 신조어 등 '언어 파괴 현상'을 진단하고, 이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기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장기 연재하기로 한다. 


"방탄소년단 때문에 한국어를 배웠어요. 자막 없이 방송을 보고 싶어서요!"

지난 4월 9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얼리전트 스타디움(Allegiant Stadium)에서 열린 방탄소년단의 대면 콘서트 'BTS 퍼미션 투 댄스 온 스테이지-라스베이거스(BTS PERMISSION TO DANCE ON STAGE - LAS VEGAS) 현장에서 만난 17세 소녀 올리비아는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자랑해 취재진을 놀라게 했다.

그는 "한국에서 온 취재진"이라는 말에 먼저 또박또박 한국어로 인사를 건네며 방탄소년단을 보기 위해 미국 텍사스에서 라스베이거스까지 찾아왔다며 가족들을 소개해주기도 했다.

올리비아는 2018년부터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방탄소년단이 정규 3집 음반 '러브 유어셀프 전 티어(LOVE YOURSELF 轉 Tear)'를 발매했을 때다. 이전부터 방탄소년단 음악을 듣고 그들이 출연한 방송 콘텐츠를 즐겨 보았지만 좋아하는 마음이 커지면 커질수록 만족스럽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방탄소년단은 직접 작사·작곡하는 그룹이기 때문에 그들의 언어와 세계관을 이해하고 싶었다. 또한 방탄소년단 자체 콘텐츠인 '달려라 방탄'을 보며 그들의 습관이나 농담 같은 것을 공유하고 싶어지며 한국어와 한글에 관한 관심이 커졌다고 했다. 그는 방탄소년단 팬들이 모인 커뮤니티에서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고. "요즘도 온라인으로 모여 한국어로 대화하곤 한다"며 한글 배우기에 여념이 없다고 전했다.

이날 콘서트 현장에는 올리비아 외에도 능숙한 한국어 실력을 갖춘 외국 팬들은 물론 한글 손팻말(피켓)을 든 팬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특히 콘서트 중간에는 제작진이 한글 팻말을 든 이들을 하나하나 카메라에 담아 뜨거운 반응을 얻기도 했다. 팬들은 '방탄소년단을 응원합니다' '방탄소년단은 영원하다' '보라해' 등 응원 문구가 정성껏 담겨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뭉클한 감동을 자아내게 했다.
 

지난 9일(현지시간) 방탄소년단 콘서트가 열린 미국 라스베이거스 얼리전트 스타디움에서 방탄소년단 팬클럽인 아미 회원이 한글 팻말 등을 들고 응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방탄소년단이 이룬 기록 속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건 전 세계에 울려 퍼진 '한글'과 '한국어'다. 방탄소년단의 '라이프 고즈 온(Life Goes On)'은 비영어권 노래 최초로 빌보드 메인 순위 발매와 동시에 1위를 기록하는 쾌거를 거뒀고 이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전한 말은 각국으로 퍼져나갔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방탄소년단은 직접 작사·작곡을 하고 음반 전체를 제작하는 그룹이기 때문에 이들의 음악 세계를 알고자 하는 팬들의 열망은 더욱 짙어질 수밖에 없었다. 팬들은 직접 한국어 노래를 부르고 가사를 공부했으며 그들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했다.

팬들은 트위터, 인스타그램, 유튜브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에 방탄소년단 노래 가사는 물론, 그들의 말 한 마디, 일정 하나하나까지 각국 언어로 번역하는 'BTS 번역계'를 개설하고 열정적인 번역가로 분하기도 했다. 방탄소년단 번역 트위터 계정은 한 계정당 딸림벗(폴로어) 40만명을 거뜬히 넘겼다. 

'BTS 번역계'가 맹활약을 펼친 건 2020년 지민의 자작곡 '크리스마스 러브(Christmas Love)' 발매 이후였다. 외국 팬들은 해당 곡에 등장한 '소복소복'이라는 단어에 궁금증을 드러냈고 'BTS 번역계'는 '커다란 눈송이가 폭신한 눈 침대를 만들며 소리 없이 땅에 쌓이는 것을 묘사하는 단어'라고 소개하며 '폴링 폴링(falling falling)'이라고 옮겼다. 이 밖에도 방탄소년단이 자주 쓰는 말이나 한글 은어까지 각국 언어로 번역되고 있다.
 

방탄소년단이 575회 한글날을 맞아 다큐멘터리 예고를 하고 있다. [사진=하이브]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팬들을 위해 방탄소년단도 직접 나섰다. 방탄소년단 소속사의 교육 독립법인 빅히트 에듀(현 하이브 에듀)는 방탄소년단 한국어 교재 '런! 코리안 위드 비티에스(Learn! KOREAN with BTS)'를 시작으로 교육용 가요 '가나다(GANADA)' 발매, '토크 위드 비티에스(Talk! with BTS)' 등 애플리케이션과 도서 기획물 등을 통해 한국어 전파에 나섰다.

특히 '가나다' 송은 외국 팬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가'부터 '하'까지 14개 음절을 후렴구로 활용해 외국인이 한글 상용어를 쉽게 따라 부르게 한 음원이다. 수익 일부는 다시 한글 교육 개발에 쓴다. BTS 목소리가 직접 들어가진 않았지만 전형적인 K팝 스타일 작곡에 K팝 댄서로 유명한 아이키의 안무를 붙여 뮤직비디오를 선보여 좋은 반응을 얻었다. 여기에 방탄소년단 구성원 RM이 '한글'을 주제로 지은 자작시 'ㄱ 한다'를 낭송한 영상을 함께 홍보 영상으로 사용해 외국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또 하이브는 지난해 한글날을 맞아 방탄소년단의 한글 서체 그래픽을 활용한 상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방탄소년단 로고 디자인을 따 한글 서체 그래픽을 개발하고 방탄소년단의 곡 가사를 담은 교보생명 광화문글판, 맥도날드 협업 팬 상품 등으로 활용했다. 

한글을 배우고자 하는 이들이 늘며 한때 폐지 위기였던 프랑스 대학의 한국학과는 평균 입학 경쟁률 17대 1을 기록하고 베트남에서는 한국어가 제1외국어로 승격되는 등 세계적으로 한국어 위상이 높아졌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방탄소년단 외에도 K팝 가수들의 인기는 날로 높아지며 전 세계 한류 팬들에게 영향력을 높이고 있다. 최근 외국 팬덤 사이에서는 '오빠(Oppa)'나 '언니(Unnie)' 같은 한국어는 발음대로 영어 철자를 쓰는 게 새로운 문화 중 하나다. 이에 옥스퍼드는 '오빠(Oppa)'를 사전에 추가하며 "유명 배우나 가수 등 남한의 매력적인 남자를 언급할 때도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이 모든 사례는 한류 위상을 방증하는 것이다. 
 

방탄소년단 한글 교재 '토크! 위드 비티에스(Talk! with BTS)'. [사진=하이브 에듀]


방탄소년단의 '한국어 전파'를 시작으로 다른 아이돌 그룹들도 전 세계에 한국어를 알리기 위해 노력 중이다. 에스엠(SM)엔터와 와이지(YG)엔터도 한글 사업에 적극 투자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먼저 SM 자회사인 에스엠컬처파트너스는 MBC와 한국어 교육 스타트업 코이랩스에 투자 중이다. 코이랩스는 MBC와 SM엔터테인먼트의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해 올해 중으로 외국 현지 대학교를 중심으로 정식 서비스를 선보일 계획.

YG엔터테인먼트 소속 블랙핑크의 한국어 교재도 인기다. 하이브 에듀가 제작한 '블랙핑크 인 유어 코리안(BLACKPINK IN YOUR KOREAN)'은 블랙핑크 팬인 주인공 '블링키(Blinky)'가 세계적인 스타 블랙핑크의 집에 초대받아 하루 동안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이야기를 담은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한국어 교재 기획물이다. 해당 콘텐츠는 블랙핑크가 실제 자주 사용하는 다양한 어휘들을 활용했다. 블랙핑크 자체 오리지널 영상 콘텐츠에서 나왔던 표현을 말뭉치 단위로 분석해 교육과정에 적용했다고. 친밀감을 높이는 동시에 생활 어휘를 생생하게 배울 수 있어 팬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