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시민참여형 '재생에너지 2.0'...환경·지역경제 두마리 토끼 잡기

2021-12-20 07:46

윤태환 루트에너지 대표


지난 4년간 재생에너지 기술력은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습니다. 단위 면적당 발전량은 태양광, 풍력 각각 2배 이상 증가해 필요한 설치 면적은 절반으로 줄었고, 2020년 기준 태양광 발전단가는 석탄이나 LNG(액화천연가스)보다 저렴해졌습니다. 하지만 재생에너지 관련 민원은 8배 이상 증가해 발전사업 취소의 가장 큰 원인이 됐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꼭 넘어야 할 재생에너지 확대의 가장 큰 걸림돌은 기술도, 경제성도 아닌 바로 `지역 수용성`입니다.

독일 아고라 에네르기벤데(AGORA Energiewende)에 따르면 재생에너지 선진국 독일은 2019년 기준 국가 전체 재생에너지 투자금액의 약 42%(50GW)를 시민들이 채권 형태로 직접 투자했습니다. 그 투자 규모가 약 160조원에 달하며 이는 800만명의 독일 시민들이 1인당 2000만원을 투자한 것과 같습니다. 연평균 8% 수익을 제공하고, 소득세가 높은 국가임에도 재생에너지 시민 투자가 만드는 환경적 가치가 높아 최대 100% 소득공제돼 독일 시민 가계소득 증가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독일 재생에너지 시민참여는 무엇보다 독일의 상향식 에너지 전환의 기반을 만들었습니다. 독일 전체 인구의 10%인 800만명에 달하는 독일 에너지 시민 공동체가 만들어져 정치인들은 좌우에 관계없이 장기적으로 예측 가능한 재생에너지 친화적인 정책을 입안했습니다. 그 결과 독일 재생에너지 산업은 지역주민들에서부터 상향식으로 내수 시장이 탄탄히 커가며 동시에 글로벌 리더십을 가져갈 수 있었고, 국가 GDP가 성장하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지역주민들이 수동적인 단순 현금 보상의 대상이던 재생에너지 1.0 시대에서 능동적인 주체이자 건전한 시장 생태계를 함께 키워가는 파트너로 인식되는 재생에너지 2.0 시대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습니다.

불과 3년 전인 2018년 연 10억도 안되는 재생에너지 시민 펀드 규모가 최근 강원도 가덕산 풍력, 새만금 3구역 육상태양광, 제주 한림해상풍력 등 전국의 많은 지역에서 만들어지며, 연 2000억원 이상 규모로 200배 이상 커졌습니다. 특히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발전공기업 6사와 수자원공사, 농어촌공사, 지역난방공사 등 주요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하는 9개 공기업에 2025년까지 신규로 추진하는 사업 중 주민참여형 추진 계획을 조사했습니다. 향후 5년간 투자되는 신규 재생에너지 사업 중 72%를 주민참여형 사업으로 추진하는 목표를 세웠고, 시민들이 약 12조원 이상 투자할 기회가 생길 수 있어서 2021년에 비해 향후 5년간 최소 60배 이상 시장이 커질 수 있습니다.

이는 유럽에 비해 새로운 변화에 빠른 우리나라 국민성을 고려하면 향후 독일 이상으로 수백조원 시장으로 커질 것으로 예상되며, 앞으로 재생에너지 주민참여는 선택이 아니라 거의 의무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재생에너지 주민참여 사업은 대부분 인구수와 평균 소득이 적고, 고령화돼있는 지역소멸 예상 지역에서 진행돼 유럽 상황과 다르게 국내 각 지역의 특성에 맞게 다양한 모델로 진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소득이 부족한 발전소 인근 주민들은 재생에너지로부터 친환경 기본소득을 드릴 수 있고, 누구나 소액으로도 펀드에 투자할 기회를 제공해 추가 투자소득을 얻는 것도 가능할 것입니다.

만약 이런 시민참여형 발전소가 많아진다면 탄소중립을 앞당기는 것뿐 아니라 그만큼 지역 소득이 증가하고, 그 이익금이 다시 지역에 재투자돼 새로운 일자리 창출과 지역 경제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습니다.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이 경남 합천댐에 매화를 닮은 수상태양광발전소 준공식에 다녀갔습니다. 미관상 보기도 좋고 탄소도 절감하며 주민참여 사업으로 20년간 이익을 공유하는 민·관 그리고 주민들이 협력한 성공적인 모델이었습니다. 만약 2030년까지 전국 약 2.1GW(총투자비 3조9000억원) 규모로 수상태양광을 확대해 시민이 총투자비 중 최대 10%인 약 4000억원을 1인당 500만원씩 투자한다면 약 8만명의 시민들에게 20년간 약 1조원의 이익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 과정에서 약 7600개 이상의 직·간접 신규 일자리가 지역에 만들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기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질문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보다 '얼마나 빠르게 앞당길 수 있느냐', '또 누가 그 과정을 이끌고 그 열매를 나눠야 하는가'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약 30년 전 독일에서 가능했던 것이 현재 한국에선 여러 금융 규제 장벽과 장기적으로 예측하기 어려운 불안정한 에너지 정책으로 원활한 추진이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만약 빠른 시일 내에 이런 정책적 어려움이 해결된다면 탄소중립 시대의 한국은 과거 독일보다 10년, 아니 20년 앞당겨 에너지 전환에 성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