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금융'에 설 곳 잃은 지방은행...생존 해법은
인터넷은행과 빅테크기업의 등장 등 금융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지방은행들이 생존의 위기를 맞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금융권에도 급속도로 디지털 혁신이 적용되면서 지방은행의 존재감이 과거 대비 약화되고 있는 것. 이에 따라 지방은행에도 시대적 흐름에 걸맞은 변화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빅테크나 핀테크와의 협력 등을 통한 경쟁력 강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 금융연구원 "지방은행, 빅테크·핀테크와 협업해 경쟁력 키워야"···해법 제시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금융연구원 이병윤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지방은행의 경영환경과 향후 과제' 보고서를 통해 "지방은행이 4차 산업혁명 디지털금융의 확산 핀테크 등 신 경쟁자 출몰 등으로 어려운 경영환경에 놓여있다"며 "(그럼에도) 지방은행은 지역민들과 지역 중소기업에 수준 높은 금융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역할이 있다"고 밝혔다.
국내 지방은행은 지난 1960년대 말 '1도1행' 원칙에 따라 설립됐지만, 외환위기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구·부산·광주·제주·전북·경남은행 등 6개 은행만 존속하게 됐다. 지방은행은 시중은행에 비해 규모가 매우 작은데 지난 6월 말 현재 가장 규모가 큰 지방은행인 부산은행의 총자산은 81조5000억원으로 규모가 가장 큰 시중은행인 KB국민은행의 6분의1에도 미치지 못한다.
특히 수익성지표와 총자산성장률은 지난 2017년부터 시중은행보다 악화하기 시작했다. 지방은행 자기자본이익률(ROE)은 2016년 7.24%에서 2017~2020년 평균 6.3%로 떨어졌다. 지방은행의 경영성과 하락 원인으로는 지역경제의 침체,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금융의 확산, 핀테크·빅테크 등의 공습 등이 주 요인으로 꼽힌다.
이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지방은행은 지역 밀착 경영에 따른 특화 상품 개발 등을 기반으로 수익성과 건전성에서 시중은행들보다 평균적으로 더 나은 성과를 보여왔다"면서 "그러나 최근 6~7년 전부터 시중은행보다 성과가 나빠졌다"고 말했다.
더욱이 4차 산업혁명 열풍을 타고 은행들이 큰 비용을 들여 디지털 전환을 시도하는 동안 규모가 작은 지방은행들은 디지털 전환에 어려움을 겪었고, 핀테크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기업들이 금융산업에 진출하면서 지방은행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여기에 지역경제가 수도권보다 침체하면서 4차 산업혁명 관련 첨단 산업이 수도권으로 집중된 현상도 지방은행의 부담을 가중시켰다. 이 연구위원은 이처럼 어려운 지방은행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디지털경쟁력' 확보를 위해 핀테크·빅테크와의 협력 강화, 이른바 '허브앤스포크(hub and spoke)' 전략을 통해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허브앤스포크'란 비대면 서비스 활성화 움직임에도 영업점을 무작정 축소하기보다는 모든 은행 업무를 수행하는 '중심(hub) 점포'와 입출금 등 간단한 업무만 보는 '주변(spoke) 점포'로 나누는 것을 말한다.
이 연구위원은 "지방은행은 지역민과 지역 중소기업들에게 수준 높은 은행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라며 "전국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시중은행과 인터넷전문은행은 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방은행은 핀테크·빅테크와의 제휴 강화를 통해 부족한 디지털 경쟁력을 보완하고 영업·마케팅에서 도움받을 수 있다"면서 "두 개의 은행 자회사를 가진 지방은행 지주회사들의 경우 정보기술(IT) 시스템을 공동으로 이용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또한 지방은행의 경영 활성화를 위한 정책당국의 역할 강화도 제시됐다. 이 연구위원은 "최근 정책당국이 도입한 '지역재투자 평가제도' 등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 방안은 지방은행 경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정책당국은 제도 평가결과를 금융회사에 대한 경영실태평가에 반영하며, 지자체 금고은행 및 법원 공탁금 보관은행 선정기준에 반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며 "금융감독원도 은행별 영업환경 및 위험수준을 반영한 은행경영실태 평가 방안을 마련했는데, 앞으로 좀 더 엄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이런 지방은행 관련 정책 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장기적으로는 지역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도 제시했다. 이 연구위원은 "지방은행이 어려움을 겪는 근본적인 원인은 수도권보다 지역경제가 상대적으로 침체해 있다는 데 있다"면서 "정책당국은 공정경쟁 등을 고려해 균형감각을 갖고 정책 방안을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 디지털 조직 개편·빅테크 협업…고객 맞춤형 자산관리기능 강화도
한편 지방은행들도 생존을 위한 빅테크 협업과 디지털 강화 등에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BNK금융그룹 계열사인 BNK부산은행은 최근 조직개편을 통해 기존 '디지털금융본부' 내 '언택트영업부'를 '고객지원본부'로 편제를 조정했다. 이를 기반으로 비대면 영업뿐 아니라 대면영업도 포괄하는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고 일관된 전략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JB금융그룹 계열사인 광주은행도 디지털본부를 '디지털전략본부'와 '디지털영업본부'로 이원화시키는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또한 디지털전략본부 산하에는 디지털채널부와 마이데이터사업팀을 신설하고, 기존 고객센터를 디지털영업본부 산하로 이동 배치해 전문성과 수익성을 강화했다.
빅테크와의 협업 움직임도 가속화되고 있다. 전북은행과 경남은행은 네이버파이낸셜과 디지털 금융 서비스 관련 업무협력 제휴를 맺었다. 전북은행과 경남은행은 네이버파이낸셜에 지역경제 기반의 금융 노하우를 전수하고, 네이버파이낸셜은 IT기술과 데이터 활용 방안을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현실과 가상세계가 융합된 '메타버스'와 관련한 투자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전북은행은 지방은행 중 유일하게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추진 중인 '메타버스 얼라이언스'에 합류했다. BNK금융그룹 계열사인 부산은행은 미디어 콘텐츠 기업인 코코아비전과 업무협약을 맺고 메타버스의 핵심 기술 중 하나인 증강현실(AR) 기술을 연계한 모바일앱 개발에 착수했으며, 경남은행도 메타버스 플랫폼을 운영 중인 '맘모식스'와 협약을 맺고 금융서비스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한편 부산은행과 경남은행은 이밖에도 신탁, 펀드 등 금융투자상품의 총괄 사업본부로서의 역할을 강화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기존 WM고객본부를 자산관리본부로 변경하고 신탁사업단의 편제 조정과 함께 WM상품부의 명칭을 투자상품부를 바꾸는 등 고객 중심의 포토폴리오 설계 등 종합 자산관리서비스 제공 기능을 확대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