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팔비틀기 없애달라"는 금융권 하소연…새 정부 새겨들어야

2022-04-09 06:00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정부 재정으로 지원해야 하는 영역까지 은행의 금융 지원을 요청하는 관행이 잔존한다. 금융당국의 간섭으로 애로를 겪고 있다."

전국은행연합회가 최근 새 정부 인수위원회에 제출하기 위해 작성한 ‘은행업계 제언’ 초안 내용 일부다. 금융산업 전반에 걸쳐 방대한 내용이 담겨 있지만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바로 '관치금융 해소'에 대한 요구다. 보고서를 통해 금융권은 "은행이 공공기관이며 금융서비스가 공짜라는 인식이 강하다"며 작심 발언에 나섰다.

은행권의 이 같은 자체 평가는 일반 금융소비자들이 금융권을 바라보는 시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정부와 금융당국의 시선이기도 하다. 수년 전 한 금융당국 수장은 "고객이 맡긴 돈을 가지고 영업을 하는 금융산업은 타 산업과 달리 수익을 많이 창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면서 "금융산업 성장의 혜택이 국민과 기업에 골고루 돌아가지 않는다면 아무리 많은 수익을 내고 성장한다 해도 박수를 받기 어렵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금융 분야에서의 관치금융, 더 나아가 정치권이 개입하는 이른바 정치금융은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시스템 리스크로 연결될 수 있는 금융 특성상 일반 산업에 비해 규제 강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그 수준이 다소 과도하다. 특히 선거철 등 특정 시기만 다가오면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들이 금융지원 공약들을 일단 '보기 좋은 떡'처럼 내어놓는다. 유권자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니만큼 금융산업이나 정책적 논의에는 뒷전일 수밖에 없다.


가장 비근한 예가 윤석열표 청년 1억 만들기 통장으로 불리는 '청년도약계좌'다. 최근 연 10% 수준의 금리를 제공하는 ‘청년희망적금’이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윤 당선자 역시 이와 비슷한 ‘청년도약계좌’ 공약을 내놓았다. 매달 최대 70만원을 저축하면 정부가 가입자의 소득에 따라 월 10만~40만원씩 지급해 10년 만기에 1억원의 목돈을 마련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관건은 '어떻게 재원을 마련할 것이냐' 하는 것이고, 문제는 그 부담이 결국 '금융권 팔 꺾기' 식으로 전가되는 구조라는 것이다. 앞선 청년희망적금도 당초 수요보다 7배가 넘는 신청자가 몰리면서 은행이 추가로 이자를 부담을 해야 하는 규모만 1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새 정부 공약인 청년도약계좌는 그보다 혜택이 더 큰 만큼 재원 부담도 막대하다. 통계청이 추산한 청년 취업자 630만명이 모두 청년도약계좌에 가입하고 10년간 최소 지원금액인 월 10만원씩을 받는다고 가정하면 약 75조원 상당의 재정이 필요할 것으로 관측된다.

금융업도 성장·발전해 나가야 할 엄연한 산업의 일종이다. 금융업 특성상 독립성과 자율성 보장을 통해 산업 발전을 꾀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금융권 전방위에 걸쳐 개입하려는 태도로는 경쟁력 하락만 자초할 수 있다는 지적이 높다. 3년마다 당정 결정으로 쥐어짜듯 내어놓는 카드가맹점 수수료 인하와 코로나 팬데믹 이후 2년여간 연장에 연장이 거듭되고 있는 코로나대출, 은행권과 금융기관들의 지방 이전 압박 움직임 등 금융권 이슈 상당 부분은 관치금융의 산물이다.

윤 당선인은 앞서 선거운동 당시 "시장경제는 공정한 경쟁이 전제돼야 효율성과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다"면서 "정부 개입은 시장 실패를 막는 상식적인 수준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자신의 말처럼 다음달 출범할 새 정부는 금융권에 '개입' 대신 '자율'이라는 새 바람을 불러올 수 있을까. 아니면 그동안 매번 반복됐던 것처럼 이번 정부 역시 '관치의 덫'에서 금융권을 더욱 옥죌지 관심 있게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