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뭐할까] 일상 회복을 위한 역사...국립민속박물관 ‘역병, 일상’ 특별전
2021-11-26 06:00
우리 삶에 들어온 역병과 이를 보내려는 노력이 담긴 자료들 소개
“내가 살려면 내 가족이 살아야 하고, 내 가족이 살려면, 또 그 옆, 주변에 있는 지인들이 살아야 하고, 결국 다 같이 살아야 하겠더라고요.”
김승이 씨는 2020년 2월부터 마스크 기부 활동을 시작했다. 마스크가 부족해 요일제로 사야했던 시절이 있었다. 마스크를 서기 위해 긴 줄을 선 김 씨는 자신보다 몸이 불편해 마스크를 구하기 힘든 사람들을 생각했다. 김 씨는 2021년 10월까지 100여명의 자원 봉사자와 함께 마스크 만여장을 기부했다.
국립민속박물관(관장 김종대)은 ‘역병, 일상’ 특별전을 11월 24일부터 2022년 2월 28일까지 개최한다. ‘묵재일기’, ‘노상추일기’, ‘짚말’, ‘두창예방선전가’, ‘자가격리자의 그림일기’, ‘재봉틀’ 등 158건 353점의 자료와 영상이 전시됐다.
나훈영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커다란 희생이 아니더라도 내가 현재할 수 있는 행위를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이 매우 뜻깊은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라고 말했다.
이번 특별전은 ‘코로나19’부터 거슬러가 전통사회를 휩쓴 역병(疫病)과 그 속에서 일상을 지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데 모아 선보인다. 인류는 오랜시간 역병과 싸워왔다.
조선 시대의 한 아비는 역병으로 아이를 잃은 참담함을 이렇게 기록했다. 여역(癘疫), 두창(痘瘡) 등의 단어로 자료를 검색하면, 300여 개가 넘는 옛 기사가 나온다. 정사(正史)와 일기를 넘나드는 역병의 기록은 그로 인해 고단했던 인간 생활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서는 우리 삶에 들어온 역병과 이를 보내려는 노력이 담긴 자료들을 소개한다.
특히 조선 시대 역병에 대한 인식과 치료법 등이 기록되어 의학사적으로 매우 귀중한 '묵재일기'(默齋日記)와 '노상추일기'(盧尙樞日記)를 관람객에게 최초 공개한다.
'묵재일기'는 이문건(1494~1567)이 1535년부터 1567년까지 17년간, '노상추일기'는 노상추(1746~1829)가 1763년부터 1829년까지 67년간 기록한 일기다.
조선 시대는 두창으로 목숨을 잃는 일이 흔했다. 두창에 대한 인간의 공포심은 손님, 마마(媽媽)로 모시는 행위로 표출되었다.
이것이 바로 마마배송굿이다. 마마배송굿은 마마신(媽媽神)을 달래어 짚말(上馬)에 태워 보내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어 여타 다른 굿과 특이점을 갖는다.
1821년 조선 땅을 흔들었던 콜레라는 처음에 ‘괴질(怪疾)’로 불렸다. 당시 민간에서는 이를 두고 쥐에게 물린 통증과 비슷하다고 하여 쥐통이라 부르기도 하고, 몸 안에 쥐신(鼠神)이 들어왔다고도 여겼다.
대문에 고양이 그림을 붙이고 물러가기 염원했던 옛사람의 이색 처방이 19세기 프랑스 인류학자 샤를 바라(1842~1893)의 <조선기행Voyage en Corée>(1892)에 수록되어있어 이번 전시에 소개한다.
그 외에 조선 시대에도 역병이 발생하면 지인의 집으로 피접(避接)을 가고, 집 안의 외딴곳에 자신 스스로 격리하는 일 등이 빈번했다. 현재의 사회적 거리두기, 자가격리 생활의 원형이다.
“이 시국에 드리는 청첩장의 무게가 무겁습니다”
2020년 청첩장을 봉한 봉투의 문구이다. 역병 속 일상을 지속하는 것은 시대를 초월한 큰 고난이다. 고난임을 알기에 서로를 생각하고, ‘다시’, ‘함께’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진다.
대면 조사가 어려운 상황에도 시민 100여명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자료를 제공받아 전시에 추렸다. 그들의 입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다시’, ‘함께’, ‘같이’였다.
한쪽에는 의료진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는 정성스러운 손편지를 모아놨다. 편지들은 감동을 전했다.
전시장 높이 솟은 벽 넘어 이적의 노래 ‘당연한 것들’이 들린다.
2020년에 발표된 이 노래는 현재는 누릴 수 없는 평범한 일상을 그리는 내용으로 많은 사람의 공감을 자아냈다.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한 일상’을 이어가기 위해 고군분투한 억겁의 나날들, 이를 기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곧 민속이다.
당연했던 일상으로 돌아가려 조선 시골 양반은 역병으로 흉흉한 마을 안정을 위해 여제문(厲祭文)을 짓고 여제를 지냈다. 동네를 돌며 방역활동하는 자율방범대의 마음도 다른 바 없다. 모두 ‘함께하는 당연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해법이다.
켜켜이 모인 일상은 곧 민속이 된다. 전시장은 이를 건축 자재로 표현한다. 부식된 철판 느낌의 구조물과 썩은 목판은 역병으로 인해 무너진 사회와 일상이다. 그리고 유물 앞뒤에 여러 형태로 교차한 비계는 치료와 치유로 나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잇는다. 이를 담아낸 전시장은 민속을 상징한다.
전시장 천장 아래서 바라본 관람객의 동선은 ‘∞’을 띤다. 이는 역병과 일상의 무한한 반복을 의미한다. 역병은 인류의 역사에서 반가운 존재는 분명 아니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때마다 우리는 항상 일상을 되찾기 위해 지혜를 생각하고, ‘함께’ 발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