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과 소통 가능한 채널부터 새로 만들어야

2022-04-06 08:40
[윤석열 당선인에게 바란다 - 4강 외교 이렇게] (1) 중국

윤석열 당선인에게 바란다 - 4강 외교 이렇게 (1) 중국
 
<편집자 주> 아주경제신문은 다음 달 10일 출범하는 윤석열 새 정부의 성공을 바라는 뜻에서 ‘윤석열 당선인에게 바란다 - 4강 외교 이렇게’라는 시리즈 칼럼을 마련했다. 시리즈 칼럼은 ① 중국편 박승준 논설고문 ② 미국·북한 편 안인해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③일본편 신각수 전 주일대사 ④ 유럽·러시아편 이희수 한양대 명예교수의 순서로 연재할 예정이다.

 

주한중국대사 접견하는 윤석열 당선인 (서울=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 마련된 당선인 사무실에서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를 접견하고 있다. 



 
“베이징과 소통 가능한 외교 채널부터 먼저 만들어야 ”
 
윤석열 당선인이 중국에 대해 취한 첫 외교적 행보는 후보 시절인 지난 2월 8일 미 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즈(Foreign Affairs)에 ‘한국은 한 걸음 더 나가려한다(South Korea Needs to Step Up)’라는 글을 기고한 것이었다. 당선인의 초등학교 동창인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쓴 것으로 알려진 이 기고문에서 윤 당선인은 대미(對美) 외교뿐만 아니라 대중(對中) 외교에 대해 많은 언급을 했다.

“격화되는 미국과 중국의 경쟁은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에게 전략적 딜레마를 안겨주고 있다. 이들 국가들은 미국과의 오랜 협력관계를 소홀히 할 수 없지만, 늘어나는 중국과의 경제교류 때문에 이들 국가들이 미국과의 다국가간 협력, 중국이 반대하는 전략적 행동에 참여하는 것을 꺼리게 만들고 있다.”

“2016년에 북한 미사일 방어를 위해 미국산 고고도 지역방어(THAAD) 체제를 배치한 이후 한국은 중국으로부터 무역과 관광 보이콧을 포함한 다각도의 경제적 압력을 받았다. 문재인 정부는 중국을 달래기 위해 3불(three-nos) 정책을 선언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추가 사드 배치 않겠다,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에 참여 않겠다, 한·미·일 삼각 군사동맹을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3불 정책은 한국의 주권을 약화시키는 선언이었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해서는 안되며, 한국의 핵심 안보 이익을 지키는 데에 어떤 타협도 있을 수 없어야 한다.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주권을 지키기 위해서 앞으로 한국은 사드의 추가배치에 열린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이다.”

윤석열 당선인이 후보시절에 포린 어페어즈에 기고한 글은 당연히 중국 외교부의 주목을 받았을 것이다. 중국 외교가에는 1972년 2월에 있었던 닉슨 대통령의 미국과 마오쩌둥(毛澤東)주석이 이끄는 중국의 화해는, 닉슨이 대통령 후보 시절인 1967년 10월 포린 어페어즈에 “중국을 국제사회의 밖에 내버려 두어서는 안된다”는 글을 기고함으로써 시작됐음을 증언하는 많은 책과 자료가 공개돼 있다. 당시 외교부를 통해 닉슨의 기고를 보고받은 마오쩌둥(毛澤東)은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에게 보내 폴란드를 통한 미국과의 교섭채널을 열어둘 것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3월 10일 한국의 대선 결과가 알려진 그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윤 후보의 당선을 축하하는 축전을 보냈다는 사실을 중국 관영매체가 공개했고,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는 다음 날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로 윤 당선인을 찾아가 시진핑 주석의 축전을 인쇄한 문건을 전달했다. 싱하이밍 대사는 지난 4월 3일 중국 국내 관영매체와 인터뷰에서 “당시 윤 당선인은 시 주석의 축전에 대한 감사를 표하고, 취임 후 빠른 시일 안에 시 주석과 회견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싱하이밍 대사의 본국 보고와 중국 외교부가 시진핑 주석에게 한 보고내용은 알 수 없으나 시진핑 주석은 3월 25일 윤석열 당선인에게 전화를 거는 외교적 행동을 취했다. 이 과정에서 인상적인 점은 중국 국내 관영매체에 공개된 시진핑의 통화내용이었다. 중국 국가주석이 외국 정상과 한 대화와 통화내용은 “두 나라의 관계 발전이 양국 인민들의 근본 이익에 부합하며, 지역의 평화와 발전을 촉진할 것”이라는 등의 의례적인 내용으로 시작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번 시진핑이 윤 당선인과 통화한 내용은 “중국과 한국은 이사 갈 수 없는(搬不走的) 이웃이며, 서로 떨어질 수 없는(分不開的) 협력 동반자 관계”라는 말로 시작했다고 중국 관영매체들은 전한다. 그러면서 “중국과 한국은 올해로 수교 30주년이며, 이를 계기로 상호존중과 정치적 신뢰를 강화하고, 민간의 우호를 증진해서 양국 관계를 ‘행온치원(行穩致遠·안정된 발걸음으로 멀리 가자)’으로 추진해나가자”는 것이다.

서울대 중문과 출신의 박인국 전 주 유엔대사(최종현 학술원 원장)는 “우리의 대중(對中)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보다도 유효한 외교 채널(통로)을 만드는 일이며, 양국 외교 당국간의 접촉 인터페이스를 늘리고, 문화교류를 강화하는 측면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1992년 8월에 이뤄진 한·중 수교 이후 30년 동안 우리 외교는 대중 외교에서 이렇다 할 채널을 구축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중국어를 제대로 구사하는 대사는 모두 13명의 역대 대사들 가운데 김대중 대통령이 임명한 제6대 김하중 대사가 거의 유일한 형편이다.

현재 가동 중인 중국측의 대한 외교채널은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다. 한중수교 당시 외교부 장관이었던 이상옥 유엔한국협회 고문이 2002년에 출판한 회고록 <전환기의 한국외교>에 따르면 1992년 5월에 시작된 한·중수교 예비회담 대표단의 한 명이 당시 중국 외교부 아주국 직원으로 우리말 통역이었던 싱하이밍 현 주한 중국대사였다. 북한 사리원 농업대학에서 우리말을 공부한 싱하이밍은 1988년부터 1991년까지 평양주재 중국대사관에서 근무했고, 1992년부터 1995년까지는 주한 중국대사관에서 3등 서기관으로, 다시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주한 중국대사관 참사로, 2006년부터 2011년까지 5년간은 주한 중국대사관 공사급 참사로, 이후 몽골 주재 대사로 4년간 근무한 뒤 지난 2020년 1월부터 주한 중국대사로 근무 중이다. 1986년에 중국 외교부에 들어가 지금까지 36년간 외교관 생활을 한 싱하이밍은 외교관 생활의 대부분을 주한 중국대사관, 주 평양 중국대사관과 아시아국에서만 근무한 한반도 통(通)이다.

중국 외교를 총지휘하는 중국 외교부는 베이징(北京) 시내 중심가에 방이 1000개가 넘는 높이 172m에 27층의 독립 건물을 사용하고 있다. 중국 외교를 총지휘하는 사령탑은 양제츠(楊潔篪) 중국공산당 정치국원 겸 중앙외사공작 판공실 주임이다. 상하이(上海) 출신으로 1972년에 외교부 직원이 된 양제츠는 미국통으로 유명하다. 양제츠는 20대이던 1970년대에 베이징에서 미 CIA 지국장을 하던 조지 HW 부시를 만나러온 아들 조지 W 부시의 만리장성 구경을 안내하면서 부시 일가와 인연을 맺게 됐고, 이후 주로 주미 중국대사관에서 근무하면서 부시 일가의 텍사스주 크로퍼드 목장에 언제든 출입할 수 있는 정도의 친분을 쌓은 것으로 유명하다. 주미 중국대사를 지낸 양제츠는 부시 일가와의 그런 인연으로 2001년 4월에 발생한 남중국해 하이난(海南)도 EP-3 미군 정찰기 추락사건 때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의 지시에 따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사과를 끌어내 미·중 충돌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1992년의 한·중수교 당시나 30년이 흐른 지금도 바뀌지 않는 사실은 주한 중국대사관 에 근무하는 중국 외교관들은 대부분 한국어에 능통하고, 주중 한국대사관에 근무하는 우리 외교관들 대부분은 중국어에 능통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경영학 교수 출신인 현 장하성 주중 한국대사는 2019년 3월 주중대사로 내정될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장하성 정책실장은 중국어로 책을 낸 중국통”이라고 했다가 야당의 집중공격을 받은 일이 있다. 장하성 실장이 쓴 <한국의 자본주의>라는 책은 2018년 상하이 푸단(復旦)대학 한반도연구소 소속 한국 전문 학자 싱리쥐(邢麗菊)가 중국어로 번역해서 중국에서 출판한 <한국식자본주의(韓國式資本主義)>라는 책이었다. 역시 중국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던 전임 노영민 주중 한국대사는 2019년 8월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자리를 옮겨 귀국한 날이 김정은이 중국을 방문한 날이었다. 중국 북한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판단해야 할 대사가 가장 중요한 임무를 버려두고 귀국했다는 비판이 야당과 언론에서 제기되기도 했다.

미국도 주중 대사를 임명할 때 중국 전문가이거나 국제정치 전문가를 임명하는 관례를 갖고 있다. 현임 니콜라스 번스(Burns) 대사는 하버드 JFK(존 F 케네디) 스쿨에서 외교와 국제정치를 공부한 학자 출신이며, 주한 미국대사를 지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제임스 릴리(Lilley)는 만주에서 출생해서 리제밍(李潔明)이라는 중국어 이름을 갖고 있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주중 미대사를 지낸 게리 록(Locke)은 광둥(廣東)성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3세대 ABC(America Born Chinese)였던 사실도 유명하다.

현재 국제정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중국, 북한의 러시아 편들기로 동아시아에서 중·북·러와 한·미·일의 냉전적 갈등 구조가 깊어지는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함께 트럼프 미 대통령 때 본격적으로 시작된 미국과 중국의 정치·경제적 대립으로 한국의 대중 외교 공간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의 제1위 무역상대국인 중국과 외교관계를 축소일변도로 끌고갈 수도 없는 상황이다.

시진핑의 말대로 2500년이 넘는 중국과의 교류사를 버려두고 “어디로 이사를 갈 수도 없는” 형편이다. 윤석열 당선인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미동맹도 강화하고, 수교 30년을 맞는 한·중관계도 회복해나가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어려운 난제를 안고 새 정부를 출범시킨다. 한·중관계라는 난제(難題)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대중 외교를 현지에서 지휘할 주중 한국대사를 최소한 중국의 역사와 문화, 언어를 이해하는 인사 가운데에서 골라 한·중간에 제대로 된 소통 채널부터 건설하는 일부터 대중(對中)외교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