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 따라 급변하는 주류 정책..."새 정부선 보여주기식 정책 그만"

2022-03-10 06:00
맥주만 물가연동 종량세 개편..매년 가격 인상 혼선 우려
주류 칼로리 표기 의무화 추진했다 무산
업계 "유통구조 포함 근본적인 문제해결 위한 논의 필요"

서울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맥주 제품[사진=연합]

새정부 출범을 앞두고 주류 업계가 소리 없이 긴장하고 있다. 주류업은 정부와 정치권 입맛에 따라 관련 정책이 급변하는 대표적인 업종이다. 주세부터 시작해 주류 광고 규제와 칼로리 표기 의무화, 위탁생산, 온라인 판매 등 복잡하게 얽힌 문제들 속에서 시행령이 조금만 바뀌어도 업계엔 큰 파장을 미친다. 주류 업체들은 “소주·맥주는 서민들이 많은 관심을 갖는 제품이면서 이해관계가 복잡한 문제가 많다”며 “새정부에서는 표면적인 제도만 바꾸지 말고, 정말 문제가 생길 때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논의 방식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9일 주류 업계에 따르면 소주와 맥주 등 주류 가격이 평균 5~8%씩 인상되고 있다. 소주의 주원료인 주정과 맥주를 제조하는데 사용하는 보리 가격이 급등하면서 원가 압박이 심해졌고, 원부자재값과 물류비 등도 상승하면서 제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졌다. 서민들이 즐겨 마시는 주류 가격이 줄줄이 오르면서 2년 전부터 도입된 맥주 종량세도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정부는 2년 전부터 가격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종가세에서 무게와 알코올 도수에 따른 종량세로 맥주 과세체계를 개편했다. 종량세에는 물가 연동제가 적용돼 매년 물가 상승분 만큼 세금을 높여 받는다. 이에 따라 지난해 리터(ℓ)당 834.4원이던 세율은 오는 4월부터 20.8원(2.49%) 올라 리터당 855.2원이 적용된다. 수입 맥주 과세체계와의 형평성을 고려해 도입한 종량세지만, 물가 연동제가 함께 적용되면서 맥주는 매년 세율에 따라 제품 가격 인상이 불가피해졌다.
 
반면, 소주는 여전히 종가세가 적용된다. 알코올 도수가 높은 소주는 종량세를 도입할 경우 가격이 급격하게 높아져 서민 부담이 커진다는 이유에서다. 선진국의 경우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은 세율이 굉장히 높지만, 한국에선 ‘국민 술’인 소주의 상징성이 커 쉽사리 종량세를 도입하지 못하고 있다.
 
주류 업체 관계자는 “혼맥·집술 문화가 전파되고 있지만, 여전히 대부분 맥주는 도매 유통사를 통해 유흥채널에서 판매된다. 종량세에 물가가 연동돼 매년 가격이 인상되면 출고가격은 (2~3%씩) 소폭 올려도 유통 과정과 유흥채널에서는 가격을 크게 올려 최종 소비자의 부담이 커질 수도 있다”며 “소비자들은 종량세·종가세에 큰 관심이 없기 때문에 가격을 올리는 주류업체들만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종가세·종량세, 물가연동제가 맞냐 틀리냐를 떠나서 근본적으로 주세 체계와 유통구조를 포함한 체계적인 논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른 주류 업체 관계자도 “맥주 종량세가 도입되고 올해가 두 번째 변화이기 때문에 조금 더 지켜보긴 해야겠지만, 소비자들은 종량세와 종가세에 대해 자세히 알기 어렵다. 세금 인상에 따라 가격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기업들이 이익을 많이 보려고 가격을 매년 올린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부담이 있는 건 사실이다”고 전했다.
 
 
“수제맥주 활성화” 위탁생산 허용하면서 주류 광고는 규제 확대

맥주 종량세 도입으로 가장 큰 수혜를 본 당사자는 수제맥주 업체들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수제맥주 활성화는 정책 방향 중 하나였고, 그 결과 해외 맥주들과 경쟁할 수 있는 종량세 도입과 주류의 위탁생산(OEM)을 허용해줬다. 이를 통해 초기에 큰 설비투자를 하지 않더라도 다양한 맥주 맛을 개발하고, 일자리도 만들 거라는 기대가 컸다.
 
하지만 이런 규제 완화는 특정 상위 수제맥주 업체만 수혜를 봤다는 지적이 수제맥주 업계 내에서부터 나오고 있다. OEM 판매가 허용된 이후 편의점 등 유통채널 입맛에 맞춘 컬래버레이션 제품과 화제를 모으는 마케팅에만 치중하는 모습이 연출 됐기 때문이다.
 
수제맥주 관련 규제는 완화하면서 주류 광고에 대한 규제는 더 강화하는 상반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6월부터 IPTV와 DMB, 옥상 간판에서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주류 광고를 못하게 했다. 기존에는 주류 광고 금지 규제를 지상파 TV 채널 등에서 받았는데, 그 대상을 확대한 것이다. 여기에 버스와 지하철, 택시 승장장에서도 주류 광고를 할 수 없게 됐다.
 
주류 라벨 열량 표시 의무화 정책도 혼선을 빚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올해 초 소주, 맥주, 막걸리 등 주류 라벨에 열량 표시를 의무화하도록 하려 했지만, 식약처 등 관계 부처와의 이견으로 추진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열량 표시 의무화만 해도 수년 전부터 추진하려고 하다고 일반화가 어려워 폐기된 정책이다. 술은 뚜껑을 개봉하면 알코올 휘발분이 생겨서 다른 식품과 동일한 기준으로 칼로리를 표기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며 “주류업은 이해관계자가 많기 때문에 새로운 법안을 추진할 때 신중해야 한다. (새로운 정부는) 어떤 문제가 생길 때 표면적으로 제도만 만들지 말고 정치 논리로 혼선을 주는 정책을 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