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돋보기] '무조건 5만원' 대전 한 약국의 기행…처음 아니었다

2022-01-05 16:01
천안과 세종에서도 약국에 음란 문구·성인용품 전시해 행정처분 받아…
약사 취업사이트엔 '똘끼 약사' 구인 글 올려 "월척 잡자"는 글 남기기도
납품가보다 높은 가격에 판매하는 건 위법 아냐…판매 방식 제재 어려워

해당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없음.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대전의 한 약국이 1000원짜리 피로해소제를 비롯해 마스크와 반창고 등 전 품목을 5만원에 판매한 뒤 환불조차 거부해 물의를 빚고 있다. 지난달 문을 연 이 약국이 폭리를 취하고 있단 민원만 14건. 하지만 이런 판매 방식이 위법은 아니기 때문에 이를 제지할 뾰족한 수단은 없다.

5일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따르면 대전 유성구의 한 약국이 1000~5000원짜리 의약품을 10배 이상 부풀려 판매한 뒤 환불조차 거부하고 있단 글이 공유되고 있다. 앞서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엔 해당 약국에서 숙취해소제를 한 병당 5만원에 구매했단 이용자가 나타났다. 이용자 A씨는 "지난 1일 이 약국에서 숙취해소제 세 병을 샀을 때 약사가 여러 번 계산하길래 휴대폰을 확인하니 한 병당 5만원이 찍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금액이 이상하다고 하자 약사는 '5만원에 판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머지 한 병은 결제하지 못하게 막았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

실제로 A씨가 올린 사진을 보면 해당 약국이 판매 중인 진통제와 반창고, 종합감기약, 파스, 마스크 등엔 모두 5만원이라고 적힌 가격표가 붙어있다. 일반적으로 약국에서 판매 중인 KF94 마스크가 1500원인 점을 고려하면 무려 30배 이상을 부풀려 판매하는 것이다. 해당 약사에게 피해를 본 건 A씨뿐만이 아니다. 대전시약사회에 민원을 제기한 한 소비자는 "마스크 한 장을 사려고 약사에게 카드를 건넸더니 5만원이 결제됐단 문자메시지를 보고 황당했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해당 약사는 환불 요청을 받으면 카드 결제기 전원을 뽑거나 소송을 제기하라며 환불 요청을 거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약국의 기이한 행동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이 약국은 충남 천안과 세종에서도 기행을 펼치다 소문이 나면 다른 지역에 약국을 새롭게 여는 식으로 운영해오고 있다. 지난 2019년 천안에선 '女아동·청소년 환영', '성인용품 판매' 등의 문구를 유리 창문에 버젓이 써 붙이는가 하면, 성인용품을 전시한 채로 영업하기도 했다.
 

[사진=약사·제약 취업사이트 화면 갈무리]

또 해당 약국은 약사·제약 취업사이트에 '똘끼 있는 약사님을 모집한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또라이 근무 약사님 한 명을 모집한다. 돈을 엄청 많이 벌게 해주겠다. 실제로 있는 약국이며 또라이짓해서 부자 만들어 드린다. 월척 잡아 부자되자"며 자신의 연락처를 남겼다. 약사는 '합법적 부자 약사 만들기 프로젝트'라는 일종의 작전명까지 내걸며 틈새시장을 공략하잔 말도 덧붙였다.

문제가 된 약국은 국내 한 대기업을 망신 주기 위해 이런 기행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해당 약국 주인에 따르면 그는 2011년 국내 한 대기업 공장에 독점 약국을 운영해왔다. 하지만 그는 "대기업 관계자 지인이 자신의 약국 근처에 새롭게 약국을 개업하면서 자신은 쫓겨나다시피 나와야만 했다. 대기업 관계자는 지인의 약국을 이용하라며 게시판에 글을 써 붙이기까지 했다"며 영업 방해를 당했단 주장을 펼쳤다. 그 뒤로 약국 주인은 해당 대기업을 연상시키는 이니셜과 함께 약국 유리창에 음란 문구를 걸어놓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된 기행이 최근 폭리 행위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해당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없음.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문제는 해당 약국의 판매 방식에 제동을 걸 수 없단 점이다. 약사법에 따르면 의약품을 납품가보다 낮은 가격에 판매하는 것은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높은 가격에 판매하는 것은 위법이 아니다. 해당 약사는 이점을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약국 주인은 "약사법에선 의약품을 싸게 팔면 손님을 끌어모으는 식으로 마진을 남겨 금지하고 있다. 반대로 비싸게 판매하는 것은 문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약국이 일반 약의 가격을 자율적으로 결정해 판매할 수 있는 '판매자가격표시제'를 지킨 것이기 때문에 불법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에 대전시약사회는 해당 약국 주인과 관련해 윤리위원회를 열어 조치하겠단 입장이다. 지역을 옮겨가면서 소비자 피해를 키우는 데다 약사 이미지마저 훼손시키고 있단 이유에서다. 다만 약국 주인의 기행을 멈출 만한 처분이 내려질진 미지수다. 과거 약국 주인이 천안에서 문제를 일으켰을 당시, 대한약사회 윤리위원회가 보건복지부(복지부)에 '자격 정지' 처분을 요청했으나 '자격정지 15일'에 그쳤다.

한편, 대한약사회는 다음 주 내로 윤리위원회를 열고 징계 처분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그래픽=아주경제 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