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민주주의는 투사가 필요하다"...100여개국 참여 민주주의 정상회의 개막

2021-12-10 11:35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 세계적으로 퇴보하고 있는 민주주의를 강화하겠다는 기치 아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주도한 민주주의 정상회의가 9일(현지시간) 개막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사진=AFP·연합뉴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이후 꾸준하게 중국과 러시아로 대표되는 권위주의 체제 확산을 막고 민주주의를 강화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지난 2월 4일 취임 후 처음으로 진행한 외교 정책 연설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지도부는 미국과 경쟁하려는 중국의 야망과 미국의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러시아의 결의를 포함해 점점 확대되고 있는 권위주의에 맞서야 한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와 보편적 인권이 지속적이고 우려스러운 도전에 직면한 가운데 민주주의는 투사(champion)를 필요로 한다"라며 개최사를 시작했다. 특히 국제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의 2020년 보고서를 인용하며 전 세계의 자유가 15년 연속으로 후퇴했다고 언급했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은 독재자들로부터의 외압 등이 민주주의에 주된 우려가 된다고 언급하며 "외부 독재자들은 전 세계에 영향력을 확대하며 그들의 힘을 키우고 억압적인 정책과 행동을 정당화하려 한다"라고 덧붙였다. 중국과 러시아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들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개최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전 세계의 민주주의 재건을 위해 최대 4억2440만 달러(약 4996억4600만원)를 들여 새로운 대통령 이니셔티브(행동 규범)를 출범하겠다고 밝혔다. 언론 활동의 자유 지원, 국제적 부패 척결, 민주주의 개혁,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기술 지원, 공정한 선거 지원 등의 분야에 투자할 예정이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 역시 화상으로 이루어진 이번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참여해 재무부가 자금 세탁, 불법 금융거래, 탈세를 단속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이날 로이터가 보도했다. 옐런 재무장관은 "국내에서 부자들이 법을 어길 수 있도록 허용한다면, 미국은 해외에서 자유롭고 공정한 정부로서 인정받을 수 없다"라고 밝혔다.

민주주의 회의에 참여한 각국 정상들도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의견을 내놓았다.

10일 교도통신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미국이 주최한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참석해 민주주의, 자유, 법에 의한 지배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은 이를 훼손하려는 시도에 대해 공동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고 밝혔다.

또한 기시다 총리는 회의 첫날 이루어진 정상들 간의 비공개 회의에서 기업들의 인권 존중 노력을 강화하기 위해 국제 기구에 1400만 달러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바이든 대통령의 민주주의 회의에 대한 의문 역시 국내외에서 제기됐다. 지난 1월 6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이 조 바이든 대통령의 당선을 뒤집기 위해 의사당에 난입한 사태 등이 있었던 만큼 미국의 민주주의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분석이다.

이날 뉴욕타임스(NYT)는 "(민주주의에 관련된) 문제가 집에서 곪아 터지고 있는 가운데 해외로 스포트라이트를 옮기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는 시각도 있다"라고 언급했다. 

평등과 사회 정의를 위한 인권단체인 내셔널어반리그의 마크 H. 모리얼 회장은 미국 내에서 나타나고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에 대해 더 많은 조치가 필요하다며 이번 회담은 "잃어버린 기회"라고 밝혔다. 그는 "국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과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분리할 수 없다"라고 덧붙였다.

미국 싱크탱크인 카네기국제평화재단(CEIP)의 레이첼 클라인펠드 선임 연구원은 바이든 행정부가 민주주의에 대한 유사한 위협에 직면해 있는 다른 국가들과 협력하기 위한 장기 계획을 세우기 위해 이번 회의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미국과 세계의 민주주의는 민주주의 후퇴 위기에 직면하고 있어 전략과 발전을 필요로 하고 있다"라며 "그러나 이번 회의는 전략이 아니라 오히려 방해가 되었다"라고 덧붙였다.

이번 회의에 초청받지 못한 중국과 러시아가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불만을 표시하고 있는 것 역시 우려를 부채질하고 있다.

중국 국영매체 신화통신은 5일 중국 외교부가 이날 누리집에 "미국의 민주주의 상태"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고 밝혔다. 미국 내 민주주의 체제에 구조적 결함이 있고, 문제적인 관행들이 나타나고 있음에도 미국이 스스로를 '민주주의의 모범'이라고 자처한다는 내용이다. 또한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간섭하고 민주주의를 빙자한 전쟁을 벌여 지역 간 갈등을 조장한다고 덧붙였다.

NPR은 9일 중국 관리와 전문가들이 자체 민주주의 회담을 개최해 중국의 정치 체제는 사실상 다른 종류의 민주주의 형태이며 무너진 미국 민주주의보다도 오히려 국민들에게 더 나은 결과를 제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러시아 역시 중국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NYT는 러시아 통신사 타스를 인용해 마리아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이 11월 말 "미국은 민주주의라고 불릴 수 있는 국가와 없는 국가를 결정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라며 반발했다고 9일 전했다. 그는 "이는 매우 자기중심적으로 보인다"라며 "미국을 비롯해 서방 국가들의 현재 민주주의와 인권 수준을 고려할 때 애처로울 지경"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