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탄소중립] '기업 들볶기'만으론 한계···R&D 적극 지원해야

2022-02-11 05:00
영·독 등 혁신기술 조직 구축·지원
기존 부처체계 탈피 연구개발 시급

기업의 탄소중립에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많다. 지금처럼 무조건 해내라는 강요만으로는 탄소중립 달성이 어렵다는 시각에서다. 기업의 연구개발(R&D)과 투자를 적극 지원하는 해외 선진국의 대응 모델을 한국 정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 나온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탄소중립 정책 및 연구개발이 국내 기업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시작 단계에서부터 현재의 기술력으로 불가능한 목표를 제시하고 있어 획기적인 연구개발로 돌파구를 만들지 못하면 방법이 없는 탓이다.

실제 우리나라는 도전적으로 2050년 탄소중립 전략을 수립한 상태다. 전략에 따르면 2050년 기준 전력 사용의 8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335GW의 발전 설비가 필요할 것으로 관측된다. 예전부터 탄소 감축을 시작해 이미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높은 해외 선진국과 큰 차이가 나는 상황임에도 도전적 목표를 설정한 것이다.
 

[사진=국제에너지기구]

그러나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우리나라가 실제 활용 가능한 재생에너지 잠재량은 207GW에 불과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바람의 세기가 고르지 못하고 국토가 좁은 우리나라 국토를 전부 태양광 패널과 풍력발전기로 채우더라도 한계가 분명하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현재 우리나라가 선진국과 신재생에너지 기술 격차가 크지 않다는 점이다. 선진국에서 활용되는 기술을 모두 도입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재생 에너지 잠재량을 획기적으로 늘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산업권에서는 이미 국내 기업들이 고도화된 시설과 장비를 도입한 상황이라 현재 기술로 탄소를 추가 감축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이에 기업의 획기적인 연구개발의 중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의 탄소중립 관련 예산은 올해 1조1924억원 수준으로 지난해 8343억원 대비 42.92% 늘었다. 그러나 아직 선진국의 대응에 비하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선진국들이 재생에너지 도입을 넘어 산업부문의 별도 탈탄소화 대응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영국은 주요국 중 최초로 '산업 탈탄소화 전략'을 수립하고 산업단지 내 이산화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기술 도입, 저탄소 연료전환, 에너지효율성 향상을 추진하는 동시에 혁신기술 개발 및 실증사업 지원에 나서고 있다. 미국도 산업공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 대응을 위해 CCUS와 대체 공정 개발을 법적 의무로 명시해 정부가 적극 나서고 있다.

연구·개발 부문에서도 선진국이 한발 앞서 있다는 평가다. 기존 부처 체계에 얽매이지 않고 임무지향적으로 혁신 기술 개발을 전담할 새로운 조직을 대거 설립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실제 독일은 지난 2019년 향후 10년 동안 한시조직으로 연방도약 혁신기구(SPRIN-D)를 신설하고 약 10억 유로(1조3666억원)의 예산을 투자한 상태다. 영국도 지난해 첨단연구발명기구(ARIA)를 신설해 탄소중립 관련 연구개발을 추진하겠다는 포부다.

한웅용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연구위원은 "획기적인 연구개발이 없이 탄소중립이 어려운 상황이라 정부가 적극적으로 산업권의 탈탄소화를 지원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을 우선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며 "향후 연구개발을 장기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별도 공기업형 공공기관이나 부처 산하 기구를 설립한 선진국 사례를 참고·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