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이후 최악 경제위기 스리랑카…"대통령 물러나라"
2022-04-10 11:57
스리랑카가 독립 이후 최악의 금융위기를 맞았다. 스리랑카에서는 에너지는 물론 식량, 의약품까지 부족해지면서, 대규모 반정부 집회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고 9일(이하 현지시간) 가디언 등 외신은 전했다. 시위에 모인 대중들은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현재 스리랑카는 심각한 경제난으로 신문들도 인쇄를 하지 못하고 학교에서도 시험을 보지 못하는 지경이다. 약국과 병원도 의료 위기를 선언했으며, 식량 공급의 감소로 무려 2200만명에 달하는 이들이 기아 선상에 놓이게 됐다.
가디언은 "최근 몇 주 동안 스리랑카에서 전례 없던 시위가 전국에서 일어났는데, 조직적인 운동이라기보다는 국가를 위기로 몰아넣은 정치인들에 대한 집단적 분노에 의해 촉발됐다"면서 "많은 이들이 최근의 시위를 '스리랑카의 아랍의 봄'이라고 부르고 있다"고 전했다.
젊은 세대가 주도하고 있는 시위는 라자팍사 대통령 퇴진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라자팍사 대통령은 국방부 차관으로 일하던 2009년 분리주의자 반군 세력인 타밀 타이거를 몰아내고 스리랑카 내전을 종식시키는 데 공헌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2019년 11월 취임한 그는 그해 4월 이슬람국가 세력의 연쇄 폭탄 공격이 재발하지 않고 평화를 유지할 것이라고 약속하기도 했다.
스리랑카에서 가장 권력이 막강한 가문 중 하나 출신인 라자팍사 대통령은 아버지가 국회의원이자 내각 장관이었으며, 큰형은 스리랑카 대통령을 두 번 역임한 바 있다. 다른 형제 두 명도 이전 정권에서 고위직을 맡았다. 반군세력 진압 과정에서 인권 침해, 2016년엔 정부 소유 무기를 불법으로 빼돌린 혐의 등으로 취임 초기부터 대통령 자격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라자팍사 대통령은 취임 뒤 형 마힌다 전 대통령을 신임 총리로 임명하기도 했다. 취임 뒤 2년간 라자팍사 대통령은 행정력 강화를 위해 헌법을 개정했다.
무엇보다 방향성 없는 경제정책이 스리랑카 경제에 큰 타격을 줬다. 라자팍사 대통령은 긴축정책을 폐지하고, 감세정책을 펼쳤다. 또 막대한 돈을 찍어내면서 인플레이션을 자극했다. 뿐만 아니라 외채 구조조정을 거부하고 외환보유고를 모두 소진하는 등 집권 뒤 연속적으로 이어진 실책으로 스리랑카 경제는 급격히 약화됐다. 정권 내에서 사임이 이어지며, 40명 이상의 정치인들은 그의 연립정부를 탈당하여 독립했다. 그러나 라자팍사 대통령은 사임할 의사가 없다는 입장이다.
9일부터 수천 명의 시민은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 시내 주요 도로 등에 집결해 국기와 현수막을 흔들면서 라자팍사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고 있다. 이날 콜롬보 북부의 순교자 묘지에서는 가톨릭 사제와 수녀, 신자 수백 명이 집회를 열고 라자팍사 정부가 경제 위기에 책임이 있으며 2019년 발생한 '부활절 테러' 배후도 밝히지 못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스리랑카는 관광산업 의존도가 높고 대외 채무가 많다. 2019년 부활절 테러, 코로나19 사태, 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겹치면서 경제는 크게 타격을 입었다. 스리랑카 정부의 지난달 말 기준 외환보유고는 19억3000만 달러(약 2조4000억원)에 불과하다. 그러나 스리랑카가 올해 갚아야 할 대외 부채 규모는 70억 달러에 달한다. 스리랑카 정부는 인도, 중국 등에 긴급 지원을 요청했고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 IMF는 "스리랑카의 경제 위기를 매우 우려한다"면서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위해 스리랑카 재무부, 중앙은행 관계자들과 실무협상을 시작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