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기인법 20년] ② 학생부터 리더까지…여성과기인 육성·지원 패러다임 전환하라
2022-02-21 00:25
정부는 지난 2002년 제정된 '여성과학기술인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20년간 여성 과학기술인 육성·지원 정책을 추진해 왔다. 남성에 비해 이공계 전공 선택과 진학, 취업과 경력 지속 비율이 떨어지는 여성 과학기술 인재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국가적인 인재 부족 문제에 대응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20일 정부부처·학계·산업계에 따르면, 최근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과 디지털 대전환 시대가 도래하면서 과학기술·정보통신기술 인재의 부족 문제가 더욱 심화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장차 이공계 인재의 진출·성장과 선순환을 촉진하고 산업 전반의 과학기술 분야 인력난을 완화하기 위해, 지난 20년간 시행된 여성 과학기술인 지원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이 요구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여성 과학기술인 육성·지원 전담기관인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WISET)' 관계자는 "여성과기인법 제정 당시의 주 정책 목표가 여성 인재를 이공계와 과학기술 분야에 많이 유입되게 하는 것이었다면, 앞으로는 일·생활 균형, 신기술·신산업 분야 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치 해소를 고려한 인재양성과 경력전환 등이 중시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성 과학기술인 생애주기 중 시작 단계인 대학전공 선택 단계에서 공학분야 인재 부족을 감안한 전략적 인재유입 정책이 필요하다. 국내 공과대학의 여성 학사 입학률은 최근 4년간 25% 수준에 머문다. 학사과정 진학 비율과 상위(석·박사)과정 진학 비율의 격차는 지난 15년간 줄지 않고 있다.
WISET 관계자는 "공학전공 여학생 수를 늘리려면 인재 유입정책의 대상 전환이 필요하고, 질적인 개선을 위해서는 미래 전문 기술인력 부족이 예상되는 신산업과 신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여학생의 석·박사 과정 진학을 촉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전공별 취업률 격차…지원 세분화
대학 졸업 후 사회에 진출하는 단계에서 취업률이 낮은 분야의 전공자들에게 취업을 지원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여성 과학기술인의 신규 채용은 재직, 보직 비율 대비 빠르게 증가했지만, 성별·전공별·학위별 취업률 격차는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학사 기준 자연계열 전공 여학생 취업률(61.3%)은 인문·사회계열 여학생과 비슷한 수준이고, 남녀간 격차(남학생이 6.2%포인트 높음)도 가장 크다. 또, 공학계열 전공 여학생 취업률(66.9%)은 자연계열 전공 남학생 취업률과 비슷하지만, 전공별 남녀간 편차가 크게 나타난다.
WISET에 따르면 학사 졸업 직후 남녀 간 취업률 격차가 큰 화학공학·신소재공학·기계공학 등에 대한 지원정책 검토가 필요하다. 양질의 과학기술 분야 일자리에 진입하는 여성의 비율은 대체로 증가해 왔지만, 지난 2019년 이후 신규 채용 비율의 상승세가 꺾이고 여성 졸업 비율과 취업 비율의 격차가 유지되는 등, 여성 신규 채용비율은 한계점에 접근하고 있다.
따라서 우선 양성 규모가 크지만 취업률은 상대적으로 낮은 자연계열 여성 학사 졸업자 대상으로 기초과학을 기반으로 진출할 수 있는 융합산업영역 진로를 제시하고 훈련 기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화공·신소재·기공 등 인력양성 규모가 크면서 남녀 취업률 격차가 큰 공학계열 여성 대상 취업 지원정책이 추진돼야 한다.
◆ '경력 누수' 막고 '중견급 여성인재' 늘려야
이미 산업·연구 현장에 진출한 여성 과학기술인이 경력을 지속하며 성장할 수 있는 기반과, 출산·육아 등으로 경력이 단절된 인재가 재진입할 수 있는 지원 정책이 함께 요구된다. 특히 육아기 여성의 경력이탈 방지를 위해 일·가정 양립을 위한 유연근무제의 정착, 직장 눈치를 보지 않고 출산·육아휴직 제도를 사용할 수 있는 조직문화 조성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
WISET는 또 정책적으로 산업별 여성 리더 그룹과의 네트워킹 활동과 의사결정직 진출을 위한 리더 코칭을 제공하고, 뛰어난 여성 과학기술인재 발굴과 롤모델 확산 등 긍정적 인식 확대를 촉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장기적으로 과학기술 분야에서 중견급 여성 인재 풀(Pool) 구성과 확대, 여성 과소대표성 문제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
WISET 관계자는 "정부는 정책 초기에는 여성 과학기술인의 경력복귀 지원에 집중했으나, 점차 '경력 파이프라인'의 누수를 줄이고 중견급 여성 과학기술인으로 지속 성장할 수 있는 인프라를 마련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경력복귀 사업은 중급 이상의 기술역량을 갖춘 인력 재육성에 집중해 단순기술자로 대체할 수 없는 일자리 영역의 진입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