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서류에는 도장 찍혀있는데’…방배5조합, 현대건설에 354억 이체 순간까지 “몰랐다” 주장

2021-10-19 08:01

방배5구역 주택재건축정비사업 조감도. [사진=방배5구역 조합]

방배5구역 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이하 방배5조합)이 2019년 그라가스제일차와 체결한 대출 중 일부가 현대건설 계좌에 이체돼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조합 집행부는 대출 실행 순간까지 현대건설에 354억원이 송금된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했다.

방배5조합은 2019년 10월 11일 현대건설이 주선한 그라가스제일차와 대출약정을 체결했는데 대출실행금 3209억원 중 354억원이 조합원의 동의절차 없이 현대건설 하나은행 계좌로 이체돼 논란이 일었다. 이에 대해 현대건설은 354억원은 당사가 보관하기로 조합측과 합의된 사항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본지는 대출 당일 방배5조합 대의원회에 상정된 대출약정서와 대의원회 후 실제 체결된 대출약정서 등을 입수했다. 서류 검토 결과 조합 대의원회에 의결된 대출약정서에는 현대건설 자금이체 관련 내용이 어디에도 명시되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다. 이 약정서에는 이체요청서가 첨부돼 있었지만 자금 이체 대상은 기입되지 않은 채 공란으로 남겨져 있었다.

이와 달리 대의원회 의결 직후 방배5조합이 실제 체결한 대출약정서의 이체요청서의 자금 이체 대상에는 현대건설이 포함돼 있었고 조합장의 도장도 찍혀있었다.

문제는 조합과 사전 합의에 의한 자금이체라고 주장하는 현대건설과 달리 방배5구역 조합장과 재무이사는 대출실행 순간까지 354억원이 현대건설에 이체되는지 몰랐다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왼쪽) 2019년 10월 11일 오전 열린 방배5구역조합 대의원회 자료에 첨부된 인출요청서. 이체 대상이 공란으로 남겨져 있다. (오른쪽) 같은 날 오후 실제 체결된 대출약정서에 첨부된 인출요청서. 대출금 3209억원 중 354억원을 현대건설 계좌로 이체한다는 문구가 포함됐다. 방배5구역 조합장의 날인도 찍혀있다.

당시 조합 재무이사를 맡았던 유모씨는 “대출 당일 오전 열린 대의원회 자료에는 현대건설에 자금이 이체된다는 내용이 없었다”며 “실제 대출약정서에 도장을 찍을 때 이 내용이 들어간 것인데 저는 당시 이를 몰랐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대출약정서 서류는 현대 또는 그라가스제일차 측이 준비해왔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아울러 유씨는 “저는 대출체결 현장에 참석하지 않았고 사무장이 대신 그라가스 관계자와 대출약정을 체결했다”며 “대출자금이 실행된 후 또는 그 다음날쯤에서야 현대건설에 354억원이 이체됐다는 사실을 알게됐다”고 해명했다.

이밖에도 그는 “대의원회 개최 전 현대건설 관계자와 자금 이체 관련 이야기를 나눈 사실은 있다”면서도 “이 과정에서 조합의 대출금 중 354억원을 현대건설에 이체하는 데 100% 동의한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방배5구역조합 김만길 조합장은 “실무진(재무이사) 이야기가 맞을 것”이라면서도 대출 과정은 실무자 선에서 진행됐다는 태도를 보였다. 김 조합장은 “대의원회 안건이 통과되면 실무진들이 의결된 내용대로 진행을 해야 하지만 실제 대출체결 과정의 인출서에 (현대건설 자금이체 부분이)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며 “이체가 된 후에는 조합에서 취할 방법이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건설은 방배5조합의 주장이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상식적으로 조합과 합의 없이 자금이체가 이뤄질 수 있느냐”며 조합측 주장을 일축했다.

그는 이어 “자금이체 서류에는 조합장의 도장이 찍혀있다”며 “이체 금액이 수백억원에 달하는데 조합 역시 합의 없이 도장을 찍을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또한 그는 “사전에 조합측과 무이자, 유이자 사업비 금액 책정 등이 검토됐는데 어떻게 조합 모르게 자금 이체가 진행됐다 주장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