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침공] 스태그플레이션 공포↑…미국 금융시장 곳곳 '이상신호'
2022-03-02 18:21
전쟁 공포의 유탄이 글로벌 경제 곳곳으로 떨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가 동시에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 공포가 시장을 배회하기 시작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안전자산 쏠림 현상이 이어지면서 미국 국채의 수익률은 1일(이하 현지시간)에도 하락세를 이어갔다.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불과 2주 전에 2% 수준까지 올랐던 미국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1.75%까지 떨어졌다. 반면 국제유가를 비롯한 곡물과 각종 원자재 가격은 더욱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경제전망에 대한 주목할 만한 변화"
블룸버그는 "적어도 미국에서는 경기침체 발생 여부에 확신이 없었던 이들에게 미묘하지만 주목할 만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력한 경제성장에 대한 희망은 남아있지만, 시장의 자신감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Bloomberg Intelligence)의 마이크 맥글론 역시 1일 스트리밍 프로그램인 '퀵테이크 스톡(QuickTake Stock)'에 출연해 "지금 시장은 글로벌 침체의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에너지·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상황은 더욱 악화할 것이라는 데 베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투자전문매체 배런스 역시 "시장에서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이 예상보다 약화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면서 "시장은 '스태그플레이션' 메시지를 분명하게 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책 금리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채권 시장에서도 같은 흐름이 읽혔다. 정책 금리의 향방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미국 2년물 국채 금리는 지난 한 주간 무려 32bp(베이시스포인트) 하락했다. 이는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속도가 느려질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렸다는 신호다. 위험자산 회피에 주식 시장도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1일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1.6% 하락했다. 에너지를 제외한 모든 업종이 적자로 마감했다. 은행과 기술기업들은 가장 많이 하락했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선 가운데, 시장에서는 이미 향후 유가가 배럴당 125달러까지 상승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JP모건체이스는 2분기 유가가 배럴당 평균 110달러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불과 며칠 사이 세계경제에 대한 전망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고 지적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들이 러시아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가하면서 인플레이션 우려는 급격하게 커졌기 때문이다. 지난 28일부터 원유, 천연가스를 비롯해 원자재 가격의 급등은 이어지고 있다.
유럽연합(EU)이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에서 러시아 은행 7개를 퇴출한다고 결정하면서, 주요 산유국인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가 상품 가격 압박을 가중시키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경제를 가로막고 있는 새로운 제재에 대항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내국인들을 대상으로 달러 등 외화 해외 반출을 금지했다.
BNY멜론자산운용 주식 및 자본시장 자문 책임자인 앨리샤 레빈은 블룸버그 TV와의 인터뷰에서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의 스태그플레이션 공포가 떠돌고 있다"면서 "이런 분위기는 인플레이션 경향에 더욱 영향을 미친다"고 진단했다.
"탄탄한 경제 배경 무시해서는 안돼"···1970년대 후반 반복 우려도
물론 미국 경제는 여전히 견고하다는 주장도 있다. 올해 미국의 실질 국내총생산은 소비지출 호조와 민간투자에 힘입어 3.7%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마켓필드 자산운용의 마이클 소울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몇 주간 제기된 이상한 주장 중 하나는 미국 경제가 붕괴 직전에 있다는 것이다"라면서 "스태그플레이션의 시기로 접어들고 있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소울 CEO는 애초에 연준이 긴축 정책을 결정할 만큼 미국의 경제성장은 매우 탄탄했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긍정론에도 불구하고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불안은 쉽게 가시지 않고 있다. 급등하는 물가는 성장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으며 연준이 계획했던 것보다 더 빨리 긴축해야 할 정도로 인플레이션을 촉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금융여건을 실질적으로 옥죄고 기업 불확실성을 높인다면 성장에 대한 타격은 더 커질 수 있다. 클록타워 그룹의 마르코 파픽 수석 전략가는 "원유 등 원자재 가격이 여전히 상승하고 있어 경기침체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파픽은 현재 상황을 석유수출기구(OPEC)의 원유 금수 조치를 초래한 1973년 욤키푸르 전쟁과 유사하다고 보고 있다. 당시 S&P500 지수는16%나 떨어졌고, 1년 후에도 여전히 40% 이상 하락했다고 파픽은 지적했다.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의 미국 성장률 예측 모델인 'GDP나우'는 올해 1분기 성장률을 0%를 간신히 웃도는 것으로 보고 있다. 마니쉬 데스판드 전략가들은 "현재 모든 주요 시장 계층에서 리스크가 정상보다 높다"고 지적했다. 금리 시장에서도 스태그플레이션 경고등은 깜빡이고 있다. 단기 기대인플레이션은 크게 치솟았지만, 성장에 대한 기대치를 나타내는 신호라고 할 수 있는 실질 금리는 다시 마이너스 영역으로 하락했다고 블룸버그는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