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바꾸는 기업들···'업종' 빼고 '가치·포부' 담았다

2022-04-07 06:00

코로나19 사태 이후 사명을 변경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과거에는 그룹 브랜드 뒤에 사업 영역에 해당하는 단어를 붙이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지만 최근 파격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기존 사명에서 특정 업종에 대한 단어가 빠지고 기업 가치나 포부가 담긴 사명이 늘어나는 추세다.

인공지능(AI)·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에 따른 혁신적인 기술이 등장하고 코로나19로 일하는 방식이 급변하면서 산업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현상이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전통적으로 상품과 서비스를 공급해왔던 판매자 지위가 위협받고 새로운 공급자가 나타나고 있다는 의미다. 이 같은 상황에 여러 기업들이 스스로 업종 구분에서 과감히 벗어나 생존을 위해 혁신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새 옷 갈아입는 기업들···종합화학·상사 사라져

6일 재계에 따르면 최근 수십 년 동안 유지해왔던 사명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현대중공업지주는 지난달 28일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창립 50주년을 맞아 사명을 'HD현대'로 변경했다. HD현대는 '인간이 가진 역동적인 에너지(Human Dynamics)'로 '인류의 꿈(Human Dreams)'을 실현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설명이다.

비슷한 시기에 두산중공업도 정기 주주총회를 통해 21년 동안 유지했던 사명을 '두산에너빌리티'로 바꿨다. 에너빌리티(Enerbility)는 에너지에 지속 가능성을 더한 합성어다. 에너지 기술로 인류의 삶은 더 윤택해지고 지구는 더욱 청정해지도록 하여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는 설명이다.

포스코그룹 물류업무를 담당하는 포스코터미날도 임시 주주총회를 통해 '포스코플로우'로 사명변경을 확정했다. 지난 1월 포스코그룹의 물류통합업무를 담당하는 회사로 재탄생한 포스코터미날은 기존 사명으로는 사업의 목적과 지향점을 담기 어렵다고 판단해 새로운 사명을 채택했다. '친환경, 스마트 물류기업으로서 상생활동을 통해 물류산업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가는 기업'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담겠다는 포부다.

또 포스코그룹 계열사인 포스코강판도 지난달 사명을 포스코스틸리온으로 변경했다. 스틸리온(Steeleon)은 '강철(Steel)·완벽(Complete)·철(Iron)'의 합성어다. 아울러 'STEEL is essence ON everywhere(철은 어디에나 있다)'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포스코강판은 1988년 포항도금강판으로 출발해 34년 동안 사명에 '강판'이란 단어로 영위하는 업종을 나타내왔다. 그러나 포스코그룹의 철강 사업이 고도화되고 생산 제품들도 다양해지면서 '포스코의 제품'으로 오인되는 경우가 늘어나 사명 변경을 단행한 것으로 보인다. 또 포스코스틸리온 내부적으로 정체성과 미래지향적인 사명에 대한 필요성이 커진 점도 고려한 것으로 파악된다.

한화종합화학은 지난해 하반기 한화임팩트로 사명을 바꿨다. 일명 착한 투자로 불리는 '임팩트' 투자의 의미를 차용해 지속 가능한 미래를 이끌겠다는 비전을 담았다.

또 지난해 하반기 SK종합화학도 SK지오센트릭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지구·토양을 뜻하는 '지오(Geo)'와 중심을 의미하는 '센트릭(Centric)'을 합쳐 사명으로 삼았다. 이로써 사명에 '종합화학'을 쓰는 대기업을 찾을 수 없게 됐다.

'상사(商社)'도 사명으로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지난해 3월 현대종합상사가 창립 45년 만에 사명을 '현대코퍼레이션'으로 변경했다. 몇 달 뒤 LX홀딩스 자회사로 편입된 LG상사가 26년 만에 회사 이름을 'LX인터내셔널'로 바꾸면서 사명에 상사라는 단어를 활용하는 대기업은 하나도 없게 됐다.

재계에서는 이 같은 사명 변경에 대해 기업이 '새 옷'을 입는 것과 유사하다고 설명한다. 오래되고 고정된 인식을 주는 영위 사업을 떼어내고 미래지향적 신사업과 새로운 가치에 도전하겠다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는 시각에서다.

재계 관계자는 "4차 산업혁명 시기를 맞아 신사업에 뛰어드는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사명을 변경해 옛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며 "미래 사업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미래지향적인 사명을 선호하는 추세도 지속될 것 같다"고 말했다.

◆'신사업이 살길'···사업회사 분리하고 투자회사 전환도 눈길

아울러 최근 사업회사와 분리해 투자회사로 전환을 시도하는 대기업도 늘어나고 있다. 미래 사업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해당 신사업에 진출하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모색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 초 포스코와 세아베스틸이 각각 주주총회를 통해 물적분할을 통한 사업회사의 분리와 지주사 전환을 통한 투자회사 전환을 확정했다. 세아베스틸은 지난달 25일 큰 잡음 없이 안건을 승인받았으며, 포스코 역시 중간 과정에서 다소 진통이 있었으나 지난 1월 주주총회에서 물적분할 안건을 통과시키는 데 성공했다.

양사는 다소 차이가 있으나 공통적으로 미래 사업 분야에 투자하겠다는 방침이다. 포스코는 이차전지 소재 등 미래 사업에 투자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련하겠다는 포부다. 세아베스틸은 수소 사업과 항공방산 소재, 전기차 소재 등 고성능 특수강을 필요로 하는 곳에 투자해 미래 사업을 발굴한다는 계획이다.

분할 방식은 차이가 있으나 SK그룹에서도 최근 투자회사 전환을 단행했다. SK텔레콤은 지난해 11월 인적분할로 통신회사와 투자회사로 분할됐다. 통신사업은 SK텔레콤, 반도체·정보통신기술(ICT) 투자는 SK스퀘어가 책임지는 사업구조로 변화했다.

SK스퀘어는 SK텔레콤이 보유하던 핵심 계열사 SK하이닉스를 넘겨받았고, 보안(ADT캡스)·커머스(11번가)·모빌리티(티맵모빌리티) 등 비통신 회사들을 거느리게 됐다. SK스퀘어는 반도체·5G·AI 등 다양한 정보통신기술(ICT) 영역에서 신사업 역량을 높이기로 했다.

SK그룹은 2017년부터 SK㈜의 투자형 지주사로서 변화를 선언하고 관련 움직임을 신속하게 진행하기도 했다. 현재 SK㈜는 첨단소재·바이오·그린·디지털 등 4대 핵심 사업에 대한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기존 사업보다 미래 사업에 초점을 맞춘 기업들이 투자회사 전환을 통해 신사업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며 "투자회사로서 전환을 통해 기업문화를 혁신하고 더욱 강도 높게 미래 사업을 선점·확보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