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호 칼럼] 새 정부는 국민연금의 경영권 갑질 막아야

2022-03-23 18:44

 

 
 
“경제를 민간이 주도하게 하고, 기업의 성장을 방해하는 요소를 제거하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밝힌 경제 철학이다. 자유시장 경제체제에선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라 철학이라 할 것도 없다. 대통령 당선인은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를 경제6단체장과 처음 만난 자리에서 강조했다. 이 당연한 것들이 문재인 정부에선 지켜지지 않았다고 봤기 때문일 것이다.

대표적 사례가 문재인 정부에서 도입한 ‘스튜어드십 코드’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연기금이나 자산운용사 같은 기관투자자가 집사(스튜어드)처럼 고객 자산을 관리하기 위해 적극적 의결권 행사에 나서도록 하는 자율지침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나라는 많지만, 정부 주도로 추진된 곳은 한국뿐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주주행동주의’라는 글로벌 스탠더드와 결이 같아보이지만, 그것이 정부 주도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하는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책위)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인 기금운용위원회 산하에 설치됐다. 수책위 소속 상근전문위원도 보건복지부가 임명한다. 그래서 주주총회에서 막강한 의결권을 가진 수책위는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정부 꼬리표가 붙은 스튜어드십 코드를 앞세워 기업 경영에 정권 이념을 강요할 수 있는 구조다. 국민연금은 지침을 개정해 대표소송권이라는 칼자루까지 쥐려 한다. 전문가들은 '연금 사회주의'를 염두에 둔 조치로 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1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열린 경제6단체장과의 오찬 회동에서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등 참석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국회사진기자단]


3월은 주총의 달이다.  매일같이 주총이 열린다. 과거와 달리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여부가 주총의 주요 이슈가 됐다. 국민연금이 기업의 임원 선임과 같은 주요 안건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하면서 기업을 압박하는 모습이 이제는 일상이 됐다.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가진 국내기업만 300개가 넘다보니 국민연금이 기업 경영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국민연금은 기업이 선임한 임원이 기소됐다는 이유로, 또는 공정위의 과징금 결정이 내려졌다는 이유로 유죄가 확정되지 않았음에도 헌법이 보장한 '무죄추정의 원칙'을 무시해 기업을 압박한다. 국민연금의 과도한 경영 개입은 기업들에겐 큰 리스크다. 

지난해 국민연금의 대기업 상장사 주주총회 안건에 대한 반대율은 10%를 넘었다. 국민연금이 반대 의결권이라는 무기를 앞세워 민간기업의 경영을 훼방한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국민연금 수책위 출신 허희영 한국항공대 총장은 "국민이 맡긴 노후자금을 기업인을 혼내고 벌주기 위한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된다"고 지적한다. 

모노리서치가 지난 1월 연금 가입자 8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정부의 기업통제 수단이 돼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68%에 달했다. 응답자의 절반은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가 국민의 노후 보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가 연금 가입자인 국민의 기대에 역행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윤 당선인이 제거해야 할 기업의 자율적인 경영활동을 방해하는 요소는 바로 국민연금의 무분별한 주주권 행사다. 국민연금은 대한민국 국민의 노후를 책임지는 곳이지, 더이상 기업의 발목을 잡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된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둔 윤 당선인이 기업인들에게 약속한 것처럼, 차근차근 비상식적인 부분들을 정상화해주길 기대한다. 

 

[사진=국민연금공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