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원유 부족에 사우디에 매달려...엎질러진 원유 주워담을까
2022-03-22 18:36
미국과 영국에 이어 유럽까지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제한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는 가운데 유가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치솟은 유가에 미국 물가상승률 역시 40년래 최고치를 경신했다. 물가를 잡기 위해서는 러시아산 에너지의 대체재를 찾아 원유 시장을 안정시키는 것이 급선무다. 이에 조 바이든 대통령이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석유수출국기구(OPEC)을 이끄는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를 개선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서방 국가들이 계속해서 사우디에 증산 요구를 하고 있지만 사우디는 요지부동이다. 지난 16일(현지시간)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사우디를 방문해 증산을 요청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고 로이터는 밝혔다. 존슨 총리는 사우디에서 1시간 45분 동안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나고 난 뒤 기자들로부터 증산 합의를 했냐는 질문을 받고는 "사우디와 얘기해봐라"라며 "사우디도 국제 석유·가스 시장 안정을 보장할 필요성을 이해하고 있다고 본다"고만 답했다. 사우디 정부 발표문에도 증산에 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로이터는 미국과의 경색된 관계 때문에 사우디가 서방국들의 증산 요구를 묵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인권 문제를 두고 갈등을 키우며 양국 간 관계는 급격히 경색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간 사우디 왕실을 비판해온 언론인인 자말 카슈끄지의 암살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개입했다며 강하게 비판해 왔다. 대선 유세에서도 사우디아라비아가 대가를 치러야 한다며, 이들을 외톨이로 만들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취임 이후에도 사우디아라비아가 예멘 내전을 장기화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의 후티 반군(자칭 안사룰라)을 테러리스트 명단에서 제외하고 무기 판매도 일부 중단했다. 예멘 내전은 2014년 발발한 이후 이란과 사우디의 대리전 양상으로 번지며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4일 사우디아라비아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초청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대신 중국에 손을 내밀고 있는 모습이다. WSJ·블룸버그 등 외신은 사우디가 대중 수출분에 대한 위안화 결제 허용은 물론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를 통해 일명 '페트로 위안'으로 불리는 위안화 표시 원유 선물거래 허용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빈 살만 왕세자와 바이든 대통령 간 감정의 골이 생각보다 깊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블룸버그는 21일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 3명을 인용해 빈 살만 왕세자와 바이든 대통령 간 통화를 주선하도록 시도했지만 이러한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다고 밝혔다. 에밀리 혼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백악관이 왕세자와의 통화를 요청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대신 백악관은 살만 빈 압둘 아지즈 사우디 국왕과 지난 2월 에너지 협력과 기후, 안보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고 덧붙였다. 사우디 국왕은 현재 노쇠해 사실상 실권이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코로나 이후 수요가 급증하며 이미 치솟고 있던 유가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미국과 영국이 러시아산 원유를 시장에서 배제하겠다고 나서며 내려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중간선거를 앞두고 지지율을 회복하기 위해 물가를 낮춰야 하는 바이든 대통령에게도 사우디의 협력은 절실하다. 그러나 블룸버그는 왕세자가 연로한 국왕만을 중요시한 바이든 대통령의 결정을 개인적인 모욕으로 여기고 있다며, 왕세자가 바이든 대통령을 용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