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 시장이 비무장지대 될까?...미-중 관계 악화에도 손잡는 가스업계

2021-12-21 18:31

최근 관계가 악화일로를 겪고 있는 미국과 중국이 가스 산업에서만큼은 손을 잡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액화천연가스(LNG) 수출 시설을 건설하고 있는 벤처글로벌LNG는 중국 국영 석유기업인 중국해양석유(CNOOC)에 연간 200만톤의 LNG를 공급하는 20년 매매계약(SPA)을 이날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또한 CNOOC는 추가적으로 LNG 150만톤을 단기적으로 매입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파이낸셜타임스(FT)은 이 두 건의 거래를 통해 지난 10월부터 미국 수출업체와 중국 수입업체 간 이뤄진 대규모 계약 건수가 총 7건까지 늘었다고 밝혔다. 

이에 중국의 LNG 수입량과 미국의 LNG 수출량은 크게 증가할 전망이다. 애널리스트들은 올해부터 중국이 일본을 제치고 세계 최대 LNG 구입업체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한편,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내년 미국이 LNG 수출량에서 호주와 카타르를 제칠 것으로 전망했다.
 

[사진=게티이미지]


미국이 중국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하고, 중국 신장 위구르 지역에서 생산되는 물품에 대한 수입 금지를 추진하는 등 중국 인권 상황을 이유로 들어 날을 세우고 있는 가운데, 중국 역시도 미국이 내정에 간섭하려고 한다며 비난하며 양국 간 관계는 살얼음판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FT는 최근의 LNG 계약이 에너지 및 기후 문제에 대해서 미국과 중국, 두 강대국이 유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표시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행정부 당시 미국이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관세를 매기자 이에 대해 중국이 미국산 가스에 대해 관세를 매기며 LNG 관련 계약 등은 정체되었지만 이후 이는 다시 늘어나고 있다. 석탄 부족 등으로 인한 전력난과 높은 에너지 가격에 안정적으로 가스를 공급받기 위해 나선 것이다.

금융정보업체 레피니티브 자료에 따르면 올해 1~9월 미국은 중국에 두 번째로 많은 LNG를 수출했다. 호주가 가장 많은 LNG를 수출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당시 에너지부에서 일한 제임스 보도프 컬럼비아기후학교 학장은 "여러 면에서 미중 관계는 매우 안 좋은 상황"이라면서도 "에너지와 기후 분야는 (양국간) 긴장과 갈등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협력이 있을 수 있는 지점"이라고 전망했다.

마이크 사벨 벤처글로벌LNG 최고경영자(CEO)는 석탄을 천연가스로 대체해 탄소배출량을 줄이려는 중국의 노력이 이번 합의를 이끌어냈다고 밝혔다. 그는 FT에 "중국은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이러한 합의를 빠르게 이끌어냈다"라며 "다른 국가들 역시 중국만이 이익을 얻는 상황이 오지 않도록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또한 그는 "세계가 미국 LNG를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시대가 곧 올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최대 LNG 수출업체인 셰니에르에너지의 아나톨 페긴 최고상품책임자 역시 "아시아는 수십 년 동안 LNG 수요 성장을 이끌어 왔으며, 중국은 이 중에서도 가장 큰 동인"이라고 10월 FT에 밝혔다.

중국 외교부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1월 1일 이루어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천연가스 협력을 강화하고 싶다"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현재 미국과 호주 두 국가에서 전체 LNG의 절반을 수입하고 있다.

그러나 FT는 최근 미국 내 LNG 가격이 크게 올라 미국 국민들에게 부담이 되고 있고, 해외로 대량의 LNG를 수출하는 것이 탈탄소를 주장하는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정책과 배치된다는 비판 역시 존재한다고 밝혔다.

최근 미국 내 LNG 가격이 100만BTU(열량 단위) 당 6달러(약 7160원)까지 올라 2008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며 가스 수출은 미국 내에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엘리자베스 워런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은 엑슨모빌과 BP를 포함한 11개 대형 천연가스 생산업체의 CEO에게 서한을 보내 회사들이 “급등하는 국내 가격을 완화하기 위해 천연가스 수출을 중단하거나, 이를 고려"했는지를 묻기도 했다.

보도프 컬럼비아기후학교 학장 역시 수출량을 줄이려는 움직임이 "신뢰할 수 있는 에너지 공급자"로서의 미국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주로 러시아에서 천연가스를 수입하고자 하는 유럽 국가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음을 언급하기도 했다. 주로 미국 LNG를 수입하는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러시아에서 천연가스를 수급하는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가 천연가스 공급을 무기화할 수 있다는 판단에 러시아 외에 미국이나 중동 등에서의 수입을 확대하려 하고 있다.

또한, 바이든 행정부가 초반부터 탈탄소를 주장한 반면, 가스 수출로 호황을 누리는 것이 정치적으로 어색하다고 지목하기도 했다. 천연가스가 석탄에 비해 적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만 여전히 온실가스 배출의 큰 원인이기 때문이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니코스 사포스 에너지·지정학 팀장은 세계가 여전히 화석 연료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미국은 석유와 가스의 대규모 생산국이라는 "에너지 전환의 지저분한 현실"을 반영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