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국회의장실 부대변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한양대학교 갈등연구소 전문위원 ▷서울시립대학 초빙교수 ▷전북대 특임교수
[임병식 칼럼] '부전자전 모전여전' 전락한 20대 대선
2021-12-26 14:38
지난주 민주당 중진 정치인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뇌리에 꽂힌 말이 있다. 이재명 후보 아들은 아버지를 닮았고, 윤석열 후보 부인은 친정 어머니를 닮았다는 것이다. 아버지 성향이나 태도가 아들에게 전해지는 ‘부전자전(父傳子傳)’에 빗대 그는 ‘모전여전(母傳女傳)’이란 대구를 완성했다. 여당 후보인 이재명은 검사 사칭과 음주운전 전과 외에 형수 욕설, 여배우 스캔들,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을 받고 있다. 또 야당 윤석열 후보는 검찰 고발 사주 의혹에다 잦은 설화로 자질 논란을 의심받는다. 두 후보는 자신들 문제와 함께 가족 리스크까지 더해지면서 역대 최고 비호감 대선을 연출한 당사자다.
이재명 후보 아들 이동호씨는 불법 사이트에서 1년 넘게 상습 도박을 했다. 그는 수십 차례 넘게 도박과 또 성매매를 암시하는 글을 남겼다. 논란이 확산되자 이 후보는 신속하게 인정하고 사과했다. 그러나 성매매 의혹에 대해선 “아들에게 물었으나 아니라고 말하니 믿을 수밖에 없다”며 피해갔다. 윤석열 후보 부인 김건희씨는 허위 경력 기재 논란에 휩싸였다. 윤 후보는 “사실 확인이 우선”이라며 미적대다 뒤늦게 사과했다. 또 장모 최은순씨는 통장 잔액 증명을 위조해 1심에서 유죄를 받았다. 민주당 인사는 “이동호씨 상습 도박은 아버지 이재명, 김건희씨 허위 경력은 어머니 최씨에게서 이어졌다”면서 부전자전과 모전여전에 비유했다.
후보와 가족 리스크 탓에 20대 대선은 막장 드라마로 전락했다. 최근 KBS 여론조사 결과 이재명과 윤석열 비호감은 각각 59.1%, 60.5%에 달했다. 둘 다 비호감이 19.8%포인트, 22.5%포인트 더 높았다. 이러다 보니 갈수록 부동층은 늘고 있다. JTBC 여론조사에서 ‘지지 후보 없다’와 ‘모름·무응답’이 17.9%, NBS 조사에서는 25%였다. 또 이데일리 조사에서는 ‘부동층’이 무려 45%까지 올라갔다. 지지 후보를 결정해도(55.0%) ‘변경 가능성이 있다’는 ‘유동층’도 15.0%에 달했다. 후보 리스크에다 가족 리스크까지 덮치면서 대선 정국은 짙은 안갯속이다.
여론조사 결과만 보면 ‘부인 리스크’가 더 크게 작용하는 모양새다. 최근 여론조사를 종합하면 ‘가족 리스크’로 인한 지지율 하락세는 윤 후보에게서 더욱 뚜렷했다. 미디어토마토 조사에서 이 후보는 0.8%포인트 앞섰다. 같은 기관 조사에서 윤 후보를 추월한 건 처음이다. JTBC 조사 결과 역시 마찬가지다. 이 후보는 37.9%로 33.5%를 기록한 윤 후보에 앞섰다. 3주 전 조사 결과와 비교하면 이 후보는 7.1%포인트 상승한 반면 윤 후보는 3.9%포인트 빠졌다. TBS 조사에서도 이 후보 40.3%, 윤 후보 37.4%를 기록했다. 비록 부인 리스크가 더 영향을 미친 셈이지만 국민들 눈에는 도긴 개긴이다.
KBS 조사도 ‘이 후보 아들 불법도박 논란이 대선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응답은 56.8%, ‘김건희씨 허위 경력 논란이 대선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응답은 66.7%로 집계됐다. 국민들이 부인 리스크를 높게 보는 이유는 왜일까. 아들은 통제 범위 안에 있는 반면 부인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동호씨는 벌을 받고 격리하면 되지만 김건희씨는 그럴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영부인은 대통령과 함께 나라를 대표하는 지위를 부여받는다. 예산을 지원받고, 또 정상 외교에도 참여한다. 국민들이 부인 리스크에 가중치를 더 높게 두는 건 영부인이 갖는 특수한 지위를 고려한 결과다.
관건은 역대 최고 비호감 대선이 가져올 부작용이다. ‘찍을 후보가 없다’는 푸념은 낮은 투표율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선택지가 제한된 상황에서 무더기 기권은 불가피하다. 두꺼운 부동층은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주변에는 투표하지 않겠다고 공언하는 이들도 상당하다. 심지어 민주당 텃밭인 호남 지지층에서조차 회의론은 고개 들고 있다. 최근 이재명 후보와 이낙연 전 대표가 손을 잡았지만 무관심과 실망을 넘어설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19일 홍콩 입법회(의회) 선거는 좋은 사례다. 투표율은 30.2%에 그쳐 역대 최저를 기록했는데, 10명 가운데 7명이 기권했다. 2016년 58.28%에 비해 무려 28%포인트 하락했다. 중국 정부는 선거제도를 바꾼 후 치른 첫 선거에서 “애국자가 홍콩을 다스려야 한다”며 출마 후보 심사를 강화했다. 여기에 반발해 제1야당은 입후보를 포기했고 유권자들은 투표장에 가지 않는 것으로 대항했다. 그 결과 전체 90석 가운데 89석을 친중국계가 싹쓸이했다. ‘찍을 후보가 없다’는 우리 상황과 ‘거수기 역할’을 거부하는 홍콩 선거는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후보를 교체한다면 어떨까. 유권자들이 기꺼이 투표장으로 달려갈 수 있도록 좋은 후보를 내는 건 정당의 책무이니 지금이라도 후보 교체는 당연하지만 망상이란 걸 잘 안다. 결국 진영 지지만으로 당선된 대통령이 절멸과 보복의 정치를 반복할 것이란 우울한 전망이다. 앞서 언급한 여권 중진 정치인은 “부인 리스크가 아들 리스크보다 크니 그래도 민주당 후보를 지지할 수밖에 없지 않으냐”고 했지만 국민들도 그렇게 생각할지는 의문이다. ‘부전자전’과 ‘모전여전’이란 질 낮은 선거를 연출하고도 국민들에게 표를 달라고 하니 참으로 염치없는 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