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규 칼럼] 용산시대의 대한민국 국운풍수
2022-04-22 00:00
김두규 풍수학자·우석대 교수·문화재청문화재위원
모든 행위에는 명분과 목적이 뚜렷해야 하며, 구체적 로드맵이 제시되어야 한다. 대통령집무실 용산 이전론에 말들이 많다. 왜 많은 곳 가운데 “기필코 용산인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그곳에서 5년 임기를 마친 후는 어떻게 될 것인가. 공간의 이동은 ‘주변 권력’의 분산과 이동이 뒤따른다. 청와대 주변의 기운이 약해지는 대신, 용산 대통령집무실 주변으로 새로운 ‘주변 권력’이 형성된다. 서울과 용산 그리고 한강의 공간 질서가 재편성되는 것은 필연이다. 용산의 대통령집무실은 정해졌지만, 관저는 또 어디로 해야 할 것인가.
기실, 대통령집무실로서 청와대 터는 문제가 없었다. 문제였다면 대통령 관저였다. 절터로서 제격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풍수사들의 말이 아니다.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다수의 공통된 의견이다. 대통령의 용산 집무실 이전은 단순한 공간 이동이 아니다. 한민족 1000년 역사에 큰 사건이다. 고려 숙종·예종·공민왕·우왕, 조선의 광해군, 해방 이후 박정희 대통령·노무현 대통령도 시도하다가 실패했다. 그만큼 우리 민족과 국운에 끼칠 영향은 지대하다.
변해야 마땅하다. 고정불변한 것은 없다. 풍수(風水)는 문자 그대로 바람과 물이다. 바람도 머물지 아니하고, 물 또한 끊임없이 흘러간다. 변화가 그 존재 방식이다. 너무 오래였다. 경복궁과 청와대 터가 조선 임금과 대한민국 대통령의 집무실로 너무 오래였다. 물론 그 터는 최고의 길지이다. 그러나 길지 개념도 사회경제체제가 바뀌고 시대가 바뀌면 달라진다. 풍수의 기본전제이다. 국력이 강해짐에 비례하여 산간지역에서 평지로 그리고 바닷가로 도읍지와 집무실을 옮겨야 한다. 동양 풍수의 논리이기도 하지만, 서양의 현인들도 같은 생각이다.
19세기 독일의 지리학자 라첼(F. Ratzel) 역시 바다는 해양민족의 대담성과 거시적 안목을 심어준다고 말한다. 자본주의 발달 이후 유럽에서 경쟁적으로 패권국이 바뀌었다. 포르투갈·스페인·네덜란드·영국 등이 한때 패권을 차지했다. 그러나 패권을 차지하고자 하였던 프랑스만은 끝내 제국을 이루지 못했다. 나폴레옹도 실패하였다. 프랑스가 해양국가로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해양국가를 지향해야 세계 제국이 될 수 있음을 역사가 가르쳐준다. 특히 한 나라의 수도가 분지에 있는가, 해안에 있는가는 앞으로 그 나라의 흥망성쇠에 더 많은 영향을 줄 것이다. 이를 풍수에서는 고산룡(高山龍·산간분지)→평지룡(平支龍·평지)→평양룡(平洋龍·큰 강과 바다) 단계로 구분한다. 고산룡이란 산간분지에 만드는 터를 말한다. 국방력이 약할 때 산간분지에 도읍을 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력이 약한 조선왕조는 안전한 산간분지를 찾아 도읍지를 정했다. 다름 아닌 경복궁·청와대 터이다. 국력이 외적을 막아낼 만큼 강할 때는 평지에 도읍을 정함이 옳다. 그러나 이때 반드시 요구되는 것이 횡수(橫水), 즉 빗겨 지르는 강이 필요하다. 용산이 바로 그와 같은 땅이다. 한강이 횡수에 해당한다.
산이 중요한가[主山], 물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가[主水]에 따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그 공동체에 주는 영향은 전혀 다르다. 까닭에 ‘산주인, 수주재(山主人, 水主財)’라는 풍수격언이 생겨났다. 산은 인물을 키우고, 물은 재물을 늘려준다는 말이다. 청와대 터가 인물·명예·권력의 기운을 강하게 해주는 폐쇄적 땅이라면, 용산은 재물·문화·예술·무역의 기운을 키워주는 개방적 땅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국력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터이다. 그렇지만 무조건 평지로, 그리고 바닷가로 나가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산간분지에서 평지로 나갈 때도 늘 조심해야 한다.
‘호입평양 피견기(虎入平壤 被犬欺).’란 풍수격언이 있다. ‘호랑이가 들판에 가니 개에게 수모를 당한다’는 뜻이다. 고산룡에서 평지룡 혹은 평양룡으로 도읍지를 옮길 때, 즉 산중[高山] 임금 호랑이가 들판으로 나갈 때 운불리(運不利)하면 자칫 개에게 수모를 당한다는 뜻이다.
평지룡에서 성공한 국가의 대통령궁은 그다음 어디로 나아가야 할까. 세계 패권국이 되려면 바닷가에 도읍을 정해야 한다. 산간분지에서 평야를 거쳐 바닷가로 국가의 활동 무대가 바뀌어야 국가가 흥성한다.
1868년 메이지 유신 직후 일본은 천도를 논의한다. 후보지로서 기존의 교토·오사카·에도(지금의 도쿄) 등이 떠오른다. 이때 정치인 마에지마 히소카(前島密)·산조 사네토미(三条実美) 등은 ‘수운(水運)의 장래성·뛰어난 지세(地勢)·국운의 흥성’ 등을 이유로 에도(도쿄)를 관철한다. 그들이 말하는 탈아입구(脫亞入歐), 즉 ‘세계화’를 염두에 둔 천도였다. 그리고 성공하였다.
용산은 헤겔과 라첼의 관점에서 보면 중간단계이다. 장차 세계강국으로 나아가려면 바닷가로 도읍지(당연히 대통령 집무실)가 옮겨야 한다. 다행인 것은 용산은 강과 바다를 아우르는 ‘강해(江海)도시’의 이점[利點]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강해(江海)도시란 긴 강(한강)의 하구로서 효율성이 높은 바다[西海]가 이어지는 접점에 있는 ‘하항(河港)도시’와 ‘해항(海港)도시’라는 2개의 성격을 동시에 갖는 것을 말한다.” 용산이 강해(江海)도시가 될 수 있다는 것이 해양사학자인 국립 사마르칸트대 윤명철 교수의 지론이다. 이 부분 필자와 전적으로 뜻이 같다.
“한강은 한때 조운망이 발달했고, 진과 포구 등이 있었다. 조선왕조가 용산에 크고 견고한 부두 등을 건설하여 개경의 ‘벽란도’처럼 국제적인 항구로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랬더라면 국제적인 수도가 될 수 있었다. 조선의 운명이 달라졌을 것이다. 도읍지뿐만 아니라 대통령집무실을 어디로 할 것인가는 정권의 운명이 아니라 국가의 운명이 걸린 문제이다. 실용성·국제 질서·국가 미래를 고려해야 한다.”
윤 당선인의 ‘용산 대통령집무실이전’과 무관하게 1년 반 전, 필자는 미군기지가 평택으로 이전한다는 뉴스를 접하고 용산에 대해서 모 신문 고정 칼럼에서 용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쓴 적이 있다.
“山은 龍이요, 龍은 임금이다. 따라서 임금은 바로 산이다. 그러므로 그곳은 제왕의 땅[帝王之地]이다. 용산을 얻으면 천하를 얻는다[得龍山 得天下].”(조선일보, 2020년 10월 24일자)
용산은 분명 좋은 땅이다. 그러나 넓고 넓은 용산에서도 땅기운이 뭉친 곳은 몇 개 되지 않는다. 그 결혈처(結穴處)를 찾음이 중요하다. 한남동·녹사평역·국방부·해방촌 아래 미군기지·조선 시대 기와를 구워 조정에 납품했던 와서(瓦署) 일대 등이 길지이다. 터마다 크고 작은 결혈처로서 장단점이 있다. 풍수에 개안(開眼)의 경지에 오른 작가 최명희(작고)의 <혼불> 한 대목이 지금처럼 절실한 때가 없다.
“경치고, 정신이고, 인생이고, 결혈의 묘처(妙處)는 오직 한 군데 아니면 많아야 두 군데에 불과할 것인 즉, 이 자리를 소중하게 아끼고 잘 갊아서 제 생애를 다한 집을 세워야 하리라.” 한 개인의 결혈처도 그러한데, 대한민국이라는 운명공동체를 책임질 결혈처에 '대통령궁'이란 집을 세움에 그 정성이 오죽해야 할까. 다음 글에서 용산 땅과 풍수적 개조(改造)에 대해 계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