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환의 Next Korea] 尹이 지지하는 노동이사제 ··· 安이 왜 반대하나

2022-02-23 06:00


 

 

[김택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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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생각해 내린 결정이다. 공공기관은 국민의 것이다. 노동이사제는 노조가 그냥 이사를 하는 것이 아니고 노조 근로자들이 추천하는 것이다. 한수원에 노동이사제가 있었다면 월성원전이 경제성 평가 조작으로 쉽게 문을 닫지 않았을 것이다. 국민이 주인인 공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

이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지난 11일 20대 대통령선거 후보 2차 토론에서 안철수 후보가 “노동이사제를 철회할 생각 없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대선 TV토론에서 제기된 여러 이슈 중 가장 ‘핫(hot)'하고 차별화된 주제가 노동이사제다. 진보 성향의 여러 지인들은 필자에게 “윤석열 후보가 노동이사제를 지지하고, 안철수 후보가 반대하는 것이 의외”라고 평가한다. 안 후보는 독일에서 연수를 했음에도 반대하고, 윤 후보는 보수 관점에도 불구하고 노동이사제를 찬성하기 때문이다.
 
그럼 노동이사제가 무엇이고, 그 기원은 어디인가? 노동이사제의 출발은 1920년대 독일 ‘경제민주주의(Wirtschaftsdemokratie)' 개념에서 출발했다. 독일 사민당(SPD)이 경제민주화를 제시한 것이다. 회사의 투명 경영과 합리적 경영을 위해 노사가 동등한 권한을 갖는 제도다. 독일은 이를 법률로 규정했는데, ‘노사공동결정법(Mitbestimmungsrechte)'이다. 노사가 동수로 참여하는 경영위원회에서 경영과 인사를 논의하도록 의무화했다. 모든 기업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임직원 2000명이 넘는 기업에만 적용한다. 가족기업 혹은 중소기업엔 해당되는 않는다.

나치 시대를 거쳐 2차 세계대전 이후 노사공동결정제도가 처음 도입된 시기는 중도우파 정권인 콘라트 아데나워 정부가 집권했을 때다. 1951년 석탄·철강기업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이후 점진적으로 확대되면서 전 업종에 적용된 시기는 비전의 정치가인 빌리 브란트 총리 때부터다. 1969년 처음 중도우파에서 중도좌파로 정권교체에 성공한 브란트 총리는 취임 일성으로 ‘동방정책’과 ‘더 많은 민주주의’를 선언했다. 경제, 사회, 교육 분야에서 더 많은 민주주의가 실현돼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노동자의 경영 참여를 법률로 제정한 것이다. 법률의 핵심은 회사의 주요 사항을 노사가 공동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모든 직원이 회사의 정보권과 청문권을 가진다. 회사 경영에 대해 언제든지 직원이 자료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노동자의 대표 기관인 노동자협의회는 이들 권익과 관련된 경영상 주요 사안에 대해 ‘사전에 통보받을 권리’를 갖는다. 독일 경영계가 헌법소원을 냈으나 1976년 헌법 합치로 선고해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독일은 왜 이 같은 법률을 제정했을까? 중도우파 기독민주당(CDU) 시대 기업에서 경제민주화가 시작된 것은 기독교 정신에 기반한 회사공동체라는 철학에서 출발했다. 임직원들에게 애사심을 갖도록 주인 의식을 불어넣은 것이다. 우리 고사성어로 표현하면 ‘수처작주(隨處作主)', 즉 내가 서 있는 곳에 주인이 되라는 것이다. 회사원이 주인 의식을 갖게 되니 효율성과 경쟁력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지멘스 등 대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은 물론 세계 일등 중견기업 히든챔피언 수가 1350개를 넘을 정도로 독일에 글로벌 기업과 히든챔피언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비결 중 하나다.

노조 투쟁이 가장 적은 나라가 독일이다. 노사 간 합리적인 대화를 통해 회사를 운영하니 파업이나 화염병이 난무할 수 없다. 또 독일 개별 회사에는 노조가 없다. 독일 노조는 산업 영역별로 형성돼 활동하는 산별노조로 철강노조, 미디어노조 등이 있다. 작업장을 점거하거나 투쟁하는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독일 근로자 노동시간이 가장 짧고, 법정 휴가는 가장 긴 평균 26일부터 시작한다. 휴가와 여가를 통해 책을 읽거나 여행을 통해 창의성을 키우도록 권장한다. 노사공동결정제로 인해 노조 대표들은 투쟁이 아니라 현안과 트렌드에 대해 공부할 수밖에 없다. 경영자와 테이블에 앉아 협상하려면 대안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 국회와 같은 기능을 하는 독일 의회 의원 중 노조 대표 출신이 가장 많다.

독일 회사의 최고 조직은 ‘경영평의회’다. 여기에 노사가 동수로 참여한다. 의장은 회사 쪽에서 맡는다. 다만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될 때는 의장이 결정권을 갖는다. 회사 규모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일반적으로 경영평의회 참여자 수는 노사 간 6:6이다. 안철수 후보가 TV토론에서 “경영위원회에 노조 대표가 참여하지 않는다”고 한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독일이 실시하는 경제민주화를 선진적이고 효율적이라고 판단해 유럽 다른 국가들이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현재 OECD 38개국 중 21개 나라가 노사공동결정제를 도입해 운용하고 있다. 미국식 자본주의와 독일식 자본주의의 가장 큰 차이가 이 제도라고 볼 수 있다.

독일 노사공동결정제가 핵심인 경제민주화 개념이 한국에서 변형되었다. 독일 뮌스터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김종인 박사가 잘 보여준다. 그는 저서 <영원한 권력은 없다>에서 1987년 헌법 개정에서 자신이 “헌법 119조 2항의 경제민주화 조항을 넣었다”고 주장했다. 이는 질서 있는 경쟁을 강조하는 독일 ‘사회적 시장경제’의 일부에 해당된다. 그는 또 “독일의 노사공동결정제는 헌법 사항이 될 수도 없고 생각도 안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이해하는 경제민주화와 독일식 경제민주화의 차이를 잘 보여준다. 필자가 집필한 <넥스트 이코노미>(메디치, 2013년) 책에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독일 경제민주화의 요체인 노사공동결정제가 어떻게 한국에서 노동이사제가 되었는가? 2016년 2월 서울시(박원순 전 시장)가 ‘경제민주화 도시 서울’을 선언하고 ‘경제민주화 기본조례’를 제정했다. 이어 경제민주화 정책의 중추 역할을 담당할 '경제민주화위원회'를 구성했고, 필자도 위원으로 참여했다. 서울시 경제민주화 정책으로 크게 3대 분야, 즉 상생, 공정, 노동과 16개 실천 과제를 정했다. 골목상권과 소상공인 자생력 강화, 불공정 하도급 관행 근절, 그리고 생활임금제와 노동이사제 등이다. 독일식 노사공동결정제가 서울시 산하 공기업에만 적용되는 ‘노동이사제’로 축소된 것이다. 다행히 서울을 시발로 광주 등 전국 지방자치단체로 확산되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나 더불어민주당 차원에서 노동이사제와 경제민주화 추진 의지는 약했다.

독일 DGB(총노조)에서 연수한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정책연구원장은 “독일 경제민주화는 노조의 경영 참여로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면서 “우리도 경제민주화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향후 정치권, 노조, 경영계, 학계가 공동으로 참여해 한국형 경제민주화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어쩌면 윤석열 후보가 주장한 월성원전 폐쇄나 세월호 참사에 책임 있는 청해진 해운에 경제민주화가 정착되었다면 그 같은 결과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다. 대선을 통해 노동이사제를 넘어 독일처럼 노사가 파트너로 서로 협력하고 행복한 직장을 만들어가는 수준의 경제민주화로 업그레이드되길 기원해본다.

 

김택환 교수 주요 이력

▷독일 본(Bonn)대 언론학박사  ▷미국 조지타운대 방문학자  ▷중앙일보 기자/국회 자문교수 역임  ▷광주 세계웹콘텐츠페스티발 조직위원장  ▷현 경기대 산학협력단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