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물리 공간의 시대] 즐거움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시대가 온다

2021-12-13 00:15

[사진=게티이미지뱅크]


4차 산업혁명이라는 키워드가 사회를 강타한 지도 벌써 몇 년이 흘렀다. 2016년 클라우스 슈바프가 이를 언급한 이후로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 빅데이터(Big Data), 모바일(Mobile)의 4대 분야와 인공지능(AI)이 4차 산업혁명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핵심 기술로 지목됐으며, 관련 기술과 산업 육성에 사회적 역량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이 모든 기술이 '산업혁명'으로 불릴 만큼 혁신적이었던 이유는 이들이 생산성의 비약적 향상을 가능하게 하고, 그 결과 기존의 산업 구조를 바꿀 수 있을 만큼 파급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1차부터 3차까지 산업혁명을 거듭하면서 인류는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할 새로운 도구의 발명과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의 발전, IT를 기반으로 한 지식 정보 혁명을 통해 언제나 생산성의 비약적 향상을 지향해 왔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이 지향하는 바는 이제까지의 산업혁명과 다른 지점이 존재한다. 생산성의 향상을 통한 부가가치 창출이 기존 산업혁명의 핵심 미션이었다고 하면, 이미 인류는 사실상 이 목표를 이뤘다. 예를 들면 1시간에 100개의 제품을 생산해내던 시스템이 500개를 생산할 수 있게 됨으로써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기존 산업혁명의 목표였다. 그러나 수요와 공급의 균형에 의해 500개 이상의 제품이 더는 필요하지 않을 경우 시간당 얼마나 더 많은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지, 즉 생산성의 향상이 가져다주는 부가가치는 이전만큼 크지 않다. 즉, 4차 산업혁명을 겪는 현대의 산업은 성장을 위해 이전과는 다른 형태의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하는 지점에 도달한 것이다.

어떤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인가? 미래에 AI 시대가 오면 인간이 학습하는 과정과 지식이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서 묘사된 것처럼 컴퓨터 칩의 형태로 인간에게 탑재될 수 있다. 즉, 학습의 개념이 달라진 먼 미래에는 인간이 만들고 운영해온 다양한 산업들은 모두 기계로 대체되고, 인간에게는 즐거움을 목적으로 하는 산업만이 남을지도 모른다.

즐거움을 좇는 인간의 본성은 호모 루덴스(Homo Ludens)라는 말로도 정의된 바 있다. 네덜란드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는 인간을 호모 루덴스, '유희하는 인간'이라고 명명했다. 그는 인간의 두뇌 활동 자체가 고도의 유희이며, 인간은 놀이를 통해 인생관과 세계관을 표현하는 존재라고 봤다.

즐거움을 좇는 인간의 본성이 인류 문화를 발전시켜온 핵심 축이고 생산성의 발전으로 인해 개개인의 여가시간이 비약적으로 증가하는 AI 시대의 핵심 키워드라면, 우리는 '즐거움'의 가치에 새롭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즐거움 자체가 산업에서 창출될 대표적 부가가치이자 4차 산업혁명의 변화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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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인공지능
유엔이 매년 발표하는 국가별 행복지수에서 행복의 개념은 '현재의 삶과 생활에 대한 만족도'를 측정하는 것에 가깝다. 그리고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상황이나 빈도에 대한 측정치인 '주관적 안녕감(Subjective Well-being)'을 적용해 개인이 느끼는 행복감을 더욱 심층적으로 측정한다. 주관적 안녕감을 정의한 에드 디너(Ed Diener) 교수는 행복을 '긍정적 정서 경험은 자주 발생하지만, 부정적 정서 경험은 가끔 발생하는 상태'라고 해석했다.

의식주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때 인간은 본능적으로 덜 불안하다. 특히 몸이 아프거나 물리적 고통의 상태에 있지 않아야 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따라서 건강한 식습관, 생활 방식을 따르거나 규칙적인 생활을 통해 건강한 삶을 영위하고자 들이는 노력과 수고는 오히려 인간에게 긍정적인 정서를 가져다준다.

최근 개인이 일상 속에서 자신의 건강을 더욱 잘 관리할 수 있도록 AI가 탑재된 각종 웨어러블 기기의 발전이 급속도로 이뤄지는 것 또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스마트워치가 개인의 건강 이력과 현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인간이 할 수 없는 '모든 신체 영역의 종합 전문의' 수준에서 개인의 건강을 관리해 준다면? 이는 건강에 대한 불안과 부정적 정서를 낮추고 안정감을 줌으로써 개인에게 일상의 만족감과 행복, 즐거움을 준다.

일상의 불편함을 해소하는 것도 긍정적 정서 경험을 준다. 예를 들어 만성 교통체증으로 출퇴근을 힘들어하는 직장인에게 AI가 집을 나서기도 전에 교통 상황과 버스 위치, 현재 탑승객 수 등 각종 데이터를 종합해 실시간으로 최적의 교통수단을 추천해 주고, 운전도 대신한다면? 혹은 AI가 개인화된 자신의 관심사와 취향, 현 상황에 대한 파악을 바탕으로 내가 필요를 인지하기도 전에 쇼핑을 제안하고, 구매까지 모든 과정을 대신해준다면? 이러한 서비스를 이용할 때 느끼는 편리함, 일상에서 불편이 해소되는 경험은 개인에게 긍정적 정서를 야기한다. 이렇게 쌓이는 긍정적 정서 경험이 일상의 만족도를 높이고, 삶에 즐거움을 선사하며, 이러한 즐거움과 긍정적 정서 경험을 극대화하는 산업이 미래를 이끄는 핵심적인 산업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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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감과 인공지능
교육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을 통해 성취감을 느낀다. 성취감은 인간이 좋은 기분, 긍정적인 정서를 느끼게 하는 ‘세로토닌’의 분비를 촉진한다. 따라서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 스스로 학습 단계별로 성취하는 즐거움이나 뭔가 학습에 대한 호기심을 지속할 수 있는 동기가 있느냐다. 더구나 미래 지식 사회에서는 학습해야 할 내용이 너무나 다양하고 많으므로 성취감을 통한 즐거움을 제공함으로써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의 개발이 더욱 중요하다.

향후 새로운 형태의 교육은 게임에서 경험치를 받아 단계를 올라가는 것처럼 스스로 학습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진화할 것이다. 옛날에 논어에서 공자가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우고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는 결국 학습의 과정, 교육 자체가 인간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으며, 또한 즐거움의 요소를 동기로 만드는 AI 알고리즘이 교육의 미래가 된다는 것이다.
 
엔터테인먼트와 인공지능
쾌락은 즐거움과 거의 동일시된다. 차이가 있다면 쾌락은 조금 더 본능적인 욕구와 욕망을 충족시키는 즐거움을 말한다. 쾌락적 즐거움을 제공하는 대표적인 산업이 게임 산업과 미디어 산업이다. 게임은 인류의 문명과 함께 진화해 왔으며, 그 자체로 쾌락적 즐거움과 몰입감을 제공한다. 그러나 쾌락적 즐거움은 오래 지속되지 않기 때문에 인류는 게임을 통해 더 큰 즐거움 혹은 새로움과 몰입감을 느낄 수 있도록 다양한 형태로 게임을 진화시켜 왔다.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과 같은 기술이 게임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앞으로도 새로운 도구와 AI 기술의 각축장으로 게임이 진화하게 될 것이다. 미디어 산업 또한 더 이상 내가 보고 싶은 미디어를 직접 고를 일이 없는, 콘텐츠 소비 자체에 몰입해 더욱 극대화된 즐거움, 쾌락적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는 산업 분야로 발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가까운 미래에 내가 실존하는 모든 공간에서 AI가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회가 다가올 것이다. 그 미래가 더욱 가까워질수록 감각적이고 다양한 즐거움을 제공하는 요소를 극대화하며, 이를 통해 대중에게 더 나은 경험적 가치를 제공하는 산업의 성장을 기대해 볼 수 있다.
 
최준균 카이스트 전기 및 전자공학과 교수(카이스트·메가존클라우드 지능형 클라우드 융합기술 연구센터 소장) jkchoi59@kaist.ac.kr
 

최준균 카이스트 전기 및 전자공학과 교수 (카이스트·메가존클라우드 지능형 클라우드 융합기술 연구센터 소장) [사진=최준균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