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완의 월드비전] 석유에 대한 탐욕이 낳은 美· 사우디 밀월관계 식어간다
2022-01-16 14:25
미국의 탈(脫)아랍에 기로에 선 중동 산유국
알 사우드 가문의 수장인 압둘 아지즈(Abdul-Aziz) 이븐 사우드(Ibn Saud, 1880~1953)는 키가 2m에 가까운 거구의 전설적 국왕이다. 그가 아라비아반도 주변 여러 부족들을 정복해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을 수립한 것은 1932년이다. 건국 이후 온통 사막뿐인 나라에서 유목민 부족들을 하나로 결집시켜 나가던 그에게 알라신은 엄청난 축복(?)을 내렸다. 동부 지역에서 터진 초대형 유전이었다. 미국 석유회사 소칼(SOCAL·Standard Oil of California)이 채굴을 시작한 지 3년이 되던 1938년 3월 사우디 담만(Dammam) 7광구에서 처음으로 시커먼 기름이 분출된다. 소칼은 훗날 오일 메이저로 부상했다. 지금의 셰브런(Chevron)이다. 사우디는 미국 석유회사에서 받은 오일머니로 아랍 최대의 부국이자 지역의 맹주로 도약한다.
20세기 초 현대의 중동을 탄생시킨 서구의 열강들 중에서 영국은 유전 개발의 선구자였다. 1908년 이란(페르시아만)에서 발견된 석유는 1차 대전 때 대영제국의 승전에 큰 역할을 했다. 석탄을 사용하던 독일의 대양함대는 활동 반경에서 연료를 석유로 바꾼 영국 함대에 크게 밀렸다. 당시 미국은 압도적인 세계 최대 원유 생산국으로 1차 대전 때 연합국이 필요로 하는 석유 대부분을 공급하기도 했다. 미국은 해외로 고개를 돌렸다. 자국 내 자동차 공급이 폭발적으로 증가해 석유 소비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또 신규 유전 발견도 급격히 줄어들면서 석유 고갈 문제를 고민하던 미국이 선택한 해법은 영국처럼 미국도 중동에 진출하여 유전을 직접 개발하는 것이었다. 결국 영국보다 수십 년 늦게 중동에 진출한 미국은 사우디에서 찾아낸 세계 최대 규모의 유정(油井)을 발판으로 20세기 후반 석유자원 확보 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참전을 계기로 미국은 석유가 현대 산업의 동력일 뿐 아니라 전시에 없어서는 안 되는 최고의 필수 전략물자임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 사우디에서 발견된 석유는 국왕뿐 아니라 미국의 석유 메이저들을 흥분시켰다. 매장량 자체가 상상을 초월했고 채굴 비용까지 매우 낮은 최고의 환경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2차 대전 이후 사우디는 미국의 최신식 채굴 장비를 도입해 원유의 대량생산에 돌입한다. 1930년대 극심한 대공황을 극복해낸 미국은 전후 패권국으로 세계 질서를 주도한다.
1945년 '퀸시'호에서 출발한 미-사우디 동맹 관계
석유의 무기화
1960년 적정한 유가 수준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주요 산유국들은 OPEC(석유수출국기구)을 결성했다. 미국은 사우디 왕조뿐 아니라 이란의 팔레비 국왕(1925~1979)도 친미 성향으로 만들어 중동에서 안정적인 석유의 공급을 확보했다. 그러나 1973년 4차 중동전쟁 기간 중동 산유국은 이스라엘을 고립시키기 위해 석유자원을 무기화한다. 이때 유가는 4개월간 4배 가까이 상승했다. 소위 1차 오일쇼크다. 1979년 이란에서 이슬람 혁명으로 팔레비 국왕이 하야하는 과정에서 석유값은 배럴당 30달러 시대의 개막을 고했다. 소위 2차 오일쇼크다. 미국의 석유기업들은 1930년대 사우디에서 100% 자신들의 자본으로 아람코라는 석유회사를 만들었다. 사우디는 1차 오일쇼크와 2차 오일쇼크 당시 산유국들의 감산 조치를 주도하면서 원유시장과 세계 경제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갔다. 동시에 세계 최대 석유회사 아람코에 대한 지분도 점차 늘려간다. 결국 사우디 왕실은 1980년 아람코 지분 100%를 인수했다. 지금부터 8~9년 전에는 사우디는 깜짝 무한 증산에 들어가며 한때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던 유가를 반 토막 내기도 했다. 당시 기술 혁신과 생산성 향상을 무기로 자신들을 위협하던 미국의 셰일업체를 고사시키기 위한 시도였지만 사우디는 유가 폭락으로 재정만 부실해지고 결국 실패로 끝났다. 세계 원유시장의 '게임체인저'로 등장한 미국 셰일업체의 위세에 사우디는 석유가 자신들의 부(富)와 번영을 지켜주는 영원한 무기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인식을 굳히게 된다.
왕국이 수립된 지 90년이 가까운 지금 사우디는 지구상에서 거의 유일하게 전근대적인 절대왕정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중동의 아랍국가들 중에서도 가장 이슬람 색채가 강한 보수적인 국가다. 현 국왕인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86)는 초대 국왕의 25번째 아들로 2015년 1월 이복형(압둘라 빈, 이븐 사우드의 12남)이 폐렴으로 세상을 떠난 후 즉위했다. 그는 차기 왕위 계승자인 이븐 사우드의 35번째 아들(무크린)을 왕세제 자리에서 해임하고 대신 내무장관인 조카 빈 나예프를 왕세자로 책봉했다. 건국 이후 그동안 '형제승계'로 내려오던 왕위가 부자간 왕위 승계로 바뀐 것이다. 그러나 살만 국왕의 아들인 무함마드 빈 살만(Mohammed bin Salman)은 30세의 젊은 나이에 국방장관과 국영석유회사 아람코 회장직을 통해 군과 경제를 장악하며 사우디의 최고 실세로 부상했다. 결국 부왕세자이던 무함마드 빈 살만은 2017년 6월 사촌형 빈 나예프를 밀어내고 왕위계승 서열 1위인 왕세자에 올랐다. 서방에서 'Mr Everything' 또는 'M.B.S'로 불리는 무함마드 왕세자는 현재 36세다. 초강경 반(反) 부패운동을 통해 보수적인 와하비파 성직자와 왕족 등 위협이 될 만한 내부 반대 세력을 모두 숙청하고 모든 권력을 장악한 그는 고령인 데다 실권이 약해진 아버지한테서 국왕 자리를 공식적으로 승계받는 것은 시간문제다.
미국의 셰일가스와 탈(脫) 중동 움직임
미국이 셰일가스 혁명으로 에너지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시작하고 중동 산유국의 위기가 고조되자 무함마드 왕세자는 석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제를 다변화하고 있다. 또 여성 인권 개선 등 이슬람 색채가 강한 보수적 국가에서 사회적 개혁을 선도하고 있다. 그는 2016년 석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사우디 경제구조를 타파하기 위한 '비전 2030'을 출범시켰다. 이 프로젝트는 사우디를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대륙을 잇는 국제무역의 허브이자 첨단 기술과 민간 투자의 중심지로 거듭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세계 최대 스마트 도시인 네옴시티 건설과 홍해 관광지 개발 그리고 키디아 복합 엔터테인먼트 조성 등에 수조 달러의 자금을 투입할 예정이다. 이러한 야심 찬 계획은 저유가의 장기화와 석유 고갈 사태 등 국가적 리스크에 대비함과 동시에 왕세자의 안정된 집권을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그의 '비전 2030'은 아직까지 큰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는 사우디에 대한 서방세계의 부정적인 시각이다. 무함마드 왕세자가 2018년 반체제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사건의 배후로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그에 대한 서방세계의 분노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다. 특히 민주주의와 인권을 중시하는 조 바이든 미국 정부가 들어서면서 석유 최대 소비국인 미국과 최대 수출국인 사우디의 갈등은 커지고 있다.
트럼프와 달리 바이든 대통령은 집권 이후 사우디 국왕 대신 무함마드 왕세자와는 1대1로 상대하지 않고 있다. 대선 당시 바이든은 "사우디는 부랑 국가(pariah), 왕세자는 결함투성이 인물"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바이든에게 관심(?)을 받고 싶은 무함마드 왕세자는 지난해 말 미국에 제대로 반격을 가했다. 유가 급등으로 인플레이션이 심화되면서 바이든의 지지율이 폭락할 때 사우디가 이끄는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미국의 증산 요구를 묵살했다. 급기야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 일본, 중국 등과 연대해 전략 비축유 방출을 발표해야만 했다. 이를 두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바이든 행정부로부터 독재자로 낙인 찍힌 왕세자가 석유를 무기로 반격에 나섰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은 70~80년 동안 핵심 동맹이었던 미국과 사우디 관계에서 좀처럼 볼 수 없던 장면이다. 바이든과 무함마드 왕세자의 '기싸움'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국제 유가의 고공행진과 인플레이션이 꺾이지 않으면 왕세자가 간절하게 바라고 있는 바이든과의 만남도 성사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과의 패권다툼에 집중을 하기 위해 '탈(脫)중동' 움직임을 서두르고 있는 가운데 1945년 루스벨트 대통령과 이븐 사우드 국왕이 그렸던 양국 관계의 밑그림이 크게 퇴색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양국의 동맹 관계가 세계 평화와 민주적 공동 번영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고 석유에 대한 탐욕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이수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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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중국은 美 발 빼는 중동으로
새해 벽두부터 한국과 중국이 4차 산업혁명기 스마트시티 등 탈(脫)석유의 새로운 먹거리를 찾고 있는 중동에 관심을 쏟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중동 3개국 순방을 위해 출국했다. 문 대통령은 17일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한·UAE 수소협력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 참석하고 기후변화, 국방·방산, 보건의료 등 분야에 대해 협력 강화를 논의할 계획이다. 18일에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만나며 '한·사우디 스마트혁신 포럼'에도 참석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지난달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를 찾아 주요 인사들과 그동안 단절된 네트워크를 복원하고 중동에서 새로운 시장 개척에 나섰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 10∼14일 중국을 방문한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오만·바레인 등 걸프협력회의(GCC) 4개 회원국과 터키, 이란 등 총 6개국 외교장관과 장쑤(江蘇)성 우시(無錫)에서 잇달아 만났다. 중동 6개국 외교장관이 새해 벽두에 중국을 방문한 것은 이례적이다. 지난해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계기로 미국이 중동 지역에서 발을 빼기 시작하자 중국은 중동 권위주의 국가들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려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