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 대표 항암제 '시스플라틴' 작용 원리 규명

2021-11-24 00:00
"더 강력한 항암제 개발 실마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현판. 사진=아주경제DB]

국내 연구진이 수십년간 대표적 항암제로 쓰이는 시스플라틴의 작용 원리를 분자 수준에서 규명했다. 향후 더 강력한 항암제를 개발하는 데 실마리가 될 수 있는 성과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4일 홍석철 고려대 물리학과 교수 연구팀(고려대학교 물리학과, 기초과학연구원 분자분광학·동력학 연구단)이 대표적 항암제인 시스플라틴의 작용 원리를 분자 수준에서 규명했다고 밝혔다.

과기정통부 개인기초연구(중견연구) 사업과 기초과학연구원 등의 지원으로 수행된 이번 연구의 성과는 핵산 분야 국제학술지 뉴클레익 애시즈 리서치(Nucleic Acids Research)에 이날 게재됐다.

인체의 유전정보가 담긴 이중나선 DNA는 모든 세포의 DNA를 일렬로 나열하면 지구를 250만번 감을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실제 DNA는 실패에 감긴 실처럼 단백질 복합체를 중심으로 이중나선이 감긴 크로마틴이라는 형태로 고도로 압축돼 눈에 보이지 않는 세포 내 작은 핵 속에 들어있다. 

인체 내 세포의 성장과 사멸은 이러한 크로마틴 구조가 느슨해지고 팽팽해지는 가역적인 새단장(리모델링) 과정을 통해 조절되는데, 시스플라틴이 마치 접착제처럼 작용해 크로마틴의 변화를 막아 항암효과를 낸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진 것이다.

연구팀은 세포 내에 존재하는 DNA는 대부분 크로마틴 형태로 존재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크로마틴이 시스플라틴의 중요한 표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바탕으로 시스플라틴이 크로마틴과 결합했을 때 크로마틴의 변화를 분자 수준에서 정밀하게 측정했다.

그 결과 용수철처럼 가역적으로 새단장 되는 크로마틴이 시스플라틴과 결합할 때 영구적으로 탄력성을 잃는 것을 확인했다. 강하게 잡아당기는 물리적인 자극이나 고농도의 소금물 같은 화학적 자극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한편 이러한 크로마틴 변화를 분자 수준에서 실시간으로 포착할 수 있었던 것은 자성트위저 장비 덕분이었다. 자성트위저는 단일 생체 분자 물성 측정·제어를 위해 개발된 장비다. 자석 간 인력을 이용해서 자석을 부착한 생체 분자에 힘을 가하는 방식으로 설계돼 있어 자석에 의한 힘이 공간적으로 균일하고 대단히 안정적이다.

실제 생체 환경에서 시스플라틴이 크로마틴을 표적으로 해 강력한 항암효과를 낸다는 것을 확인했다. 

최근 개발된 다수의 항암제는 시스플라틴과 유사하게 핵 속 DNA를 표적으로 한다. 홍석철 교수는 "이번 연구는 항암제와 DNA 분자의 작용 원리를 밝히는 기초 연구에만 머물지 않고, 다양한 환경에서 항암제의 반응 효율을 조사하는 데 효과적인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향후 유효 물질의 선정과 개발 과정에 유용하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DNA 표적 기반 항암제의 개발과 효능 측정 장비로서 자성트위저를 제안한 본 연구는 세종대학교 이남경 교수, 한국과학기술원의 김재훈, 송지준 교수팀, 고려대학교 김준곤 교수팀과의 협력연구로 이뤄졌다. 

홍석철 교수는 "이번 연구의 성과는 시스플라틴의 약리적 표적이 순수한 DNA라기보다는 보다 응축된 상위 구조인 크로마틴 형태일 수 있음을 제안한 것에 의의가 있다"며 "DNA를 표적으로 하는 다양한 항암제의 효능 측정과 작용 원리 규명, 강력한 항암제 디자인의 실마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