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투' 옛말, 이제는 정기예금"...금리 상승에 눈 돌린 투자자들

2022-02-09 08:00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유래없는 저금리 시대가 막을 내리고 금리 상승기가 본격화하면서 대출이나 위험자산 투자 대신 정기예금에 눈을 돌리는 투자자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특히 연내 기준금리 추가 인상될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리면서 투자자들의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한층 심화하고 있는 추세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총 수신잔액은 지난달 말 기준 1788조5520억원으로 전달 대비(1752조3592억원) 34조 이상 증가했다. 이는 은행들이 줄줄이 수신금리를 올리면서 자금 유입이 가속화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같은 기간 5대 시중은행의 정기예금은 654조9359억원에서 666조7769억원으로 11조8410억원 늘었다. 반면 수시 입출금식 예금(MMDA : Money Market Deposit Accounts)을 포함한 요구불예금 잔액은 지난달 말 700조3291억원으로 지난해 12월 말(711조8031억원)보다 11조4740억원 줄었다. 요구불예금이란 예금주가 원할 때 언제든지 은행에서 찾을 수 있는 초단기 예금을 말한다. 수시 입출금이 가능해 고객이 원할 때 자유롭게 돈을 넣고 뺄 수 있어 투자 대기성 자금으로 분류된다.

이러한 가운데 국내 주요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감소세로 돌아섰다.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 1월말 기준 707조6895억원으로 전월(709조529억원) 대비 1조3634억원 감소했다. 가계대출 잔액이 감소세를 보인 것은 지난해 5월(3조547억원 감소) 이후 8개월 만이다. 특히 이른바 '빚투(빚을 내 투자)'를 이끈 신용대출의 감소가 대출 감소를 이끌었다. 1월말 기준 잔액은 137조421억원으로 전달 대비 2조5151억원 줄어들었다. 감소폭은 전달 줄어든 잔액 규모인 1조5766억원보다 늘었다.


이같은 금융시장의 움직임은 주식시장과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시장이 부진한 흐름을 보이면서 투자금이 갈 곳을 잃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금융 소비자들이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 대신 안전한 은행 예금에 돈을 예치하고 나선 것이다. 국내 주식시장의 경우 코스피가 2700선으로 하락하는 등 작년 상반기만큼의 상승세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증시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지난 3일 21조3천384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1조7502억원 감소했다. 주식 대차거래 잔고도 지난달 12일 70조원 수준에서 지난 3일 68조원으로 2조원 가량 줄었다.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시세 역시 연말연초 하락하면서 국내 코인거래소에 예치된 돈도 대폭 줄었다. 이달 초 금융위원회가 국민의힘 조명희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4대 가상화폐 거래소인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의 예치금은 지난해 말 기준 7조6310억원으로 집계됐다. 특정금융거래정보법(특금법)에 따른 가상자산사업자 신고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지난해 9월 24일(9조2000억원)보다 1조5690억원(17.1%) 줄어든 것이다.

또한 기준금리가 오르면서 예금상품의 매력 역시 과거 대비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최근 국민은행의 ‘KB더블모아 예금’ 금리는 1년 기준 최고 연 2.05%로 상향 조정됐고, 신한은행의 시니어 고객 대상 5년 만기 ‘미래설계크레바스 연금예금’금리는 연 2.15%가 적용된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은행이 올해 기준금리를 두 차례 더 인상해 연내 1.75%까지 끌어올릴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지난달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1.25%로 0.25%포인트 인상한 바 있다. 작년 11월에 이은 이례적 두 차례 연속 인상으로 기준금리는 22개월 만에 코로나19 직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높아진 물가 압력을 고려해 올해 기준금리 전망을 1.75%로 상향한다"며 "인상 시기는 물가 부담이 높은 올해 2분기(5월), 3분기(8월)로 수정한다"고 밝혔다. 윤 연구원은 "지난해 연간 전망에서 투자자들에게 올해 1분기까지 물가 부담을 덜고 정책 기대를 반영한 수준에서 유연하게 대응할 것을 권고했으나, 예상보다 물가 부담이 심화하고 주요국 정책 부담이 가세하면서 금리 수준이 조정돼 투자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화투자증권도 올해 기준금리 인상 시점과 횟수, 전망치를 기존 '11월 한 차례 인상, 연 1.50%'에서 '7월과 11월 두 차례 인상, 연 1.75%'로 변경했다. 김성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이같이 전망하면서 지난 3일 공개된 금통위 회의록이 기자회견이나 통화정책방향문보다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이라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JP모건은 역시 지난 4일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금통위가 이르면 이달 기준금리 추가 인상에 나설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아울러 한은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금리 인상에 나서 올해 기준금리를 총 두차례 올릴 수 있다고 관측했다. 박석길 JP모건 금융시장운용부 본부장은 "다음 (기준금리) 인상 시기는 4월로 보고 있지만 이주열 총재가 퇴임하기 이전인 2월로 앞당겨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JP모건은 한은이 기준금리를 1%에서 1.25%로 인상한 지난달 14일 이후 한은의 추가 금리 인상 시점을 올 3분기로 내다봤다. 하지만 지난 3일 공개된 금통위 의사록을 근거로 2월 금리 인상 전망에 무게를 싣는 분위기다.

박 본부장은 이번 금통위 의사록과 관련해 "인플레이션 기대치 상승 추세에 선제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표현이 나왔다"며 "이번 회의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예상보다 더 매파적이었다"고 분석했다. JP모건의 전망대로 한은이 올 2월과 3분기에 기준금리 추가 인상에 나서면 올해 말 기준금리는 1.75%에 달한다. 아울러 JP모건은 내년 1분기와 2분기에도 한은이 금리를 인상해 내년 말 기준금리는 2.25%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골드만삭스도 이날 '한국의 통화정책 로드맵’에 대한 보고서를 내고 "금리 곡선이 가팔라질 것"이라며 한은이 올해 말까지 기준금리를 두차례 추가 인상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은이 올 3분기 한차례 금리 인상에 나설 것이라는 기존 전망을 수정한 것이다. 골드만삭스는 2023년에도 미국과 금리 격차를 감안해 한은이 기준금리를 2.5%까지 끌어올릴 것으로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